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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함께 시와 함께-14> 명지산 콘도

등록|2009.08.29 17:34 수정|2009.08.29 17:34
명지산 콘도

이상도 하지
엄마는 팔월에 돌아가셨는데 이듬해 1월에 통곡을 했으니
엄마는 인천에서 돌아가셨는데 멀고 낯선 명지산 콘도에서 통곡을 했으니
초등학교 6학년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마루를 꽝꽝 구르며 펄쩍펄쩍 뛰며 통곡을 한 이후로
내 눈물샘은 말라버렸어
여간해선 울지 않았지
사랑하던 여자가 떠나갈 때도 울지 않았어
직장에서 해고당했을 때도 울지 않았어
할머니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어
장인어른 장례식 때도 난 울지 않았어
이산가족 상봉 때 주르륵 흘러내리던 것이 유일한 것이었지
엄마가 죽었는데 왜 눈물이 안 나는지
엄마 죽고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눈물은 나지 않았어
그해 겨울 가평 명지산  콘도에 여장을 풀었어
저쪽에선 한 패거리 고스톱을 치고
나는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며 창밖의 별을 보고 있었지
텔레비전은 저 혼자 중얼거리고
그때였어, 바로 그때 술기운이 올라서였을까
목울대가 울렁울렁하더니 갑자기, 정말 갑자기야
용암이 솟구치듯 걷잡을 수 없는 통… 통곡이 터져 나온 거야
화산이 폭발한 거야 통곡의 화산이
걷잡을 수가 없었지, 엄청난 에너지였어
별빛 차갑던 한 겨울 밤 갇혀있던 통곡이 비로소 출구를 찾아냈나봐
한참을 통곡하다가 잠이 들었어
이튿날 정신을 차리고 비로소 나는 통곡의 역사를 다시 썼지
내 나이 마흔일곱 별빛 빛나던 겨울 명지산의 통곡
그것은 내 생애 가장 기념비적 통곡이 되었지-최일화

시작노트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6년 동안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할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나는 대청마루를 쾅쾅 울리고 펄쩍펄쩍 뛰며 울었습니다. 그 후로 누가 돌아가셔도 울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마흔일곱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 직장 동료들과 가평 명지산으로 산행을 가서, 별빛 총총하던 밤하늘로 기어코 나는 통곡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4개월 째였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쏟아낸 통곡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통곡으로 나의 마음을 맑게 닦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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