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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81) 노크

[우리 말에 마음쓰기 743]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 '마음도 노크했으면' 다듬기

등록|2009.08.30 12:39 수정|2009.08.30 12:39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ㄱ.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

.. 그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사복 경찰관 한 사람이 조심조심 얼굴을 들이밀었다 ..  《한승헌-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범우사,1991) 13쪽

'조심조심(操心操心)'은 '쭈뼛쭈뼛'이나 '살금살금'이나 '엉거주춤'이나 '머뭇머뭇'으로 다듬어 봅니다.

 ┌ 노크(knock) : 방에 들어가기 앞서 문을 가볍게 두드려서 인기척을 내는 일
 │   - 노크 소리 / 노크도 없이 침입한 건 아래층 주인 노파였다
 │
 ├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
 │→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 똑똑 하는 소리
 └ …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운 뒤로 '노크'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만화에도 흔히 '노크'라고 나왔고, 막 배운 영어 '노크'는 집이나 학교나 다른 어디에서나 스스럼없이 쓰는 말이었습니다.

요사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니까, 퍽 많은 이들이 어릴 적부터 '노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리라 봅니다. 그리고,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이 말마디를 손쉽게 내뱉고 있으니, 꼭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아주 익숙하게 되리라 봅니다.

 ┌ 노크 소리 → 똑똑 소리 / (문을) 두드리는 소리
 └ 노크도 없이 → 난데없이 / 갑작스레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노크'라는 말을 배우거나 익숙해지면서 스스럼없이 쓰고 있을 때, "저런, 그런 말은 알맞지 않구나" 하면서 바로잡아 주거나 추슬러 주는 어른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바로잡아 주거나 추슬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아주 마땅히 써야 하는 말마디로만 여깁니다.

"들어올 때에는 똑똑 해야지" 하고 말하는 어른이나 "문 좀 두드리고 들어 와" 하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퍽 드물고, 자꾸자꾸 줄어듭니다. 어른들 스스로 옳게 말하려 하지 않으니, 아이들 앞에서 옳은 말을 알맞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먼저 옳게 살아갈 때 비로소 옳게 생각하고 옳게 말할 텐데,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온갖 겉치레로 착한 척은 다하지만, 정작 착한 삶도 착한 생각도 착한 말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 사람들의 마음도 '노크'했으면

.. 기지촌에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노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안미선-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철수와영희,2009) 148쪽

"자신(自身)의 이야기"는 "이야기"나 "당신 이야기"로 다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 마음"으로 다듬어 줍니다.

 ┌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노크'했으면
 │
 │→ 다른 사람 마음도 '건드려'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도 '두드려'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도 '다독여' 주었으면
 └ …

메마르거나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퍽 많습니다. 가슴에 따순 사랑을 품지 못하고, 마음에 넉넉한 믿음을 담지 못합니다. 이웃 앞에서, 동무 앞에서, 그리고 거울 앞에서, 참되고 다소곳한 매무새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고르고 살가운 몸짓을 나누지 못합니다. 내 앞가림이 먼저요, 내 앞치레가 먼저이며, 내 앞날이 먼저입니다. 정작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고 내 앞길이 어디로 이어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그예 내 밥그릇을 채우는 데에 마음을 쏟습니다. 이웃사랑이나 동무사랑에 앞서, 나부터 참되고 바르게 사랑하지 못하기에, 나 스스로 하는 일들이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흐뭇하게 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잔뜩 얽매여 있는 삶이기에 잔뜩 얽매인 생각만 쏟아냅니다. 그예 옭매여 있는 삶이기에 그예 옮매인 말마디만 쏟아냅니다. 한결같이 굴레에 갇힌 삶이기에 한결같이 굴레에 갇힌 생각만 펼칩니다. 언제나 고여 있는 삶이기에 언제나 고여 있는 말만 펼칩니다.

 ┌ 다른 사람 마음도 '열어'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도 '어루만져'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도 '간질여' 주었으면
 └ …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삶이요,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삶입니다. 내 마음을 나누고 네 마음을 받는 삶입니다.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아도 함께하는 삶이요, 훌륭하거나 아름다워도 함께하는 삶입니다. 있는 만큼 같이 즐기고 없는 만큼 서로 보듬는 삶입니다.

말이란, 글이란, 우리가 꾸리는 삶과 마찬가지로 먼저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내 둘레 뭇사람을 함께 들여다보는 가운데 내어놓는 몸짓이요 손길입니다. 서로서로 문을 열어젖히면서 너르게 하나되는 길을 찾는 어깨동무이고 품앗이입니다. 그냥저냥 내뱉는 말마디가 아니라 내 온 사랑과 믿음을 모두어 내놓는 말마디입니다. 이냥저냥 꺼내는 글줄이 아니라 내 온 슬기와 마음을 바치며 나누는 글줄입니다. 나한테서 맞은편으로 가고, 맞은편한테서 나한테 옵니다. 말마디와 글줄에는 지식과 정보가 실릴 테지만,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마음결이 없을 때에는 겉발린 말과 겉꾸민 글에 머물고 맙니다.

 ┌ 다른 사람 마음으로도 '스며들어'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으로도 '다가가' 주었으면
 ├ 다른 사람 마음으로도 '녹아들어' 주었으면
 └ …

글을 더 잘 쓰게 해 준다는 책이 나오고, 말을 더 잘 하게 해 준다는 책이 나옵니다. 아이들 논술을 이끄는 책도 나오고, 대학교마다 논술시험으로 아이들 생각을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숱한 말책과 글책과 논술책 가운데, 우리 마음밭을 따뜻하게 덥히거나 넉넉하게 일구거나 슬기롭게 보듬는 책은 잘 안 보입니다. 손놀림과 입놀림과 머리놀림은 다루어도, 마음씀과 몸씀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손재주와 입재주와 머리재주는 보여주어도, 마음결과 숨결을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할는지를, 어느 길을 접어들어야 할는지를, 어느 자리에 우뚝 서야 할는지를 맑고 밝게 비추는 등불 같은 말이며 글이며 이야기며 찾아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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