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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민당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방송법 날치기'

[기고]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등록|2009.08.31 12:05 수정|2009.08.31 12:36

▲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된 민주당을 이끄는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왼쪽). 사진은 지난 6월 5일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모습이다. ⓒ 청와대 제공


일본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이 마침내 무너졌다.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전후 일본을 지배해 온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린 것이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출범한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정치학 교과서에서 '1·5정당제'라 불릴 정도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번 민주당의 집권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이긴 하지만, 내용면으로는 사실상의 혁명이나 다름없는 전후 일본 정치사 최대 사건으로 불릴 만하다.

일본 유권자들은 왜 자민당에 등을 돌렸을까? 일본 유권자들이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집권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할까?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결국 집권 자민당에 대한 실망과 심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자체 말고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도 작용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본은 지금 100년 만의 경제위기라고 한다. 'L-자형 장기침체'를 겪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무역의존도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을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도 적다. 그래서 일본은 내수 침체가 경제 전체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대규모 실업과 노숙자의 증가, 자살과 우울증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부산일보> 김승일 기자가 번역한 책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가마타 사토시 지음)를 보면, 현재 일본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책 속의 생생한 르포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 유권자들의 자민당 심판, 의원 세습 구조에 영향 받은 듯

필자는 일본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고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이 무너진 배경이 전후 일본을 이끈 정치인과 지도자들 상당수의 세습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미우리신문>이 집계한 것을 보면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한국의 지역구 국회의원에 해당) 303명 가운데 이른바 '세습 의원'이 3분의 1을 넘는 107명이다. 여기서 세습 의원이란 형제자매·부모·조부모 등 3등신(3대) 이내의 혈족과 배우자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배우자의 형제자매·부모 등 2등신(2대) 이내의 인척을 국회의원으로 둔 사람을 말한다(이상 <시사IN> 2009년 5월 23일자, 제88호 '의사당 가득 메운 세습 의원을 어찌하오리까'에서 인용).

'의원 세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해산의 운명을 맞은 아소 다로(麻生 太郞) 내각에서 17명의 장관 중 무려 11명이 세습의원이다.

<아소다로 내각과 일본 중의원 세습 일람표>

구분 자민당 민주당 양당합계 장관 수 차기 중의원 출마 예정자
의석수(A) 303명 111명 414명 17명 881명
세습의원수(B) 107명 16명 123명 11명 133명
비율=B/A 35.3% 14.4%  29.7% 58.8% 15.1%
비고 아사히신문  
           

집권 자민당 중의원들만 세습하는 것이 아니다. 자민당만큼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 중의원 중에서도 지역구를 물려받은 정치인의 비율이 14.4%에 달한다(위와 아래 도표 참조).

<일본 중의원, 내각 등 세습 주요 정치인>




자민당의 지도부와 각료들이 대대손손 세습한 정치인들이라 서민과 사회 약자들에 대한 배려나 정책은 날이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침내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정책에 실망한 나머지 '일단 바꿔보자'는 분위기와 여론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종편채널 사업 추진 등 후속조치 과정에서 무리수 둘 것

이제 한국을 보자. '2MB 정권'이 우여곡절 끝에 국가와 국민의 소유이자, 공공재 중의 공공재인 방송을 조중동과 재벌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법안을 날치기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나 명백한 불법과 절차상 하자가 발생했다. 헌법재판소가 한나라당과 청와대 입맛에 맞게 적당히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돼버렸다.

이것이 청와대와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의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최시중은 서두르고 있다. 취임 이후 줄곧 합의제 기구를 '독임제'식으로 운영해 온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문제의 방송법과 신문법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종합편성채널 사업 등을 신속하게 추진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하거나 원천봉쇄하려 들 것이다.

이런 식이다. 조중동을 비롯해 특정 대주주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거의 모든 신문사들과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이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위한 주주모집 등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일단 방송통신위원회의 계획과 공고에 따라 종합편성채널 사업 허가 신청을 위한 컨소시엄(들)이 구성되고 나면,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한 무효 혹은 효력정지 결정을 내릴 경우, 사업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경제적 파장 등을 우려한 헌법재판소로서는 절차와 법리적인 관점에서는 신문법과 방송법 등이 결정적인 절차적 불법성과 하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효력정지 결정을 내릴 경우 예상되는 정치·경제·사회적 파장 등을 우려하여 결과적으로 헌법의 3권분립 정신에 입각하여, 국회의 입법 결정권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초조하게 서두르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가부간에 신속히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자료 사진). ⓒ 유성호


신문법과 방송법, 결국 한나라당 정권의 부메랑 될 것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상관없이, 조중동과 재벌에 방송을 통째로 내주려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기도는 당초의 목표와 기대와는 달리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무리하게 서두르면 탈이 나게 돼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민당의 몰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당초 현 정권이 조중동과 재벌에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을 통째로 넘겨주려는 목적은 방송만 장악하면 일본의 자민당처럼 장기집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최소한 자민당처럼 30~50년 장기집권까지는 아니더라도, 혼맥으로 얽힌 재벌과 족벌신문,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수구 세력의 '수구반동복합체'가 상당 기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국민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두르는 바람에 결정적인 하자와 실수를 저질렀고, 종합편성채널 사업 추진 등 후속작업에서도 각종 무리수가 뒤따를 게 뻔하다. 이럴수록 야당과 언론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투쟁은 갈수록 힘을 얻게 돼있다.

국민들은 상황을 냉혹하게 보고 있다. 일본 유권자들이 54년 자민당 장기집권을 심판했듯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도 벌써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와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가 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 국민과 유권자들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결국 현 정부와 한나라당 정권은 방송 때문에 망하게 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신학림 기자는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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