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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관습(?)을 깨뜨리다

등록|2009.08.31 20:04 수정|2009.09.01 14:31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바벨탑을 쌓아가는 시대이다. 자신의 유익을 달성하기 위해서 옆은 보지도 또 보고 싶지도 않다. 한눈을 팔다간 자칫 목적 달성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교계(敎界)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 오래 전 우리 교단 총회장으로 출마하려다가 중도 포기한 R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잘못된 폐단을 우리 교단에서부터 몰아내기 위해서 출마를 선언했었지만 보수의 벽이 의외로 두터워 실패했다는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목회자가 교회를 비운다는 것은 하나님께 또 성도들에게 매우 송구스런 일이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번 내 경우도 그런 예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불편한 다리를 수술해서 건강한 몸으로 주님의 일을 더 많이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성도들이 잘 받아주어 3주간 예정으로 부산 K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하기 전, 문제는 주일 낮 예배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처음 생각은 우리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 몇 분이 나누어 간증 시간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웠지만, 성도들이 주일 낮 예배는 이웃 교회 목회자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8월 16일 첫 주부터 8월 31일 세번 째 주까지 초청된 강사들이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해주어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다는 전언(傳言)이 있었다. 두번 째 주를 맡은 사람이 M 교회 부교역자로 섬기는 S 전도사님이었다. 내가 그를 초청 강사로 생각하게 된 것은 평소 지방회 행사가 있을 때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는 것이 신세대답지 않은 모습이라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2년 전, 우리 교회 여름성경학교를  M 교회 청년들 도움으로 행사를 잘 치른 적이 있다. 그 때 청년들을 인솔하고 와서 주 강사로 뛴 사람이 S 전도사였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또 교회 성도들도 은혜 많이 받아 담임 목사인 내가 흐뭇해했던 적이 있다.

그의 말씀은 신선(新鮮)했다고 한다. M 교회 주일학교 담당에다가 젊음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말씀을 전하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감동은 며칠 전 장로님에게 온 한 통의 전화에 의해서 배가(倍加)되었다.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장로님과 권사님 등 몇 사람이 S 전도사님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칼국수에 밥을 시켜 맛있게 먹고 난 뒤 S 전도사님이 차(茶)를 빼오겠다며 나갔다가 왔다. 차까지 맛있게 들고 나와서 장로님이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S 전도사님이 계산을 치르고 난 뒤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수고의 대가로 받은 사례비를 그대로 감사헌금 봉투에 넣어 교회 헌금함에 넣고 갔다. 한참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로님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S 전도사님이 한 일련의 행동은 분명 관례를 깨뜨리는 것이다. 목회자가 빈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하면 식사를 대접받고 또 소정의 사례비를 받는 것은 일반적인 관례이다. 그런데 그는 작은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담임 목사님 수술) 있을 때 아무런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와서 말씀을 전해준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병실에서 보고 받은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 밤 우리 교계가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꿈을 꾸었다. 또 옆 환우(患友)로부터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라는 아픈 말까지 들었던 터다.

나는 농촌 목회 8년을 하면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진정한 큰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농촌목회 경험을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겼다. 큰 목회 감동을 주는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농촌목회에 이어 큰 교회 부교역자로 일정 기간 봉사하라는 것을.

M 교회는 우리 김천에서 모범적인 중형 교회에 속한다. K 목사님이 개척해서 오랜 기간 열과 성을 다 바쳐 일구어 온 교회이다. 그런 목사님 밑에서 배우고 닦은 목회 경험이 S 전도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에 적용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사람은 자기 울타리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크기가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회자에게 그 울타리를 벗아나게 해 주는 사람으로 올곧게 목회를 해온 선배 목사님이 단연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런 점에서 S 전도사님은 좋은 스승을 만난 행복한 목회자라 할 수 있다. 당장 그것이 이번 덕천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를 통해서 나타나지 않았는가!

뭇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감동이요 은혜이다. 닳고 닳은 현대인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도 이젠 많지 않다. 자기 것을 챙기지 않고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은 시대를 넘어 양의 동서를 가릴 것 없이 감동의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을 함으로 덕천교회 성도들에게 상쾌함을 선사한 S 전도사님에게 이래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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