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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가까이 오지 마! 오지 마!"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등록|2009.09.01 13:55 수정|2009.09.01 13:55
"신종플루 증상하고 일치하는군요"

지난 8월 29일 토요일 아침 6시경에 일어나니 개운치 않았다. 하지만 일정이 있어 바로 샤워를 하고 출발해 오전 일을 마무리하고 오후 2시경이 되자 더욱 몸 상태는 나빠져서 목도 아프고 열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접수하고 응급실에 잠깐 앉아 있자니 의료진 모두가 마스크를 두 개씩 겹쳐 착용하고 진료를 하고 있었다.

혈압과 체온을 재고 차례가 되자 의사의 몇 가지 질문이 시작되었다.

-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습니까?
"오늘 아침 6시경입니다."
- 최근 외국에 다녀 온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 지금 체온이 37.8도인데 언제부터 열이 났나요?
"오전부터 열이 난다고 느꼈습니다."
- 다른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목이 아프고 두통도 있고 코막힘도 심합니다. 몸살인 거 같습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 받고 내가 물었다.

- 이게 신종플루인가요?
"아니요. 하지만 신종플루 증상하고는 일치하는군요. 플루증상이 일반 몸살감기 증상하고 같거든요."
-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감기약을 처방받으시고 정 신종플루가 의심된다면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결과는 3일후 나옵니다. 그리고 귀가하시면 됩니다."
- 귀가요? 그럼 다른 사람들과 접촉은 어찌해야 하나요?
"그건 환자 본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그럼 다른 사람에게 전염 가능성도 있나요? 언제가 가장 심한가요?
"네, 전염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고열이 발생하기 하루 전부터 완치 때까지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나를 보고 뛰어오는 아들... 어, 안 돼!

▲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책과 감염시 대처방법 등을 홍보하기 위해 '신종플루 안내 및 상담센터'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손 씻는 요령 및 치료거점병원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의사와 상담을 마친 후 난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사무실에는 웃어른이 계시고 여러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는데 어찌 하나. 오후에도 많은 일정이 남아 있는데 그건 또 어쩌나 등등. 그리고 집으로 귀가한다고 해도 집에는 고위험군이라고 하는 35개월 된 아들과 이제 임신 5개월인 아내가 있는데 이들에게 전염시키다면 등등. 머릿속이 복잡했다.

또한 검사를 받고자 하니 오늘이 토요일이라 검사를 해도 검사소가 쉬어 5일 걸린다 하여  월요일에 검사를 신청하고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내가 신종플루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웃어른께 지금 제가 신종플루와 같은 증상을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에 우려가 있다고 말씀드리니 귀가하여 몸조리 잘하라는 당부시다.

오후 5시경 면목이 없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이건 더 큰 난제다. 아들과 아내 두 사람은 나와 최소한 5미터 아니 50센티미터 이내에 있는데 일찍 귀가하는 나를 보고 반가운지 아들이 달려 나온다. 난 당황해서 소리쳤다.

"아빠한테 가까이 오지 마! 오지 마!"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에게 간략하게 내가 신종플루 환자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안방에서 생활할 테니 약 먹을 물과 식사시간이 되면 간단한 요깃거리만 주고 절대로 아들이 안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단단히 이르고 안방에 누웠다.

체온을 재어보니 38. 2. 병원에서보다 높아졌다. 점점 몸은 천근만근 으슬으슬 춥고 온몸의 뼈마디가 아파온다. 약을 먹고 잠을 청하자 오한에 이가 덜덜 떨린다. 얼마나 떨었을까. 아내의 식사하자는 소리에 일어나 조금 요기를 하고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날 밤 지옥과 같은 오한과 통증에 시달렸다.

'너도 주말이 악몽 같았겠구나!'

8월 30일 일요일 아침.

아내가 깨워 약을 먹고 입이 너무 써 복숭아 한 조각으로 입을 축이고 다시 누웠다. 오늘도 일정이 바쁘다. 나 때문에 웃어른이 힘드실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오늘은 모셔야 하는데 하고 생각은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찌 시간이 갔는지 낮 12시 20분경 어른께서 전화하셔서 몸조리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한 가득인데 전화로 격려해 주시니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열을 재어보니 39.8도. 너무 너무 추웠다. 앓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몸에서 열이 나는데 왜 이리 추운 거지? 우리 몸은 발열을 하면 춥다고 느끼나? 그 이유는 뭘까? 나으면 꼭 인터넷에서 찾아봐야지 등등. 일요일 밤은 토요일 밤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월요일 아침 일어나 무조건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다. 어지럽고 힘들었지만 검사를 해야 했다. 9시경 혼자 병원에 도착해 접수하니 이제는 내과로 가란다. 내 앞에 족히 40여 명은 되어 보이는 환자들. 기다릴 자신이 없다.

다시 원무과. 난 검사만 받으면 된다고 하니 마스크 하나 주고 응급실 옆 조금만 문 앞에서 기다리란다. 한참 후 이름이 불리고 들어간 방에 토요일에 만난 의사가 있다. 의사가 어디서 본 듯하단다. 그래서 토요일에 날 진찰했다고 하자 그제야 생각난 듯하다. 검사는 간단했다. 기다란 면봉을 목 안에 넣고 몇 번 문지른 후 밀봉 케이스에 넣어 외부 검사소로 보낸단다.

검사 후 내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니 수액 한 병 맞고 이틀치 약을 받아가란다. 주사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병상에 누워 수액을 맞다보니 옆 병상의 여중생도 마스크 착용하고 있다. 궁금해 물으니 토요일에 내원해 월요일에 검사 받았단다. 나와 똑같은 코스다. 속으로 '너도 주말이 악몽 같았겠구나!' 했다.

그리고 약국에 들러 약을 타고 집으로 가서 다시 격리! 돌아와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종플루 의심환자의 애로사항을 적어본다.

1. 아파도 아프다고 못한다. 왜 남들에게 미안하니까. 내가 지역사회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나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할까봐 노심초사한다.

2. 제대로 된 지침이 없다.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는 방법, 가족과 직장동료 지역민에게 전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른다. 실은 이 문제로 아픈 와중에도 심각한 고민을 했다. 모텔로 가야 하나?

3. 검사비용이 비싸고 기간이 길어 혼란을 야기한다. 검사비용이 10만 원이 넘고 환자의 선택에 의해 검사하는 것이니 저소득층 환자의 경우 검사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검사기간도 토요일, 일요일은 검사가 되지 않아 최장 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당국은 검사비용의 문제와 검사 시일의 단축이 필요함을 알고 빠른 대응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편집자 주] 현재 2가지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 중 고위험군 환자에 한해 신종 인플루엔자 검사 비용에 보험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의심환자 중 고위험군에 속하는 환자는 검사비의 30∼50%(3만9750∼6만6250원)만 본인이 부담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31일 신종 인플루엔자 유관부처 합동회의를 열고 앞으로 비고위험군 환자에 대해서도 의사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험 적용을 하도록 했다.

신종플루가 더 확산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보건당국은 관련지침 등을 마련하여 국민들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게 하길 간절히 바라며 수요일 나올 검사결과가 음성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독자 여러분, 행여 감기라도 걸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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