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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라, 당신 모습이 보인다

미술사학자 이주은의 <당신도, 그림처럼>

등록|2009.09.02 14:45 수정|2009.09.02 14:45

▲ 책 <당신도, 그림처럼>의 겉그림 ⓒ 앨리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을 위로할 만한 대상 하나씩은 갖고 지낸다. 누구는 술을 통해 위로를 얻고 어떤 이는 친구와의 수다 한 판으로 위로를 받으며 또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는다. 책 <당신도, 그림처럼>을 쓴 미술사학자 이주은씨처럼 말이다.

책에서 저자는 그림을 보며 일상의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소녀처럼 그림을 감상하며 미래를 설계한다면 웃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파괴시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다른 것도 아닌, 그림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행복한 일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삶의 지침서와는 다릅니다. 이것저것 해두라고 등을 떠미는 대신 '자네, 여기 와서 쉬게나' 하고 권합니다.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결심하게 하는 대신 '너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 하고 일깨워줍니다. 그림은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은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하고 보여줄 뿐이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글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작가에겐 큰 의미로 다가온 여러 그림들을 사 계절 별로 소개하면서 전개된다. 이화여대 학예연구원으로 있는 미술사학자가 쓴 책이라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문체와 그림에 대한 소박한 해석이 물 흐르는 듯하다.

언젠가 타로 카드 연구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타로카드 중 맨 첫 번째 카드인 '바보(The Fool)'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봇짐을 메고 길을 나선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카드의 의미는 이렇다.

현실의 모든 것을 버리고 깨달음을 위해 길을 나선 이 여행자는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줄 전혀 모른다. 그래서 '바보'다. 바보는 앞을 전혀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하늘에 둔 채 가고 있다. 바로 앞에는 절벽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타로 카드 점에서 이 바보 카드를 뽑으면, 점쳐주는 이가 지금 발을 들여 놓은 일이 혹 어리석은 충동에 의한 것은 아닌지, 무모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라'라고 해석해준다.

우리에게 인생이란 이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타로 카드의 바보처럼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바보'라는 이름의 타로 카드는 우리에게 자기의 발걸음이 어떤 곳을 향하고 있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잘못된 곳을 향한 자신의 발걸음을 제대로 놓을 때 우리 자신은 바보가 아닌 현자가 될 수 있다. 카드의 그림들은 이처럼 현실 각성의 역할을 해준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 중에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를 열어 유명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걸작들이 있다. 보테로는 뚱뚱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다이어트와 섹시미 등을 부르짖으며 날씬함을 강요하는 현대인들에게 푸짐하고 넉넉한 살들도 미적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전한다.

저자는 보테로의 뚱뚱한 사람들 이야기와 함께 다른 화가 프란츠 마르크의 연인인 마리아 프랑크에 대해서 언급한다. 뚱뚱함이 게으름과 건강 부족, 자기 관리 소홀의 상징이 되어버린 현대에서 마리아 프랑크는 당당하고 푸짐한 모습으로 프란츠 마르크의 오랜 연인으로 남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뚱뚱함을 혐오하는 게 요즘 대세지만, 뚱뚱하기 때문에 스스로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말자고 말이다. 자기 부정은 특히 사랑을 하는데 극심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넘치는 살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매력을 잃게 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사람에게서 생명체의 울림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프란츠는 마리아의 희고, 양감 있는 몸뚱이에서 때 묻지 않은 건강한 생명력이 뿜어 나오는 것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중략) 남아도는 살들은 부정해도 자기 존재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살이 많으면 그냥 덩치 큰 사람이지만, 자기를 부정하면 순식간에 아무런 매력 없는 슬픈 뚱보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타인에게도 존중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내 몸을 누가 사랑해 준단 말인가! 날씬함을 숭배하며 자신의 몸을 버리고 성형 수술을 지향하는 현대인이라면 보테로의 그림이 주는 풍만한 아름다움에 한 번 쯤 푹 빠져 볼 필요가 있겠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시선을 가장 이끈 그림은 파울 클레의 <하트의 여왕>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이 귀여운 그림은 얼굴도 하트 모양이고 네모로 표현된 몸 구석에 빨간 하트를 가지고 있다.

클레는 독일의 유명한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 교수로 지냈다. 바우하우스가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 예술의 기능주의인데, 클레는 이러한 이상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가 자유롭게 색칠하는 것처럼 화면 위에 표현한 이 그림은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기능주의적 예술의 딱딱함보다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결국 예술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에 의해 그 작품성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책의 독자들도 자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세상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해 보자. 저자가 바라는 그림 감상법도 아마 그런 게 아닐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예술 감상 비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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