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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원을 하고 싶어요

소현이의 소망

등록|2009.09.03 12:24 수정|2009.09.03 12:24
***************선생님께************** 

선생님, 벌써 가을이 왔나 봐요. 날씨가 쌀쌀하네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어요. 

우리 오빠가 4학년 때 몇 번 교실을 들여다봤는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었죠.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선생님 교실에 마음대로 들어간 게 창피하네요.
선생님!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서 4학년 때도 제 담임선생님이 되어주실래요?
이렇게 될 순 없겠지만...... 이런 게 제 마음이에요.
선생님 이대로 선생님 곁을 떠나야 하나요?
선생님은 제 마음속에 있지만 잊혀지면 어떻하죠? 선생님 부탁이에요.

저희 곁을 떠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려요 선생님.
헤어진다 하여도 저 잊지 마시고 언제까지나 저희만 생각해주시길 바래요.
선생님 선생님은 저희가 5학년 때 떠나시나요? 
저는 제가 6학년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하지만 이메일로 6학년이 되면 제 사진도 함께 찍어 보내드릴게요.
그럼 감기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잊지 못할 추억인 소현 올림

소현이는 지난해 우리 반에 오빠가 있어 자주 놀러왔던 아이다. 어제는 소현이가 메일을 보내왔다. 이곳은 시골학교라 아이들의 이동이 참 많다. 부모가 헤어지게 되면 갈 곳 없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이별이 잦은 아이들에게, 시간이 영원한 줄 알고 낭비하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우리 앞에 3학년이라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이별을 미리 이야기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니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알차게 잘 지내자고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게 어린 소현이에게는 민감하게 우리의 이별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소현이는 3월에 자기 소망을 쓰고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박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아이다. 소현이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바로 민욱이가 2학년 때 소현이 별명은 '박사'였다고 들려주었다. 무엇이든 잘 하고 욕심이 있는 소현이는 생각도 별처럼 반짝인다. 그래서 발표도 조리 있게 잘한다.

책도 많이 읽는 아이라 생각도, 아는 것도 많다. 임원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그누구보다 강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찍어주지 않는다. 남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약점 때문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소현이를 볼 때마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어머님하고도 상담을 했고, 소현이와도 자주 이야기를 했었다.

임원이 되고 싶어 했던 소현이는 3월에 실시한 1학기 임원선거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2학기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면 될 수 있을 거라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실시한 2학기 임원선거에서도 두 표밖에 나오지 않아 탈락했다. 실망하는 모습이 상처입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금방 풀어져서 다행이었다. 대신 임원이 아니어도 기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맡겨주었더니 좋아했다. 역시 어린아이였다.

아이들은 야무지고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는 인간성 좋은 아이를 임원으로 선택한다. 그래서 전학 온 아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웃는 얼굴인 예원이를 무조건 찍었다. 이제 전학와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도 소용이 없었다. 예원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그대로 두었으나 아쉬움이 남는 선거였다.

내년에는 소현이가 바뀌어서 아이들의 사랑으로 선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토록 원하는 임원역할을 똑 소리 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소현이가 소망하는 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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