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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저주인가, 인간의 탐욕인가

[리뷰] 교고쿠 나쓰히코 <항설백물어>

등록|2009.09.04 17:32 수정|2009.09.05 12:09

<항설백물어>겉표지 ⓒ 비채



교고쿠 나쓰히코의 1999년 작품 <항설백물어>에는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다.

항간의 기묘한 이야기가 고작 백 가지만은 아닐테고, <항설백물어>에 실린 이야기도 그보다는 훨씬 적다. 하지만 하나같이 기이한 이야기들이다.

일본은 괴담과 신화가 많은 나라인 만큼, 작품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전해오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의 영혼을 빼앗는 산고양이, 스님으로 둔갑한 여우, 머리가 잘린 채 싸우는 세 사람,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 등.

그렇다고 해서 전설을 모아놓는 괴담집은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몇몇 사람들은 그 곳에 전해오는 괴담을 새롭게 해석하고 풀어낸다.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

그 몇몇 사람은 작가 지망생 모모스케, 길거리 인형사 오긴, 신탁자 지헤이, 모사꾼 마타이치다. 모모스케는 여러 지방의 괴담을 탐문하고 수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내다.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백 가지 괴담집을 출판할 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괴담을 구하기 위한 여행을 하던 도중에, 모모스케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저녁 산 중턱의 오두막에서 오긴, 지헤이, 마타이치를 만나게 된다. 오긴은 젊은 여성으로 세련된 외모를 하고 있지만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지헤이는 나이가 많고 초라한 행색이지만 짐승을 잘 부린다.

이들의 대장격은 모사꾼 마타이치다. 겉모습은 승려차림이지만 세치 혀로 천 냥 빚을 갚는 말솜씨를 가졌다. 속이고 후려치고 사기치고 모함하는 것이 특기 중의 특기라서 잔머리 모사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모모스케는 이들을 만나고 나서 이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이상한 사건과 마주친다. 요괴를 보았다는 사무라이가 있는가 하면, 집안의 사당을 불태워버린 후부터 저주를 받은 가문이 있다. 오래 전 황후의 시신을 내다버린 장소에 주기적으로 다른 시신이 나타나는가 하면, 산적에게 가족을 잃은 부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독특한 괴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동자승의 귀신이 밤마다 개울가에 나와서 팥을 씻으며 우는 전설, 집에서 키우는 말을 잡아먹은 주인의 입으로 매일같이 그 말의 원혼이 들어간다는 전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버드나무 가지에 목이 감겨 죽은 여인의 이야기 등.

괴담을 수집하는 모모스케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듣게 되는 괴담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반면에 마타이치 3인조는 다르다. 이들이 무슨 목적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들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괴담을 등장시키고 그때마다 모모스케도 그들에게 협력한다. 이런 사건의 이면에는 오래된 전설과 저주가 있을까, 아니면 인간의 사악함이 있을까.

교고쿠 가쓰히코의 독창적인 작품세계

교고쿠 가쓰히코는 그의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으로 더욱 유명한 작가다. 그는 작품 속에서 민담과 주술, 요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괴담과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어려운 사건에 접근하는 <항설백물어>의 마타이치처럼.

<항설백물어>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이 세상에 괴이한 일 같은 것이 그리 많이 있을 리도 없다"라는 말을 한다. '괴이한 일'이란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괴이한 일을 실제로 겪는 사람은 극소수이더라도, 이 세상에 차고 넘쳐나는 것이 괴담이다.

그것은 아마도 괴담을 믿건 안믿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묘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다 듣고 나서 미신 또는 헛소리라고 치부해 버릴지는 몰라도, 괴담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인지 작품 속에서 모모스케는 "괴담이야말로 이야기의 왕도"라는 말을 한다. 재미있는 괴담은 읽는 사람을 자극하고 현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요괴나 귀신의 존재를 믿건 안믿건, <항설백물어>는 그래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항설백물어>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 금정 옮김. 비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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