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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53) 시화詩化

[우리 말에 마음쓰기 747] '특수화해서'와 '남달리-새롭게'

등록|2009.09.05 11:49 수정|2009.09.05 11:49
ㄱ. 시화詩化

.. 남녀 간의 성관계에 동네 전체가 우물물을 거부하는 저 토속의 세계가 詩化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  《김주연-나의 칼은 나의 작품》(민음사,1975) 12쪽

 "남녀 간(間)의 성관계(性關係)에"는 "남녀가 사랑을 했다고"나 "남녀 사이 사랑 때문에"로 손보고, '전체(全體)'는 '모두'로 손봅니다. "우물물을 거부(拒否)하는"은 "우물물을 안 먹는"이나 "우물물을 안 쓰는"으로 다듬고, "저 토속(土俗)의 세계(世界)"는 "저 시골마을"이나 "저 시골 모습"으로 다듬으며, "이 작품인 것이다"는 "이 작품이다"로 다듬습니다.

 ┌ 시화(詩化) : 시적인 것이 됨
 │   - 감정의 시화 / 감정이 시화되다 / 시화된 소재가 특이하다 /
 │     작가의 경험이 시화한 세계 / 부처의 일대기를 시화한 작품이 출판되었다
 │
 ├ 詩化되고 있는
 │→ 시로 태어나는
 │→ 시로 빚어지는
 │→ 시로 그려지는
 │→ 시로 담기는
 └ …

 "시가 되는" 일이 아닌 "시적인 것이 되는" 일을 '시화'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보기글에 적힌 "저 토속의 세계가 詩化되고 있는 것"은 시로 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시 같은 글이 되면서 시 느낌이 난다고 하는 소리일까요. 틀림없이 시 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를 이야기'하는 셈이 아니라 '시 같은 글을 이야기'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면, 이는 시를 쓴 분을 깎아내리거나 우습게 보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시적(詩的)'을 찾아봅니다. 뜻풀이는 "시의 정취를 가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취(情趣)'란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라 하고, '정서(情緖)'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라 하며, '흥취(興趣)'는 "흥과 취미"라고 하며, '흥(興)'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이라 하며, '감정(感情)'이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시 느낌이 나는"이 '시적'이라는 소리입니다.

 시라면 시 느낌이 으레 날 터이고, 시이면서 시 느낌이 안 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를 읽으면서 "이 시는 참 시 느낌이 나는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참 소설 느낌이 나는구나" 하고 말할 사람이 있나요. 시가 아닌 글을 가리켜 "시 느낌이 난다"고 합니다. 소설 아닌 글을 두고 "소설 느낌이 난다"고 합니다.

 ┌ 감정의 시화 → 마음을 시로 담아냄
 ├ 감정이 시화되다 → 마음이 시로 되다 / 마음이 시에 담기다
 ├ 시화된 소재가 → 특이하다 시로 담은 이야기가 남다르다
 ├ 작가의 경험이 → 시화한 세계 글쓴이 삶이 시로 옮겨진 세계
 └ 부처의 일대기를 → 시화한 작품 부처가 살았던 이야기를 시로 옮긴 작품

 시는 그저 시입니다. 시쓰기는 그저 시쓰기입니다. 시로 담아내는 일은 시로 담아내는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이고, 보여지는 그대로이며, 느끼는 그대로입니다. 괜한 허울을 입히거나, 괜스런 껍데기를 씌우거나, 어설픈 겉발림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허울과 껍데기와 겉발림은 우리 생각과 넋뿐 아니라 말과 글까지 엉망으로 뒤흔듭니다.

ㄴ. 특수화

.. 신체시라고 하면 좀더 특수화해서 말하는 것이 될 것 같아요 ..  《유종호,염무웅 엮음-문학과 상황인식》(전예원,1977) 53쪽

 "말하는 것이"는 "말하는 셈이"로 다듬고, "될 것 같아요"는 "될 듯해요"나 "되리라 생각해요"로 다듬어 줍니다.

 ┌ 특수화(特殊化) :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과 다르게 됨
 │
 ├ 좀더 특수화해서 말하는
 │→ 좀더 남다르게 말하는
 │→ 좀더 남달리 말하는
 │→ 좀더 새롭게 말하는
 │→ 좀더 돋보이도록 말하는
 └ …

 국어사전을 뒤적이니 '특수화'라는 낱말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보기글은 따로 붙지 않고 풀이말만 달립니다. 풀이말을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거나 "보편적인 것과 다르다"고 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를 헤아립니다. 흔히 보지 않는 모습이며, 여느 모습이 아니라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남과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까지 보던 모습이 아닐 테니 '새로워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모습이 아니라 '두드러져 보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 신체시라고 하면 좀더 잘 나타내는 말이 될 듯해요
 ├ 신체시라고 하면 빛깔이 좀더 또렷이 드러날 듯해요
 ├ 신체시라고 하면 느낌이 좀더 살아날 듯해요
 ├ 신체시라고 하면 좀더 나누기 수월할 듯해요
 └ …

 남다르게 보여주고 싶어서 남다르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남달리 느끼게 하고 싶어서 남달리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제 깜냥껏 말하기 마련이고, 어느 사람이든 다 다른 자기 느낌과 생각을 살릴 때가 가장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느낌이나 생각이나 마음을 참으로 다 다르도록 알맞게 추스르면서 글을 쓰거나 말을 쓰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얄궂은 말투를 손질하지 못하거나 짓궂은 낱말을 가다듬지 못하는 우리들은 아닌가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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