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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강정마을 남자들, 모여라

[강정마을은 지금 31] 중덕해안에서 천막생활하는 주민들

등록|2009.09.05 14:13 수정|2009.09.05 14:13

천막투쟁주민들이 강정 중덕해안에 텐트를 치고 바다를 지키고 있다. ⓒ 장태욱



지난 8월 26일 실시된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한 도내 유권자가 전체의 1/3을 넘기지 못하면서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은 불발로 끝났다.

투표 다음날 주민소환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투표를 관권을 동원한 불법투표로 규정하고, 진상조사단을 출범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8월 29일에 강정마을을 찾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주민소환투표과정에서 제기된 관권개입 논란과 관련하여,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을 다른 당에 적극 제안, 추진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고 했다.

중덕해안국방부가 해군기지 예정지로 지목한 강정 중덕해안이다. 주민소환투표가 끝나자 중덕해안에 천막이 생겨났다. ⓒ 장태욱



한편, 주민소환운동본부와 정치권의 대응과는 별도로 강정마을 주민들은 강정바다를 지키기 위해 아주 특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지목한 곳은 중덕해안이다. 이 해안에는 일반적으로 다공질 현무암이 용암대지를 형성하는 제주의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된 너럭바위들이 넓게 대지를 형성하는 곳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예로부터 표면이 부드러운 너럭바위 위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들에게 이곳은 유년의 추억이 저장된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주민소환투표가 끝나고 모두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 마을 주민 고종인씨와 김종완씨는 중덕해안을 찾았다. 그리고는 중덕의 너럭바위위에 천막을 치고, 천막 아래에는 텐트를 쳤다. 이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다.

이 소식이 마을에 알려지자, 8월 28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술과 음식을 들고 바다를 찾았다. 주민소환투표의 여독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이날 저녁 중덕해안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밤바다중덕해안에서 바라본 밤바다의 정경이다. 집어등과 달빛이 밤바다를 환히 밝혔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범섬이다. ⓒ 장태욱




마을 주민들은 이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중덕해안의 야영텐트를 찾으면서, 중덕해안 아영텐트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새로운 투쟁의 구심으로 떠올랐다.

둥근달이 밤하늘을 환히 밝힌 9월 4일 밤, 필자는 다시 중덕해안을 찾았다. 골목길이라 중덕해안으로 가는 밤길은 깜깜했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올래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에 도착하니 고기잡이배들이 켜 놓은 집어등이 달빛과 어울려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중덕 너럭바위 가운데 쳐놓은 천막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천막 가까이 이르니 불빛과 더불어 말소리도 새어나왔다. 주민들은 2년이 넘도록 "강정은 평화다"라고 외쳤다. 평화, 여기에 서 있기만 해도 평화가 심장 안으로 밀려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같은 장면이다.

천막천막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2년이 넘게 "강정은 평화다"라고 외쳤다. 이보다 더 평화로운 곳이 있을까? ⓒ 장태욱



천막을 친 김종완씨와 고종인씨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주민들의 야영투쟁을 거들고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투쟁을 응원하기 방문한 손님도 잇었다. 도보순례와 주민소환투표가 끝나면 서울로 돌아가겠다던 양윤모씨는 '아영투쟁'에 함께하기 위해 상경을 미루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들과 더불어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보니, 마을 청년들이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한치 오징어 다섯 마리를 들고 왔다. 주민소환투표 운동 기간 내내 유세차를 운전했던 정경보씨도 늦은 밤 천막을 찾았다. 정경보씨는 천막에 일찍 오고 싶었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늦었다며, 소주 몇 병을 들고 왔다. 한치오징어는 고종인씨의 손을 거치자 훌륭한 안주로 변해 접시위에 올랐다.

한치오징어마을 청년들이 가져온 싱싱한 한치오징어를 고종인씨가 요리해서 접시에 담았다. ⓒ 장태욱




이곳에 천막을 먼저 친 사람은 고종인씨라고 한다. 고씨가 당시 천막을 친 경위를 설명했다.

"주민투표 결과를 보면서 너무 화도 나고 실망도 되서 술을 마셨어요. 그런데 술이 취하고 나니 중덕바다 생각이 확 나는 거예요. 무작정 달려와서 천막을 쳤죠. 아마 '죽어도 여기서 죽자'는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고종인씨는 자녀 셋을 거느린 직장인이다. 고씨가 비록 천막을 먼저 치긴 했지만 낮에는 출근을 해야 할 입장이다. 다른 주민들도 대부분 입장이 비슷하다. 낮 동안에는 줄곧 천막지킴이를 자임하는 사람은 김종완씨다.

"낮에 올레꾼들이 많이 오거든. 바위 위에 천막과 텐트가 있으니 호기심이 생겨서 와본다고. 그럼 내가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싸우는 사연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지. 돌아가거든 주변에 우리 입장을 잘 전달해달라고 부탁도 하면서."

자정이 넘어도 이들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숱한 얘기들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이들의 대화에서 절대 켜가지 않는 핵심이 있다. 그건 "강정 바다를 절대 내줄 수는 없다"는 거다. 달빛에 비쳐진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의 심성이 부드럽지만 단단한 게 마치 중덕해안의 너럭바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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