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김상웅 지음/시대의 창)
▲ 책표지시대의 창 ⓒ 이명화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김상웅 지음/시대의 창)은 책벌레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이라고 제목을 바꾸어도 무방할 것 같다. 김삼웅 저자가 읽고 그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는데서이다. 말 그대로 책에 관한 책이다. 아마도 책의 '머리글'에서 "책을 읽다보면 좋은 문장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듯이 책에서 좋은 구절들을 발췌해 보관해 두었다가 책에 관한 이런 책으로 펴내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주옥같은 글귀들과 정보들이 너무나 많은 나머지 읽기의 진도가 나지 않기도 하지만, 꼭꼭 씹어 먹듯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된다. 그냥 읽고 넘어가기가 아까워서 습관을 따라 독서노트에 중요 구절들을 깨알같이 적어 넣고 읽은 느낌을 대략 스케치하며 정리하다보면, 한 권의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시간과 정성이 든다.
읽기는 곧 쓰기와 연결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인물들은 독서광이며 책벌레들의 전범이다. 아울러 그들의 독서는 글쓰기와 연결되어 있다. 시공을 초월한 동서고금의 책벌레들의 전범들을 여기서 만나다보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벌레가 약 6만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익충도 많고 해충도 많다. 왜 많은 벌레중에 책벌레라고 했을까. 왜 그토록 책을 읽는 것일까. 키케로는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년을 즐겁게 하며, 번영과 장식과 위급한 때의 도피처가 되고 위로가 된다. 집에서는 쾌락의 종자가 되며 밖에서도 방해물이 되지 않고, 여행할 때는 야간의 반려자가 된다'고 했다. 또 그는 "책이 없는 공허는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도 했다.
유진오는 <독서법>에서 "책! 그 속에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을 두고 쌓아온 사색과 체험과 연구와 관찰의 기록이 백화점 점두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상의 성관(盛觀), 이 이상의 보고(寶庫), 이 이상의 위대한 교사가 어디 있는가. 책만 펴 놓으면 우리는 수천 년 전의 대천재와도 흉금을 터놓고 마음대로 토론할 수 있으며, 육해 수만 리를 격한 곳에 있는 대학자의 학설도 여비나 학비를 들일 것 없이 집에 앉은 채로 자유로 듣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독서광, 글쟁이, 책벌레로 저자는 연암 박지원을 들고 있다. 대학자 다산 정약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존재의 가치와 평가에 대한 결정은 "그가 책을 읽은 것과 그가 쓴 글"로 결정짓게 된다고 했다. 이 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에 살고 책에 죽었던 수많은 책벌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이백과 두보, 추사 김정희 등등, 동서고금의 내로라 하는 이름들이 거명된다.
중국의 이백과 더불어 시성과 시선의 한축을 이루었던 두보의 말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그는 "만 권의 책을 읽고 쓴 자기의 시를 남이 읽어 동(動)하지 않는다면 저승에 가서까지 동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시를 지었다 한다. 이런 두보의 패기는 글쓰기의 전범이 될 만도 하다. 송나라 시인 황산곡은 "선비가 책을 읽지 않으면 하는 말이 무미건조하고, 거울을 볼 때 그 얼굴이 스스로 부끄럽다"고 했다.
T.바르틀린은 <성도전>에서 "책이 없다면 하느님은 말이 없고, 정의는 잠들고, 자연과학은 멈추고, 철학은 절름거리고, 문학은 벙어리가 되며, 모든 것이 칠흑의 어둠 속에서 묻혀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만권의 독서량이 쌓여서 피어나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쳐야 한다"고 했다. 옛 사람들은 책을 '천고상우'라 했다.
천년을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임어당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기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일정한 틀에 박혀 있는 그가 일상에서 접촉하는 것은 소수의 지기일 뿐이므로 보고 듣는 것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 독서는 많은 벗을 사귀는 것과 같다는 위회적인 표현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사흘 동안 물만 먹으면서도 배고픔보다는 촛불을 주지 않아 책을 읽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니체는 "모든 서적 중에서 나는 다만 사람이 그 피로써 쓴 거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평생을 두보시의 연구에 바친 이병주는 두보의 글쓰기를 두고 '눈물로 먹을 갈아 한숨으로 쓴 맘 부림의 앙금이 두시(杜詩)라고 정의했다 한다. 본문에는 엽기적인 애서가와 장서가들이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70만 권을 수집했고,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항상 침대에 놓고 읽었다고 전한다. 70만 권의 도서를 수집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마제국의 권력자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 20만 권을 거침없이 선물했다고도 한다.
중국 명나라 때의 고명한 학자가 송나라 시대의 <후한기>를 탐내어 총애하던 미녀 애첩과 교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 영조나 이덕무와 같이 책을 읽다가 눈병이 날 정도의 독서가나, 17-18세기 조선의 문인 이하곤(1677~1724)처럼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1만권의 책을 수집해 놓고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 집에 무엇이 있나/서재에 만 권 서책이 꽂혀 있네/맹물 마시며/경서를 읽으니/정말 어디에 견줄까"라고 했다.
토마스 아캠프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그동안 나는 어디서나 안식을 찾아보았으나 책을 들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곳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여기서만 봐도 극성스런 책벌레들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책 읽기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기에까지 미치고 있다.
여기서 소개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독한 책벌레들이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쓰기에 대한 중요성,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언급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가을을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가을은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뜨거운 여름 지나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었다. 이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은 더 높아진 듯 하고, 밖으로 줄곧 향했던 마음과 몸이 안으로 향한다.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무슨 재미있을까. 우리 짧은 인생의 시계로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와 역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와 시대를 넘나들며 주옥같은 시와 소설, 위대한 문화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이며,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입성이며 체험이다. 짧은 생으로 다 알 수 없는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발 딛는 것이며 또 다른 세계의 확장이다. 또 다른 세계의 눈뜸이다. 독서를 통해 얻는 통찰력과 깨달음은 우리의 정신을 자라게 한다.
이 세상에 금속활자가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1455년 구텐베르크가 독일 마인츠에서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출간하면서 인쇄술의 놀라운 파급력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필사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전환되면서 소수가 장악하고 있던 지식과 정보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좋은 계절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횡무진하며 책의 세계로 빠져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김삼웅/시대의 창) 2008.8.11발행/값: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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