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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참 쓰기 싫다

등록|2009.09.07 15:13 수정|2009.09.07 15:13
어릴 때 한 두 살 터울 형과 누나, 동생이 있었던 사람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나 역시 한 살 많은 누나와 세 살 어린 여동생과 다투다가 어머니께 혼이 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와 둘째가 한 살, 둘째와 막둥이가 두 살 터울인 우리 집이 다투는 것 때문에 집이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니 이제 회초리를 들 나이도 아니고 형과 누나, 동생이 다툰다고 때릴 수 없습니다. 만날 말로 다투지 말라고 꾸중을 하지도 못하니 참 어렵습니다.

우리 집은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월, 수, 금, 일요일에 25분씩 컴퓨터를 하게 합니다. 문제는 컴퓨터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 맞지 않으면 다툰다는 것입니다. 어제(6일)도 컴퓨터를 하면서 막둥이가 형을 귀찮게 한 모양입니다. 형은 동생이 귀찮게 하니 그만 꿀밤을 한대 때렸습니다. 막둥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형아가 왜 때린데."
"체헌이 네가 귀찮게 했잖아."
"게임을 같이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래 체헌이 너 오빠가 할 때 왜 귀찮게 하니."
"누나도 형아 편이가."

그만 막둥이가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형과 누나가 막둥이를 잘못했다고 하니 더 이상 말도 못하고 다툼은 거기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밥 먹는 자리에서도 서로가 잘했다고 다투는 것입니다.

"컴퓨터 할 때도 다투더니 밥 먹는데도 다투면 어떻게 해."
"체헌이가 자꾸 귀찮게 하잖아요."
"형아가 같이 하면 되는데 같이 안 하니까 화가 났어요."
"너희들 왜 그러니. 형과 동생이 컴퓨터 때문에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에게 책임을 미루는거야.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 컴퓨터 게임가지고 다투면 나중에 커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때는 어떻게 할거니. 그 때도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책임을 지울거야. 너희들 오늘 다툰 것에 대해 '반성문' 써야 겠다."
"형아가 잘못했는데 왜 자꾸 나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거예요."
"체헌이가 잘못했잖아요."
"이 녀석들이 안 되겠다. 반성문 한 장이 아니라 두 장 써!"

▲ 아이들이 쓴 반성문 ⓒ 김동수


'반성문' 참 많이 썼습니다. 반성문 쓰는 일만큼 귀찮은 일도 없습니다. 차리라 회초리 하나 맞는 것이 더 낫습니다. 특히 막둥이는 글 쓰는 일을 누구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반성문 쓰는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형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고, 아빠가 꾸중을 하는데도 형에게 책임을 지웠으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딸 서헌이도 오빠와 동생이 다투는데 화해를 시키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반성문을 같이 쓰게 했습니다. 보고싶은 텔레비전도 보지 못하고 반성문을 열심히 썼던 막둥이가 다 썼다고 가져왔습니다.

나는 형이랑 싸움을 했다. 그래서 아빠한테 혼이 났다. 나는 반성문을 4바닥 쓰고 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형이랑 처음부터 싸우질 않을 걸 그랬다. 나는 반성문을 쓰기 싫다. 반성문을 쓰기 싫지만 반성문을 써야 한다. 형이랑 이제 싸움을 안 할 거다.

얼마나 우스운지 아내와 한참 웃었습니다. 이 내용을 앞 뒤로 두 장을 적어 반성문을 네 바닥 썼다고 가져왔습니다. 세상에 같은 내용을 네 바닥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막둥이의 대단한 실력 앞에 배꼽을 잡았습니다. 조금 억울한 딸 서헌이는 한 바닥만 적었습니다.

저녁에 동생과 말다툼을 하였다. 싸운 이유는 동생이 컴퓨터를 할 때 동생이 오빠를 때렸기 때문이다. 동생이 오빠를 때려서 내가 하지 말라면서 화를 내니까 동생도 화를 냈다. 나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오빠, 체헌아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자. 동생에게는 화를 절대로 내지 않을 것이다. 체헌아, 정말 미안해.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고. 과연 그렇게 될지 궁금합니다. 동생에게 한 방 얻어 맞아 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반성문까지 써야 하는 큰 아이는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부모님 앞에서 동생이랑 소리 지르며 싸운 잘못을 인정한다. 이런 일로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체헌이가 계속 시비를 걸어도 참을 수 있도록 하겠다. 또 내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겠다. 체헌아 우리 싸우지 말고 형제간에 우애를 간직하면서 지내자.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아빠에게 불만을 표시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로 싸우면 안 된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에는 억울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성문이 좋은 교육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한 두 번은 써보는 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둥이 말처럼 반성문은 참 쓰기 싫은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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