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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사수대' 유감, 이것이 왜 빠졌을까

비정규직 강사 문제 언급 안해, 문제의 답은 고등교육법 개정

등록|2009.09.08 09:53 수정|2009.09.08 12:03
지난 8월을 고비로,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그간 몸담아온 일련의 일터를 잃고 실업자가 됐다. 길게 보면 한예종 사태 이후 1년여에 걸쳐 명함을 줄줄이 빼앗긴 셈인데, 이를 부당한 처사로 바라본 소수의 논평가들이 연명해 '진중권 지키기'를 선언함으로써 국지적인 전선이 그어진 모양새가 됐다.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 담장 너머 벌어진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리긴 힘들다. 당사자 중 어느 한편에 호의를 품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러한 호의가 작동해 판단을 그르칠 여지가 없을 듯하다. 약간의 분별만 지닌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 싸움을 걸어온 쪽이 내세운 억지 논리에 말문이 막힐 정도의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문이 전하듯, 진중권을 교수직에서 해임한 몇몇 대학들이 실제로 정권 차원의 압력을 경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그래도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동의대 신태섭 교수의 경우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 정부가 쓴 소리 하는 지식인의 직장을 직접 압박해 마침내 해고할 만큼 망가진 정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기대치로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학 측에서 얼마간의 눈치를 보았고, 그 예민한 살핌이 진중권의 해임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 라는 상상은 할 수 있겠다. 이런 가정에서조차 결과적으로 대학이 눈치를 살피게 만든 정권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사운영과 학생선발에 관한 무한대의 자유를 제 천부인권인양 요구해온 대학 측의 자기배반이 더 밉살맞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 싸움은 대학측이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온 자율성을 기꺼이 훼손하는 자해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미 얄궂은 코미디에 가까운데다, 그마저도 사문화된 규정을 근거로(중앙대), 다른 대학이 하니깐 덩달아(홍익대) 무성의하게 진행된다는 점에 이르면 이야기까지 허약한 3류 코미디로 전락한다.

이쯤 되면 굳이 상식이나 윤리에 기댄 문제의식을 발휘할 필요도 없다.

진중권이, 그가 여태껏 보여준 미적 감각과 너무나 동떨어진 싸움판에 억지로 끌려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지원하고 구출해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따라서 나는, 진지함과 사고의 깊이에서 도저히 견줄 수 없음을 알지만, 진중권 사수대를 자처한 강준만, 고종석, 김규항, 우석훈, 홍기빈 등 5인의 논평가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연명하며 고마움과 지지를 보낸다.

진중권 사수대, 백번 지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은, 섭섭한 뒷맛이 남는다.

비정규직 교수 문제 말이다.

진중권과 비슷한 이유로 대량해고 위기를 맞은 비정규직 교수들

진중권 해임 사태의 조금은 먼, 그러나 따져 들어가면 핵심에 위치한 원인을 진중권 사수대는 어째서 제기하지 않는 것인가.

진중권 사태를 정파 문제로만 들여다 볼 수 없는 까닭은 비슷한 시기에 진중권과 유사한 사유로 대량해고 위기를 맞이한 비정규직 교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이후 다섯 번에 걸쳐 발의된 고등교육법 개정안 중 하나라도 온전히 통과되었다면,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시정 요구에 정부와 대학이 잠시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진중권을 비롯한 시간강사들이 이렇듯 속절없이 쫓겨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정규직 보호법의 발효 직후, 진중권과 마찬가지로 개강을 코앞에 두고 해임을 통보받은 170여명의 부산대, 영남대의 비정규직 교수들이 빗속에서의 시위와 협상, 인권위 진정까지 거치며 주당 5시간 미만의 제한적인 강의시간을 되찾을 때까지 언론과 논평가들이 보인 관심은 그간 진중권의 수난에 쏠린 시선의 크기에 비교하면 야박하게만 보인다.

엿새 전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된 진중권 사수대의 성명서에서도 지식인을 탄압하는 정권의 야비한 처사에 대해서만 일갈할 뿐 그 시기를 전후해 해고포화를 맞고 있는 동료 무명강사들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사수대 5인이 한국사회의 문제에 관한한 전방위적으로 발언해온 인물들이었기에, 당연히 어색했다. 

한국사회의 모든 성역과 금기를 거침없이 파헤치던 언론학자 강준만.

대학의 시간강사 착취구조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김우창을 두고 비판하며 차별받는 소수와 연대할 것을 주문하던 대한 제일의 문장가 고종석.

품위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와 그럴 수 없는 이로 나뉠 뿐이며 살기 위해 품위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이에게 눈길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당대의 운동가 김규항.

스스로 시간강사임을 자임하며 자신과 동료강사들의 애환을 글로 뿌려온 진중권 사수대의 기획자 우석훈.

거시적 안목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누구보다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경제학자 홍기빈.

면면을 되새기며, 가당찮은 내 의심을 거둔다. 

좌우를 막론한 현역 논평가 중, 논리벽과 윤리적 올바름에 있어 국가대표 라인업에 선정되고도 남을 분들이 이 문제를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발표될 재성명에 기대를 걸어본다.

우석훈은 진중권을 에밀 졸라에 빗대었지만 굳이 때깔 좋은 비유가 아니더라도 진중권은 이미 진보의 명사다.

더욱이 이번 수난으로 직장은 잃었지만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지식인이라는, 근사한 상징 꾸러미가 진중권의 이름 석자에 포개어지지 않았는가. 평론가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진중권은 김현을 닮은, '자리매김'을 거부하는 방랑 지식인이다. 설령 그들 대학에서 붙잡았어도 때가 되면 털고 떠날 자리였을 것이다. 미련을 두지 말고 이참에 진중권 본인도 사수대에 합류하는 건 어떨까. 비정규직 교수, 시간강사 사수대에 말이다. 진지한 제안이다.

개인적으로 사숙해온 스승이기도 한 저 6인의 지식인들이 (썩 길지는 않겠지만) 한 목소리를 내는 순간을 상상하니, 그 울림만으로, 벅찬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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