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어머니 목걸이에 담긴 아내의 마음

아내 덕분에 환하게 웃으신 어머니

등록|2009.09.09 16:09 수정|2009.09.10 14:29
가을 밤바람이 시원합니다. 엊그제 보름엔 환한 달빛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을 풀벌레들이 찌르릉 대며 우는 소리도 정겹게 들립니다. 이맘 때 쯤 시골 부엌 부뚜막엔 귀뚜라미 녀석들이 톡톡거리며 뛰어 놀곤 했습니다. 옛 부엌이 사라진 지금은 그 귀뚜라미들을 부엌에선 볼 수 없습니다. 그 부엌에서 놀던 녀석들은 이제 길거리나 풀밭에서 어쩌다 보일 뿐입니다. 때론 마당에 켜놓은 불빛을 찾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도 도심에선 언감생심입니다.

엊그제가 어머니 팔순이었습니다. 변변치 않은 자식들을 둔 탓으로 어머닌 제대로 된 생신 상 한 번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닙니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두 분의 생신 무렵만 되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어머니 생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엄마 생신 때 목걸이 하나 해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목걸이? 갑자기."

뜬금없는 나의 목걸이 타령에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묻습니다. 그 물음 속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기에 난 다시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늘 걸려서 말이야. 10년 전부터 엄마 목걸이 하나 해주고 싶었거든. 언젠가 엄마가 그러더라구. 누구누구 자식들은 자기 엄마한테 뭐뭐 해줬다고. 그때부터 생각한 거야."
"……."

내 말에 아내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빠듯한 살림살이가 머리에 떠오를 거고, 이런 저런 생각도 났을 것입니다.

"걱정마. 월급통장 손 안 댈 테니까. 원고료 받은 걸로 할 거야."
"알았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렇게 말을 하곤 선물 이야긴 잊어버렸습니다. 남자들이란 게 마음은 있지만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가 봅니다. 그런데 지난 주 일요일, 아내가 마트에 간다며 나갑니다. 함께 가자고 했더니 혼자 가겠다고 합니다. 평상시엔 안 간다고 해도 끝까지 같이 가자고 하는 아내입니다.

"혼자 갈 테니 자기는 애들이랑 집에 있어요."
"왜? 그냥 같이 가. 데이트도 하고."
"됐어요. 나 혼자 갔다 올게요."

▲ 어머니 생신 선물로 해드린 목걸이. 아내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 김현



아내는 끝까지 혼자 가겠다고 합니다. 그런 아내를 난 눈치도 없이 진드기처럼 따라 나섰습니다. 아내는 함께 가면서도 '어휴! 말도 안 들어, 안 들어요' 하고 타박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의 어깨에 손을 딱 올리고 마트에 갔습니다.

마트에 도착하자 아내는 매장 안에 있는 금은방으로 향합니다. 그리곤 지갑을 열어 주섬주섬 귀고리 몇 개를 꺼냅니다. 그런데 금은방 주인은 안면이 있는 듯 웃더니 뭔가를 꺼냅니다. 그리곤 나에게 한 마디 합니다.

"어머니 드리려고 한다던데, 정말이세요?"
"네? 그러긴 한데…."

그러면서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습니다. 아내는 그런 내 표정엔 안중에 없다는 듯 자신의 할 일만 합니다. 몇 개 안 되는 귀고리를 팔고 나머진 돈으로 어머니의 목걸이 값을 계산했습니다. 난 그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고마운 감정이 듬뿍 묻어나는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봤습니다. 그런 내 눈빛이 쑥스러운지 왜 그리 쳐다보냐 합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나, 쑥스럽게."
"아니, 그냥 고마워서. 실은 나 잊어버리고 있었거든."
"고맙긴 뭐가 고마워. 당신이 십 년 전부터 해주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못해준 게 마음에 걸렸다는데 어찌 그냥 있어요."
"그래서 나 몰래 목걸이 맞춘 거야?"
"그래요. 우리 서방님 마음에 걸린 거 쑤욱 내려가라고."

마음에 걸렸다는 내 말이 아내의 마음을 걸리게 했나 봅니다. 결혼 후 아내에게 해준 선물이라곤 결혼 첫해 생일에 해준 팔찌가 전부입니다. 결혼 생활 13년 동안 기념일이나 생일 때면 겨우 잊지 않고 꽃 한 다발이 전부였습니다. 아마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이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별 내색 없이 어머니 생일 선물로 남편 모르게 목걸이를 준비한 아내는 고맙다는 남편의 말에 그저 웃고 맙니다.

어머니 생신날, 아내와 함께 선물을 내밀고 목에 채워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비싼 걸 돈도 없을 텐데 왜 사왔냐' 하시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십니다. 늘 허전했던 어머니 목에 걸려 있는 십자가 금목걸이가 유난히 반짝입니다. 그 속에 아내의 마음이 보입니다. 아내도 어머니의 웃는 모습에 환하게 웃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