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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47)

― '좋은 조건의 일자리', '더 나은 조건의 계약' 다듬기

등록|2009.09.11 11:01 수정|2009.09.11 11:01

ㄱ. 좋은 조건의 일자리

.. 몇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있으면 금세 직장을 옮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 … 그들은 아무리 열악한 조건의 직장일지라도 우선은 계속 버텨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  《마광수-사랑받지 못하여》(행림출판,1990) 164쪽

 '이직(移職)'을 안 하고 "직장을 옮겨"라고 적으니 반갑습니다. 다만, '직장(職場)'은 '일터'로 다듬고, '열악(劣惡)한'은 '나쁜'이나 '안 좋은'이나 '못한'이나 '모자란'으로 다듬어 줍니다. "옮겨 버리는 경우(境遇)가 많다"는 "옮겨 버리곤 한다"나 "옮겨 버리기 일쑤이다"로 손보고, '우선(于先)은'은 '먼저'나 '어찌 되었든'으로 손봅니다. '도리(道理)'는 '길'이나 '수'로 손질해 줍니다.

 ┌ 조건(條件)
 │  (1)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상태나 요소
 │   - 지리적 조건을 갖추다 / 농산물은 기후적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큰 영향을 받는다
 │  (2) 일정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내놓는 요구나 견해
 │   - 결혼 조건 / 조건을 달다 / 이익의 반을 가진다는 조건 아래 / 아무런 조건 없이
 │
 ├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
 │→ 조건이 더 좋은 일자리
 │→ 더 좋은 일자리
 │→ 더 나은 일자리
 │→ 더 일하기 좋은 곳
 │
 ├ 열악한 조건의 직장
 │→ 조건이 나쁜 일터
 │→ 안 좋은 일터
 │→ 일하기 나쁜 곳
 └ …

 일할 곳이 마땅히 없어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일할 곳은 있으나 '조건이 좋지 않아' 일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귈 때에도 '조건'을 따지고, 혼인을 앞두고 '조건'을 걸기도 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조건'을 헤아리며,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겠다면서도 '조건'을 붙이곤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꾸 "토를 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에서건 마을에서건 꼭 "토를 다는" 사람이 있고, 정당과 정당 사이에서도, 그러니까 나라일을 맡은 분들이 모임을 할 때에도 서로서로 "토를 달며" 잔뜩 늘어지게 하곤 합니다.

 ┌ 지리적 조건을 갖추다 → 알맞는 땅이다 / 괜찮은 자리이다 / 걸맞는 곳이다
 └ 기후적 조건에 따라 → 날씨에 따라 / 날씨가 어떠한가에 따라

 한자말 '조건'은 언제부터인가 딱히 한자말이라는 느낌보다는 우리들이 으레 쓰는 말이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이 낱말을 쓰는 분 가운데 한자로 밝혀 쓰는 분이 거의 없을 뿐더러, 굳이 한자를 밝혀야 할 까닭을 느끼는 분이 없습니다. 한자말 '조건' 쓰임새를 살피면, 국어사전 두 번째 뜻풀이에서 '토'하고 거의 같은데, 모든 자리에서 '토'로 다듬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토'로 다듬을 때 잘 어울리는 자리가 있고, '조건'을 그대로 둘 때 걸맞는 자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토'도 '조건'도 덜어내고 글흐름에 맡길 때가 한결 알맞다 싶은 자리가 있어요. 이를테면 "이익의 반을 가진다는 조건 아래"는 "이익에서 반을 가지기로 하고"처럼 다듬으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 조건을 달다 → 토를 달다
 ├ 이익의 반을 가진다는 조건 아래
 │→ 이익에서 반을 가진다 하면 / 이익 가운데 반을 가지기로 하고
 └ 아무런 조건 없이 → 아무것도 없이 / 아무런 바람 없이

 보기글은 '일하는 조건이 어떠한가'를 말합니다. 일터에서 조건이 좋다면 "더 좋은 조건인 일자리"라 하거나 "조건이 더 좋은 일자리"라 해 주고, 일터에서 조건이 나쁘다면 "더 나쁜 조건인 일자리"라 하거나 "조건이 더 나쁜 일자리"라 해 줍니다.

 그리고, '조건'이라는 낱말을 덜고 "더 좋은 일자리"나 "더 나쁜 일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일하기 더 좋은 곳"이나 "일하기 더 나쁜 곳"이라 해 보아도 되고요. "마음에 드는 일터"나 "마음에 안 드는 일터"로 풀어내 보아도 괜찮습니다.


ㄴ. 더 나은 조건의 계약

.. 난 좀 더 나은 조건의 계약을 원했어요. 하지만 그 임금협상에 나가기 전까지 그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뭘 원하는지 전혀 몰랐죠 ..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 55쪽

 '원(願)했어요'는 '바랐어요'나 '생각했어요'로 다듬어 줍니다. "나가기 전(前)까지"는 "나가기 앞서까지"로 손보고, '전(全)혀'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손봅니다.

 ┌ 더 나은 조건의 계약을
 │
 │→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하기를
 │→ 더 나은 터전에서 일할 수 있기를
 │→ 더 나은 일삯을 받으며 일할 수 있기를
 └ …

 옳고 바르게 말하고 글쓰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옳고 바르게 생각하기란 힘들 수 있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아가기란 고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저 스스로한테 묻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 앞서 나 스스로한테 말할 때, 옳고 바르게 말하고 글쓰기란 어려운가? 옳고 바르게 생각하기란 힘이 드는가? 옳고 바르게 살아가기란 고단한가?

 거꾸로, 그릇되고 엉뚱하게 말하고 글쓰기란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궁금합니다. 잘못 생각하거나 엉뚱하게 생각하거나 그릇되게 생각하는 일이란 힘이 드는지 힘이 안 드는지 궁금합니다. 잘못된 길을 걸어가거나 엉뚱하게 살아가거나 그릇되게 살아가는 일이란 고단한지 고단하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 더 나은 계약을 바랐어요
 ├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계약을 바랐어요
 ├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계약을 바랐어요
 ├ 더 제 땀방울에 알맞는 계약을 바랐어요
 ├ 더 제 땀방울을 헤아리는 계약을 바랐어요
 └ …

 나를 좀더 사랑한다면 내 삶이 좀더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나를 좀더 믿는다면 내 삶과 내 이웃사람 삶이 한결 나은 길을 걸을 수 있게끔 마음을 바칩니다. 나부터 옳고 바르게 일할 수 있도록 힘쓰고, 내 이웃까지 다 함께 웃고 어깨동무할 길을 찾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 삶터를 돌아보건대, 나부터 내 삶을 좀더 나은 쪽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내 삶부터 좀더 나은 쪽으로 이끌지 못하는 가운데 내 이웃 삶터가 다 같이 나은 쪽으로 뻗게 하도록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이어집니다. 자꾸자꾸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서로 즐겁고 오붓하게 사귀고 맺는 생각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결 나은 말과 글을 살피지 못합니다. 좀더 나은 말과 글로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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