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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가 시간강사 무덤... '메뚜기족' 불쌍?"

[지역언론 별곡 296] 비정규교수 해촉사태 바라보는 신문들 '논점'

등록|2009.09.11 20:58 수정|2009.09.11 21:16
"메뚜기족 무더기 해고"
"지방대 시간강사는 소모품?"
"정규직 전환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경제적 안정"

대학담당 출입기자들이 바빠졌다. 비정규직보호법의 포로가 된 비정규직 교수들의 집단 해고를 더 이상 바라만 볼 수 없다는 듯, 일부 지역신문들도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 자료가 크게 작용했다.

오랜 대학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시간강사 제도를 지역적 관점에서 다룬 기사들이 지면에 묻어났다. 대학 강단에서 전임교수들과 똑같이 강의를 하고 있지만 당국과 대학이 교원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령강사'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을 대학 관계자들과 전임교수를 찾아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대전· 충청] "지역대학,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적용해 '시간강사의 무덤'"

시간강사는 소모품?<대전일보>가 시간강사 해촉과 관련된 기사를 지역적 시각에서 다뤄 11일 내보냈다. ⓒ 대전일보

대전· 충청권이 가장 놀란 눈치다. 국립대와 사립대 등 해당 지역소재 대학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강사들이 해촉된 때문이다. 지역언론이 술렁이고 있다.

<대전일보>는 황당하고 민망했던지 '지역대학이 시간강사 무덤', '시간강사는 소모품'이라는 표현을 제목과 기사내용에서 사용했다.  

11일 '대전·충남 지역대, 시간강사는 '소모품?''이란 제목의 기사는 "2년 이상 고용자의 정규직 전환을 규정한 비정규직법 적용으로 이번 2학기 때 해고된 전국의 대학강사 4명 중 1명이 대전·충남지역 대학 강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리드에서 전제했다.

기사는 이어 "일각에서는 지역 대학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시간강사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라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전·충남 지역대학 강사는 모두 308명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신문은 기사에서 대학명을 밝히진 않았다. "자료를 낸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강사를 해고한 대학은 대전의 A대학으로 무려 195명에 달했다. 100명 이상을 해고한 학교는 전국에서 이 대학을 포함해 두 곳 뿐이다"고 전했다.

지역대학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대학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해촉강사 입장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관심의 변화는 분명했다. 기사는 "자발적으로 그만 둔 강사, 다른 대학에서도 중복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 등이 많이 포함된 수치다"며 "학교측의 일방적인 강압이나 강사와의 갈등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학교 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중도일보>는 이 문제를 일찍 예견했던지 조심스레 짚었다. '2년 근무 시간강사 비정규직법 적용에 개강 앞 '해고바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역의 한 국립 대학은 30여 명을 대상자로 보고 강의시간을 5시간 미만으로 줄이는 한편, 한 학기 강의를 쉬도록 하는 방안을 적용하고 있다"며 "A 대학은 50여 명, B 대학 40여 명 등 대전지역 대부분의 대학들이 30여 명 이상의 시간 강사를 정리하거나 암묵적으로 2년 이상된 강사에 대해 임용 자체를 배제시키는 방안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사는 "시간강사들이 시간당 평균 3만 원 안팎의 강사료를 받는데 5학점 강의를 위해 학교를 오가도록 하는 것은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대학 관계자의 말도 덧붙였다.  

[강원] "일부 제출자료 빠져... 해고된 시간강사 수 더 많을 것"

시간강사와 메뚜기족<강원일보>가 최근 시간강사 문제와 관련하여 '메뚜기족'에 비유한 칼럼을 내보냈다. ⓒ 강원일보

이날 <강원도민일보>도 지역소재 대학들의 시간강사 해촉문제를 다뤘다. '도내 5개 대 시간강사 144명 해고'란 제목과 함께 "2년 이상 고용자의 정규직 전환을 규정한 비정규직법을 적용, 이번 2학기 때 해고된 도내 대학의 시간강사 수가 100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강릉원주대와 강릉영동대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김진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파악돼, 도내 대학에서 해고된 시간강사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강원일보>도 시간강사 해고바람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던지 시간강사를 '메뚜기족'이란 우회적 표현을 내세워 칼럼으로 내보내 시선을 끌었다. '메뚜기족'이란 제목의 미니 칼럼은 시간강사 문제를 이렇게 접근했다.

"`메뚜기족' 대학 시간강사를 일컫는 말이다.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옮겨야만 하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특수한 직업 아닌 직업이 바로 대학 강사직이다.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1년 평균 임금 400만 원 내외다. 학기마다 반복적으로 위촉과 해촉을 당하면서 자괴감과 부끄러움으로 결국에는 대학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이어 칼럼은 그들의 수난사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후 첫 개강을 맞은 강릉지역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이 무더기로 미위촉된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원주대는 지난달 2년 이상 연속 강의해 온 시간강사 60명에게 강의를 주지 않았다"며 "많은 투자로 길러낸 강사들의 지적 자산이 사장되면 국가·지역의 미래는 어두워 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전북] "정규직 전환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경제적 안정"

심리적, 정신적 안정 중요...<새전북신문>이 11일 보도한 시간강사 관련기사. ⓒ 새전북신문

전북지역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짚은 기사가 나왔다. <새전북신문>은 이날 '전주대.우석대 시간강사 총 70명 해고'란 제목의 기사에서 밝혀진 숫자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내에서는 전주대가 36명, 우석대가 34명을 해촉했다"는 기사는 "하지만 도내에서 자료를 제출한 대학은 이들 2개 대학과 원광대, 군산대, 예원예술대(이상 각 0명) 등 모두 5곳에 불과해, 다른 대학들까지 파악하면 도내 대학에서 해고한 시간강사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사는 해당대학의 입장에 우선 귀 기울였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2년이 지난 강사들을 해촉할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법이 대학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반 사업장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항변한 대학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승환 전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인터뷰 내용을 실어 주목을 끌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예리하게 짚으면서 대안도 제시했다.

기사에서 김 교수는 "시간강사에 비정규직법을 적용할 경우 2년이 지나면 신분이 보장되는 전임교수로 전환해줘야 한다. 시간강사가 전임으로서 적격성이 있느냐는 건 별개로 하더라도, 그 많은 시간강사를 모두 전임으로 채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시간강사를 해촉한 대학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전적으로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애초에 국회에서 법을 졸속으로 만들어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업장에 2년 규정을 적용하되 대학 등 특수한 사례를 대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학 강사의 경우 정규직 전환보다 중요한 것이 심리적·경제적 안정"이라며 "이들이 안정적으로 학문활동을 하고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경향> "대학의 얄팍한 계산 탓... 교육당국 나서라"

<한겨레신문> 사설이 이날 문제점을 제대로 짚었다. '시간강사 해고대란, 교원지위회복으로 막아야'란 제목에서다. 사설은 제도적 문제를 초반부터 꼬집기 시작했다.

"이런 야만적인 해고대란의 원인은 자명하다. 오로지 정규직 전환을 피하려는 대학의 얄팍한 계산 탓이다. 전문 연구자인 대학강사를 싼값에 쓰다 버리는 대학의 행태는 악덕 기업주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이러고도 학문과 교육의 전당이라고 자처할 것인지 궁금하다."

사설은 또 대학 당국의 이런 몰염치한 행태를 방조한 교과부의 책임이 더 크다며 교과부를 향해 야무지게 쏘아 붙였다. 이주호 차관을 빗대어 뼈 있는 지적을 했다. 

"교과부는 이제라도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 정치적 이유로 박탈된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회복해주고 정부와 대학이 협력해 그들의 처우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국회의원 시절 관련법안까지 제출했었다."

<경향신문>도 사설 '시간강사 무더기 해고하는 대학의 파렴치'에서 시간강사 무더기 해고는 비정규직법의 문제만이 아님을 에둘러 지적하며 교육당국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교육당국은 교원의 신분을 재정립하고 대학의 전임교원 비율을 높이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사설은 "대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학의 정규교수들도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내 일처럼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은 사설 말미에서 따끔한 충고와 대안을 동시 담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대학의 맹성이다. 대학 스스로 학문적·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시간강사를 남용하는 '학위 장사'의 틀은 바뀔 수 없다."

<조선> "한시적으로나마 법적 교원 신분을 부여하자?"

한편 이날 <한겨레>와 <경향>에 이어 <조선일보>가 시간강사 집단해촉 문제를 사설에서 언급한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의제설정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라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조선>은 사설 '비정규직법 탓에 무더기로 쫓겨난 대학 시간강사들'에서 "이번 기회에 시간강사들의 신분과 처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우선 대학 스스로 시간강사의 희생 위에서 대학을 운영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또 "정부는 시간강사들에게 한시적으로나마 법적 교원 신분을 부여하고 사회보험 혜택의 길을 열어줄 다각적 지원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시적이란 표현이 거슬린다. 그동안 숱하게 지적돼 왔던 문제였다. 과거 70년대 유신정권이 즉흥적이고 한시적으로 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이후 30여 년간 대학사회를 무겁게 짓눌러 왔던 불합리한 강사제도임을 몰랐던 것일까.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어쨋든 <조선>의 이날 사설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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