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독하게 웃기고, 가슴 아프게 잔혹한 쿠데타!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등록|2009.09.12 18:02 수정|2009.09.12 18:02

▲ <열외인종 잔혹사>겉표지 ⓒ 한겨레출판



집을 나갈 때 무공훈장 단 군복을 입고 나가는 노인이 있다. '빨갱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그의 이름은 장영달. 그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국에 대한 강연을, 그래봤자 '빨갱이를 조심하라!'라는 내용으로 누구도 요청하지 않는 것이지만, 어쨌거나 강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날'도 강연을 하다가 어떤 인연으로 예언을 듣게 된다.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인턴인 윤마리아, 그녀의 운명은 이제 곧 결정된다. 미국에 가서 공부도 했고 자격증도 땄지만, 이상할 정도로 취직이 안 되던 그녀였다. 그런 터에 입사한 제약회사는 내일 정규직 사원 2명을 뽑겠다고 공언했다. 정규직이 되어야 할 그녀는 어떤 인맥의 끈을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날'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명품 같은 짝퉁을 대거 구입한 뒤에 카니발을 벌인다는 본부장을 찾으러 간다.

한 달에 88만원 받고 코엑스몰에서 일하던 김중혁, 그는 이제 노숙자다. '그날'에, 그는 피를 판 돈으로 술을 마시고 한가로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처구니없는 예언을 듣는다.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믿기지 않지만, 그는 용산역에서 노숙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본다. 물론, 그 쿠데타는 금방 진압되었다. 그는 잡히지 않기 위해 무조건 도망친다.

고등학교를 때려 친 소년 기무, 그는 게임방에서 놀다가 이상한 정보를 본다. 게임업체의 이벤트였는데, 그 내용은 독립문역 보관함에 가서 총을 찾고 보스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리얼 서바이벌 이벤트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한다. 하지만 기무는 그 정보를 믿고 보관함에 갔다가, 정말 총을 얻게 된다. 다른 지령을 따르니, 이번에는 총알도 얻게 된다. 그렇다면 무얼 해야 하는가. 이것을 게임이라고 생각한 기무는 보스를 죽이러 간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던 장영달과 윤마리아 그리고 김중혁과 기무는 어느 한 군데에서 만난다. 삼성역에 있는 코엑스몰이다. 장영달은 돈을 벌기 위해, 윤마리아는 취직을 하기 위해, 김중혁은 체포되지 않기 위해 도망치다가, 기무는 보스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코엑스몰에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평소와 똑같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뿐이다.

그런데, 일이 생긴다. 코엑스몰이 정전이 되고 방화벽이 내려가더니, 양의 탈을 머리에 쓰고 연미복을 입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어떤 이유로 코엑스몰에 온 네 명의 사람은 무언가를 예감한다. 장영달과 김중혁은 예언에 있는 쿠데타를, 윤마리아는 취직할 수 있는 기회를, 기무는 본격적으로 이벤트가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뭔가를 하려고 하고 <열외인종 잔혹사>는 지독하게 웃기면서, 가슴 아프게 잔혹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소설이 웃긴 건 왜인가. 아직도 '빨갱이'를 운운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장영달의 모습 때문이다. 과거만을 떠올린 채, 현재를 부정하는 그 모습은 블랙코미디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인맥으로 취직할 거라 생각하는 '된장녀' 윤마리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장영달과 마찬가지로, 코미디다.

총을 들고 이 세계를 게임이라 착각한 기무는 어떤가. 그 또한 지독하게 웃긴다. 마치 개그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인물이다. 양의 탈을 쓴 '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 블랙코미디적인 것은 동시에 잔혹하다.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이, 서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엘리트 위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소설 속의 네 명은 피해자다. 그들이 만드는 코믹스러운 몸짓은, 어쩌면 그 피해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은 잔혹하다. 가슴 아프게, 잔혹한 것이다.

이 세상의 열외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건네는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이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쿠데타와 같은 소설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