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잘못 쓴 겹말 손질 (74) 다름의 차이

[우리 말에 마음쓰기 751] '억측'과 '억지'와 '지나친 생각'

등록|2009.09.13 15:15 수정|2009.09.13 15:15

ㄱ. 지나친 억측

..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억측일지 모르겠다 ..  《가마타 사토시/허명구,서혜영 옮김-자동차 절망공장》(우리일터기획,1995) 71쪽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는 "그렇게 생각하는 일도"나 "그러한 생각도"로 다듬어 봅니다.

 ┌ 억측(臆測) : 이유와 근거가 없이 짐작함
 │   - 억측이 구구하다 / 억측이 난무하다 /
 │     그 사건에 대한 터무니없는 억측이 파다하게 퍼졌다
 │
 ├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억측일지
 │→ 그렇게 생각하는 일도 지나칠지
 │→ 그러한 생각도 지나친 억지일지
 │→ 그러한 생각도 억지일지
 └ …

 까닭이 없이 생각하는 일을 가리켜 한자말로는 '억측'이라 합니다. 우리 말로는 이런 모습을 가리키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니, '억지'나 '어거지'가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억지 생각'이나 '어거지 생각'처럼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억지 말'이나 '어거지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억측'을 찾아보고 말풀이를 다시 한 번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까닭이 있이 생각하지 않고, 까닭이 없이 미리 앞서가며 하는 생각이라고 하니까, 이런 말풀이라면 어느 한편으로는 '지나친 생각'이라고 가리키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생각"이라고 살짝 적어 봅니다.

 알고 보면 그러하지 않은데, 마치 그러하기라도 하듯 생각하는 일은 한 마디로 '억지'나 '어거지'입니다. 억지나 어거지는 맞은편이나 다른 이를 헤아리지 않고 내 마음대로 밀어붙이거나 몰아세우는 매무새입니다. 그러니까, 다 함께 느긋하게 받아들일 만하도록 하는 이야기가 아닌 '지나치게' 밀어붙이거나 몰아세우는 매무새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억지'를 찾아봅니다.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이라고 풀이합니다. '무리(無理)' 뜻풀이도 찾아봅니다. 한자말 '무리하다'는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로 '억측'이 되었든 토박이말로 '억지-어거지'가 되었든, 모두 '지나치게' 무언가를 하려는 매무새라는 이야기입니다.

 ┌ 억측이 구구하다 → 어거지 말이 많다 / 어이없는 얘기가 많이 떠돈다
 ├ 억측이 난무하다 → 억지 생각이 춤을 춘다 / 터무이없는 말이 판치다
 └ 억측이 파다하게 퍼졌다 →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널리 퍼졌다

 언제든지 알맞게 해야지, 지나치면 탈이 납니다. 지나치기에 말썽이 생깁니다. 옳게 말하고 바르게 글을 써야지, 지나치게 말을 하거나 섣불리 앞서가며 글을 쓰면 나 스스로한테도 안 좋고 이웃한테도 좋을 일이 없습니다.

 우리 깜냥을 빛내며 옳고 바르게 말을 하고 글을 쓰면 내 생각과 뜻을 옳고 바르게 나타낼 뿐 아니라, 수수한 멋과 싱그러운 슬기를 뽐냅니다. 그러나 우리 깜냥을 빛내지 않는 가운데 겉치레를 앞세우거나 겉꾸밈에 지나치게 매이면 내 생각이며 뜻이며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말삶과 글삶을 무너뜨리는 데에 한몫 단단히 이바지하는 꼴이 됩니다.


ㄴ. 다름의 차이

.. 머리가 좋고 영악한 아이일수록 다름의 차이를 금세 알아차리고 행동한다 ..  《장차현실-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한겨레출판,2008) 58쪽

 '영악(靈惡)한'은 '약은'이나 '셈이 밝은'으로 다듬습니다. '행동(行動)한다'는 글흐름을 살피면서 '몸을 맞춘다'나 '얄밉게 군다'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 이것과 저것은 차이가 있다 / 차이가 나다
 │
 ├ 다름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차리고
 │→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차리고
 │→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차리고
 │→ 여느 아이와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차리고
 └ …

 국어사전을 찬찬히 뒤적여 본 분이라면, '差異' 같은 한자말을 굳이 쓸 까닭이 없음을 어렵잖이 알게 됩니다. 국어사전을 찬찬히 뒤적여 보지 못한 분들은 '차이'라는 한자말을 이냥저냥 쓰다가 '다르다'라는 토박이말과 '차이'라는 한자말이 어떤 사이인가를 깨닫지 못하면서 겹치기로 잘못 쓰곤 합니다.

 말뜻 그대로 '다름'을 뜻할 뿐인 한자말 '차이'입니다. 국어사전 뜻풀이에 "같지 아니하고"라는 대목이 보이는데, 이 말풀이는 '다름'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차이'를 풀어낸 말조차 겹치기인 셈입니다.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은 꼴입니다.

 ┌ 이것과 저것은 차이가 있다
 │
 │→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
 │→ 이것과 저것은 서로 다르다
 │→ 이것과 저것은 저마다 다르다
 │→ 이것과 저것은 여러모로 다르다
 └ …

 '다르다' 한 마디를 알맞고 넉넉하게 쓰면 됩니다. 때때로, 사이사이 꾸밈말을 넣으면서 느낌을 달리하면 됩니다. 다르다고 할 때 얼마나 다른지, 어디가 다른지, 어느 대목이 어떻게 다른지를 한두 마디 낱말로 보여주면 됩니다.

 ┌ 다름의 다름 (x)
 ├ 다름의 차이 (x)
 ├ 차이의 다름 (x)
 └ 차이의 차이 (x)

 어디가 얄궂은지 잘 모르시겠다면, "다름의 다름"처럼 적어 보고 "차이의 차이"처럼도 적어 보셔요. "차이의 다름"처럼도 적어 보면서 입안에서 말을 굴러 보셔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한자말이 다름을 알아야 하고, '우리 말' 가운데에는 토박이말이 있으며 한자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우리 말은 어떠한 말인가를 깨달아야 하고, 우리가 받아들여서 '우리 말'로 녹여낼 한자말은 얼마만큼 있으면 좋은지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 말은 영어하고 다르니 우리 말을 할 때에는 우리 말투와 말법과 말씨를 헤아려야 하며, 섣불리 번역 말투라든지 일본사람 말투를 펼치거나 섞지 않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