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3억9천만 원'으로 사교육 바이바이?
교과부 '사교육 없는 학교'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 교과부 홍보책자 23쪽, '사교육 없는 학교' 교과부는 올해 48쪽짜리 컬러로 '모두를 배려하는 교육, 교육비 부담없는 학교' 홍보책자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 이부영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아래부터 '교과부')가 48쪽짜리 컬러판 홍보책자를 발간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중요 정책이 '교육비 부담 없는 학교'입니다. 그중 한 가지 사업이 '사교육 없는 학교'입니다.
교과부는 홍보자료에서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으로 '다양하고 질 높은 공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겠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에게 사교육비 부담은 한 가정의 경제를 뒤흔들고 있고 그에 따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말은 학부모라면 그 누구나 환영할 일입니다.
그래서 학부모들 중에서는 교과부가 적극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집 아이 사교육비는 언제쯤 부담하지 않게 될까 생각하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4.1% 뿐
교과부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457개 학교만 그렇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457개 학교면 우리나라 전체 학교의 몇 %를 차지할까요? 교과부 홈페이지에 떠 있는 교육통계자료를 보니 2008년도 전국초중등고등학교는 모두 1만1080개교입니다.(2009년도 자료는 없습니다). 2008년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457개 학교는 전체 학교의 약 4.1%를 차지합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마다 자랑하느라고 큰길가에 현수막을 여러 개 내걸었습니다. 전국에서 4.1% 안에 들었으니 자랑할 만도 하지요? 3년간 1억3천만 원씩 지원받는다는 것도 써 두었네요.
그러니까 현재 우리나라 전체 학교 중 4.1% 학교만 사교육 '없는' 학교이고, 95.9%에 해당되는 학교는 여전히 사교육 '있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겨우 4.1% 학교를 대상으로 하면서 교과부가 '교육비 부담 없는 학교', '사교육 없는 학교'를 크게 내세우는 건 좀 그렇지요? 7월 8일자 교과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2010년에는 6백 개교, 2012년에는 1천 개교로 확대할 계획'이라는데, 6백 개교라고 해도 5.4%이고 1천 개교라 해도 9.0%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럼 457개 학교는 어떻게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유난히 입시위주의 교육에다 부모들의 자녀교육열이 높아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교육, 그러니까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요?
▲ 교육부 홍보책자 24쪽 부분'사교육 없는 학교'를 선정해서 전국 457개교에 학교당 평균 1억3천만 원씩 총 6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 이부영
자세히 들여다보니, 교과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에는 3년간 예산을 지원하며, 1차년도에만 한 학교당 평균 1억3천만 원씩 모두 600억 원을 지원해 준다는군요. 1억3천만 원을 받은 학교는 이 돈으로 다른 학교보다 많은 '인턴교사를 채용'하고, '정규 교과프로그램을 특화'시키고, '질 높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또 그밖에 특별교실을 확충한다거나 수업교구와 기자재를 구입한다거나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외부 강사를 모셔오는 인건비도 지출합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그동안에는 학생들이 학교 밖에 있는 학원에서 배웠던 것을 학교 안에서 배우는 학교인 셈입니다. 실제 진행하는 모습을 봐도 외부 강사를 학교로 모시고 와서 방과 후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수강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과 후 프로그램 역시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가 비용을 부담하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강사료와 사업비는 보존해주되, 수업료는 수요자부담원칙을 가급적 지키겠다는 게 교과부의 입장입니다.
결국 '사교육 없는 학교'는 학교 밖에 있는 학원을 학교 안에 만드는 사업인 것이지요. 또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 참여 실적을 높이기 위해 학생간부들을 상대로 참가를 종용하기도 한다는데, 이런다고 학생들이 그간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방과 후 학교로 발길을 돌릴까요?
일부 규모가 작은 농산어촌지역에서는 무료로 운영하기도 합니다만, 밖에 있는 학원을 학교 안에 만드는 것이나, 부모가 내던 돈을 국가가 대신 내 주는 것으로 '사교육이 없는 학교'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합니다.
▲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것을 알리는 현수막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마다 큰 길가에 현수막을 여러 개 걸어 동네방네 알리고 있습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에 1억3천만 원이 지원된다는 것을 이 현수막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 이부영
예산 지원이 없어지는 3년 뒤를 생각해 보셨나요?
그러나 궁금하기만 합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 기간이 3년이라는데, 3년이 지나고 더이상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면 그 뒤에 이 학교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산을 지원받지 않아도 계속 '사교육 없는 학교'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매년 1억3천만 원 정도를 지원받다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 뽑아놓은 인턴 교사도 내보내야 하고, 외부강사도 내보내야 하니 애써 만들어놓은 방과 후 프로그램도 그만 둘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금 받아서 차려놓은 특별교실, 기자재들은 바로 쓸모가 없게 돼 먼지만 뽀얗게 쌓일 것이 뻔합니다. 저는 무슨 연구시범학교다 해서 지원금 받아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한 뒤, 연구시범학교 기간이 끝나고 지원금이 없어진 뒤의 학교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산 지원이 없으면 '사교육 없는 학교'도 바로 '사교육 있는 학교'로 돌아가고 맙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아이들도 당장 그만두어야하고, 예전처럼 학교 밖에 있는 학원에 다녀야 합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기 전에는 학원에 다니지 않던 아이들까지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이 끝나면 배우던 것을 그만둘 수 없어서 새롭게 학원을 다녀야하는 일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교과부가 내세우고 있는 '사교육 없는 학교'는, 우리나라 학부모가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해결할 생각도 없는 채, 전국 소수의 학교에 지원금을 줘가며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교과부 공식 지정 '공립 학원'만 만드는 셈입니다.
덧붙이는 글
현장에서 지켜본 교과부의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은, 근본적인 사교육을 없애기는 커녕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는 사업으로, 효과에 비해 홍보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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