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이 말하는 '종교'로서의 신자유주의
[노무현 함께 읽기] 두 번째 서평 <국가의 역할>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나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에서 나타나는 장하준의 일관된 주제는 바로 시장과 국가의 관계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허위성 공박이다.
<국가의 역할>에서 가장 먼저 꺼내든 화두는 '자유시장'(free market)이다. 장하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의 신봉자들은 말 그대로 '맹신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영미권을 넘어서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정부 역할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의 허구적 논리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정부가 드러내는 지엽적인 문제(관료제의 폐해나 부패)를 들어 "큰 정부" 자체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와 비판의 논리적 틀을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일 것이다.
우선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다르다. 장하준은 '시장'과 '국가'를 명백히 구분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시장과 국가는 엄격히 구분되며,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시장에게 자율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시장이 실패할 경우 뒷감당은 국가가 한다. 여기에 대해서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별 말이 없지만, 시장이 실패하지 않도록 국가가 '조절 정책'을 쓰는 데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론을 펼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시장이 맘껏 놀다가 망할 때까지 가만 놔두라"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탄생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하준의 논점이 좀더 분명해진다.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시장 우선성 가정'(the market primacy assumpition -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가정)을 주장하며 시장이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즉 시장형성에 필요한 모든 제도, 개입, 조직들은 시장의 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라고 가정한다.
물론 시장을 통해서 교환이 이루어지고 삶을 영위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형성은 국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우선론자들은 시장이 형성된 것을 '우연성'에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마법을 발휘해서 제도와 질서, 시스템을 모두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장하준은 시장이 형성되는 모든 과정에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시장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시장을 떠받치는 특정한 권리/의무 구조와 관련짓지 않으면 정의할 수 없는데, 이 같은 권리/의무들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지, 신고전학파(혹은 신자유주의) 논객들이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것처럼 어떤 '과학적' 혹은 '자연적'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 국가의 역할 142쪽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고민했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관계가 생각난다. 시장권력은 대결에서 승리한 자들만의 권력이기 때문에 전체 참여자들을 대변할 수 없다. 인간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권력관계가 생겨나기 때문에 시장이라는 제도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힘센 놈'들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노력해서 만든 상품을 공정하게 판매할 수 있는 매매행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정치적 개입'이 요구된다.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이 과정을 송두리째 빠뜨린 것이다. "시장도 정치를 통해 형성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장하준 역시 "경제의 탈정치화는 사실상 민주주의를 거세하겠다는 완곡 어법일 뿐"(143)이라며 이런 논리를 일축했다.
'지적재산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이유
시장과 국가,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특허와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것이 얼핏 보면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준이 주로 관찰하는 주제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관계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문제는 중요하다. 자유시장이 전세계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적재산권은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장에서 돈의 흐름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을 향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장하준이 지적재산권 문제를 면밀히 다룬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이 자국 기업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해외 무역 파트너에게 강제하는 수단으로 무역 제재를 활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관세 제도처럼 지적재산권 제도는 전 세계 무역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적재산권에 관해 전세계가 따라야 하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의 주장은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국가가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의 시녀나 해결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논의는 사기업의 사유재산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세계에서 저작권 규제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좀더 노골적인 것을 국가에게 요구한다. 에이즈약 등과 같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국민의 건강과 목숨이 달린 제품에 대해서까지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강요해달라고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살인을 방조하게끔 만들기도 하고, 미비한 지적재산권 제도를 악용해 강황이나 바스마티 쌀 같은 개발도상국 고유의 식품의 특허를 도둑질하는 일을 시키기도 한다. 강황은 인도의 제지로 특허가 무산됐지만, 바스마티 쌀은 특허 인정을 받고 말았다.
장하준은 특허와 지적재산권 제도가 시장주의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독점'을 허용하는 모순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간과 국제관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노예소유주이자 미국의 창업자인 제퍼슨이 아이디어의 소유만은 용납하지 않았던 주장을 인용하면서 미국이나 서구에서도 지적재산권을 확대하는 데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주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제무역에 있어서의 지적재산권이란 선진국 사기업들의 돈벌이수단일 뿐 개발도상국에서는 하등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밝힌다.
특허권 취득이 가능한 기술의 개발보다는 기존 기술의 흡수가 훨씬 더 중요한 개발도상국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지적재산권의 사유화를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확보 가능한 혁신의 여지는 미미한데, 이것은 이들 나라 경제의 주체들의 혁신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 위의 책, 204쪽
시장자유론자들이 보는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령 우리는 실제 1000명의 항공사 종업원을 해고하고, 그 덕분에 50만명의 고객들이 평균 100달러씩 절약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원거리 지역에 사는 10만명이 철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대신 모든 철도 승객들이 연평균 25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 위의 책, 204쪽
무엇보다 시장자유론자들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무식'에 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를 시장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법률 조항과 집행 비용이 필요했다. 시장을 효율적으로 굴러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형성 과정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를 위해서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재산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에 수반되는 수많은 개입과 제도들이 필요하다. 이런 기반 위에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매매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시장자유론자와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치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쑥쑥 자라났으니 이제는 국가의 몫까지 먹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전복시켜 시장 절대주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폐해를 보완하는 데서 멈추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허술한 논리가 수십년 넘게 생명을 유지하고 세계 곳곳에 전파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봉자들의 정치력과 선동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국민들의 선입견을 파고들어 공감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논의할 만한 유익한 주제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 주장의 목표는 애초부터 국민선동과 정권탈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하준의 주장은 그다지 새롭거나 특출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일 뿐이다. <국가의 역할>은 전문적인 용어와 논문의 어법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읽기 부담스럽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후기 저작에서는 이 '상식'적인 측면이 강화된 면모를 볼 수 있다. 대중적인 문체를 쓰지 않을 때의 장하준을 보는 맛이 나쁘지는 않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나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에서 나타나는 장하준의 일관된 주제는 바로 시장과 국가의 관계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허위성 공박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정부가 드러내는 지엽적인 문제(관료제의 폐해나 부패)를 들어 "큰 정부" 자체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와 비판의 논리적 틀을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일 것이다.
우선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다르다. 장하준은 '시장'과 '국가'를 명백히 구분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시장과 국가는 엄격히 구분되며,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시장에게 자율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시장이 실패할 경우 뒷감당은 국가가 한다. 여기에 대해서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별 말이 없지만, 시장이 실패하지 않도록 국가가 '조절 정책'을 쓰는 데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론을 펼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시장이 맘껏 놀다가 망할 때까지 가만 놔두라"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탄생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하준의 논점이 좀더 분명해진다.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시장 우선성 가정'(the market primacy assumpition -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가정)을 주장하며 시장이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즉 시장형성에 필요한 모든 제도, 개입, 조직들은 시장의 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라고 가정한다.
물론 시장을 통해서 교환이 이루어지고 삶을 영위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형성은 국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우선론자들은 시장이 형성된 것을 '우연성'에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마법을 발휘해서 제도와 질서, 시스템을 모두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장하준은 시장이 형성되는 모든 과정에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시장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시장을 떠받치는 특정한 권리/의무 구조와 관련짓지 않으면 정의할 수 없는데, 이 같은 권리/의무들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지, 신고전학파(혹은 신자유주의) 논객들이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것처럼 어떤 '과학적' 혹은 '자연적'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 국가의 역할 142쪽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고민했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관계가 생각난다. 시장권력은 대결에서 승리한 자들만의 권력이기 때문에 전체 참여자들을 대변할 수 없다. 인간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권력관계가 생겨나기 때문에 시장이라는 제도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힘센 놈'들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노력해서 만든 상품을 공정하게 판매할 수 있는 매매행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정치적 개입'이 요구된다.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이 과정을 송두리째 빠뜨린 것이다. "시장도 정치를 통해 형성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장하준 역시 "경제의 탈정치화는 사실상 민주주의를 거세하겠다는 완곡 어법일 뿐"(143)이라며 이런 논리를 일축했다.
'지적재산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이유
시장과 국가,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특허와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것이 얼핏 보면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준이 주로 관찰하는 주제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관계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문제는 중요하다. 자유시장이 전세계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적재산권은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장에서 돈의 흐름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을 향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장하준이 지적재산권 문제를 면밀히 다룬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이 자국 기업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해외 무역 파트너에게 강제하는 수단으로 무역 제재를 활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관세 제도처럼 지적재산권 제도는 전 세계 무역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적재산권에 관해 전세계가 따라야 하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의 주장은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국가가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의 시녀나 해결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논의는 사기업의 사유재산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세계에서 저작권 규제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좀더 노골적인 것을 국가에게 요구한다. 에이즈약 등과 같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국민의 건강과 목숨이 달린 제품에 대해서까지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강요해달라고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살인을 방조하게끔 만들기도 하고, 미비한 지적재산권 제도를 악용해 강황이나 바스마티 쌀 같은 개발도상국 고유의 식품의 특허를 도둑질하는 일을 시키기도 한다. 강황은 인도의 제지로 특허가 무산됐지만, 바스마티 쌀은 특허 인정을 받고 말았다.
장하준은 특허와 지적재산권 제도가 시장주의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독점'을 허용하는 모순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간과 국제관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노예소유주이자 미국의 창업자인 제퍼슨이 아이디어의 소유만은 용납하지 않았던 주장을 인용하면서 미국이나 서구에서도 지적재산권을 확대하는 데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주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제무역에 있어서의 지적재산권이란 선진국 사기업들의 돈벌이수단일 뿐 개발도상국에서는 하등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밝힌다.
특허권 취득이 가능한 기술의 개발보다는 기존 기술의 흡수가 훨씬 더 중요한 개발도상국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지적재산권의 사유화를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확보 가능한 혁신의 여지는 미미한데, 이것은 이들 나라 경제의 주체들의 혁신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 위의 책, 204쪽
시장자유론자들이 보는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령 우리는 실제 1000명의 항공사 종업원을 해고하고, 그 덕분에 50만명의 고객들이 평균 100달러씩 절약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원거리 지역에 사는 10만명이 철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대신 모든 철도 승객들이 연평균 25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 위의 책, 204쪽
무엇보다 시장자유론자들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무식'에 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를 시장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법률 조항과 집행 비용이 필요했다. 시장을 효율적으로 굴러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형성 과정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를 위해서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재산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에 수반되는 수많은 개입과 제도들이 필요하다. 이런 기반 위에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매매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시장자유론자와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치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쑥쑥 자라났으니 이제는 국가의 몫까지 먹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전복시켜 시장 절대주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폐해를 보완하는 데서 멈추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허술한 논리가 수십년 넘게 생명을 유지하고 세계 곳곳에 전파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봉자들의 정치력과 선동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국민들의 선입견을 파고들어 공감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논의할 만한 유익한 주제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 주장의 목표는 애초부터 국민선동과 정권탈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하준의 주장은 그다지 새롭거나 특출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일 뿐이다. <국가의 역할>은 전문적인 용어와 논문의 어법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읽기 부담스럽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후기 저작에서는 이 '상식'적인 측면이 강화된 면모를 볼 수 있다. 대중적인 문체를 쓰지 않을 때의 장하준을 보는 맛이 나쁘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리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독자 피드백을 포함한 포스트는 매주 화요일에 올립니다. 목요일 강독회를 참여하고 나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