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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44)

[우리 말에 마음쓰기 752] '혼자일 수밖에 없는 存在', '살쾡이의 존재' 다듬기

등록|2009.09.14 14:06 수정|2009.09.14 14:06

ㄱ.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存在

.. 그런데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希望事項일 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存在가 아닐까 ..  《법정-영혼의 모음》(동서문화사,1973) 23쪽

 '希望事項'은 '꿈'으로 다듬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본질적(本質的)으로'는 '어쩔 수 없이'나 '언젠가는'이나 '처음부터'로 손질해 줍니다.

 ┌ 그러한 存在가 아닐까
 │
 │→ 그러한 목숨이 아닐까
 │→ 그러한 몸이 아닐까
 │→ 그러한 삶이 아닐까
 └ …

 깊이 생각하건 가벼이 생각하건, 우리 생각을 홀가분하게 담아낼 수 있으면 더없이 좋으리라 봅니다. 널리 바라보건 좁게 바라보건, 우리 눈길을 조촐하게 펼쳐낼 수 있으면 그지없이 좋으리라 느낍니다. 어떻게 꾸리는 내 삶인지를 살피고, 어떠한 길로 걸으며 남기는 내 발자국인지를 돌아보면 넉넉하리라 봅니다.

 ┌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사람은 그예 혼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사람은 처음부터 혼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 …

 말이란 내가 살아가는 대로 하게 됩니다. 글이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쓰게 됩니다. 어딘가 어수룩할 수 있고, 무언가 얕을 수 있습니다만, 내 참마음을 밝히거나 나타낸다면 부끄럽거나 남우세스러울 까닭이 없습니다. 솜씨는 떨어진다 하여도 거짓없는 내 모습이거든요.

 못나면 못난 대로 반갑고, 잘나면 잘난 대로 반가운 삶입니다. 이에 따라 못나면 못난 대로 적바림하고, 잘나면 잘난 대로 끄적입니다. 자랑이나 겉멋이 아닌 속알맹이를 나눕니다. 내세움이나 겉치레가 아닌 고갱이를 함께합니다.

 ┌ 사람은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이 아닐까
 ├ 사람은 누구라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목숨이 아닐까
 └ …

 아낌없이 사랑하며 아낌없이 말합니다. 숨김없이 믿으면서 숨김없이 글씁니다. 내 둘레 누구나 넉넉히 껴안으면서 넉넉하게 말합니다. 나와 멀리 떨어진 누구한테라도 따스히 손길을 내밀면서 따스하게 글씁니다.

 그리고, 내 속셈을 감추며 겉치레로 말합니다. 내 꿍꿍이를 꿍쳐 놓고 겉발림으로 글씁니다. 내 얼굴을 드높이고자 우쭐대며 말합니다. 내 이름값을 키우고자 잘난 척하며 글씁니다.

 누구나 제 삶에 따라서 말을 합니다. 제 삶을 꾸리는 매무새에 따라서 글을 씁니다. 사랑이 좋으면 사랑으로 말을 하지만, 사랑보다는 전쟁이 좋으면 전쟁으로 말을 합니다. 살가운 이웃을 낮은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매무새라면 낮은자리 사람과 어깨동무하듯이 말을 하지만, 무슨 교수님이나 어떤 지식인한테 눈높이를 맞춘다면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뿐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아이들 마음높이에 따라 말을 하고, 이제껏 많이 배운 사람하고만 어울려 왔으니 많이 배운 티를 내며 말을 할 뿐입니다. 우리들 말이란, 우리들 사람이 하는 말이란, 우리들 사람이라는 목숨붙이가 하는 말이란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ㄴ. 살쾡이의 존재를

.. 행운이었다. 그때 어미사슴은 살쾡이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이마이즈미 요시하루(글),다니구치 지로(그림)/김완 옮김-시튼 (2)》(애니북스,2007) 83쪽

 '행운(幸運)이었다'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하늘이 도왔다'나 '좋은 먹이를 찾았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전(全)혀'는 '조금도'로 다듬어 줍니다.

 ┌ 살쾡이의 존재를
 │
 │→ 살쾡이가 있는 줄을
 │→ 살쾡이가 뒤에 있는 줄을
 │→ 살쾡이가 노리는 줄을
 │→ 살쾡이가 숨어 있는 줄을
 │→ 살쾡이가 지켜보는 줄을
 │→ 살쾡이가 지켜보고 있는 줄을
 └ …

 살쾡이가 어미사슴 뒤에 '존재'하고 있으니, 글쓴이가 보거나 느낀 그대로 "살쾡이의 존재를"이라고 적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살쾡이가 어미사슴 뒤에 '숨어 있다'고 보았거나 느꼈으면, "살쾡이가 숨은 줄을"처럼 적었을 테지요. 배고픈 살쾡이가 새끼사슴을 노리고 있다고 느끼거나 보았으면, "살쾡이가 노리는 줄을"이라 적었을 테고, 살쾡이가 가만히 사슴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거나 보았으면, "살쾡이가 지켜보는 줄을"이라 적었겠지요.

 저마다 스스로 보는 대로 말합니다. 자기가 몸소 느끼는 대로 글을 씁니다. 바라보는 눈에 따라 말이 바뀌고, 느끼는 가슴에 따라 글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바라보니까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생각하니까 저렇게 글을 씁니다. 바라보는 눈길이 처음부터 '존재'였으니, 말마디는 '존재' 테두리에 머뭅니다.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마음결이 '있다'나 '숨다'나 '지켜보다'였다면, 마땅히 '있나'나 '숨다'나 '지켜보다'로 생각줄기를 이어나가려 했겠지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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