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형규 특보 다녀간 뒤 소장 날아와" "정부 비판인사 재갈물리기 위한 소송"
시민단체, 국정원의 박원순 이사 2억 손배소 맹비난
▲ 강연중인 박원순 변호사 ⓒ 김민수
국가정보원이 박원순(53)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2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자, 시민단체와 학계, 정치권은 '정부 비판 언사에 재갈 물리기'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인격권 없는 국가가 시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은 전례 없다"
국정원은 14일 고소장을 통해 "박 상임이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허위 사실을 밝혀, 마치 국가정보원이 민간사찰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국가정보원 및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인격권이 없는 국가가 시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하는 정책적 비판을 모조리 봉쇄하겠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는 중도실용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 같은 소송을 통해 시민사회의 건강한 비판기능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도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부 비판 재갈 물리기"라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정부 측에 비판적인 말은 듣지도 않을 것이요, 말하지도 못하게 하겠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시민단체 인사는 물론 일반국민들도 정부 비판을 하면 누구나 소송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도록 하는 조치"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자칫 소송을 당하게 될까봐 정부 비판적인 말을 할 때는 스스로 조심하게 하는 자기검열에 빠지도록 하려는 것"이라면서 "민주사회에서는 정부 비판을 포함한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개진돼야 하는데, 그 반대의 역진현상이 나타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한 임 교수는 "언론기관이 국가기관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것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의 비판기능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를 쉽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미국에도 정부기관이나 공무원에 대한 비판보도는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례에 따르면 국정원이 박원순 이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이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승소를 위한 소송이라기보다는 정부비판적인 언사에 대한 재갈물리기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며 "승소여부와 관계없이 소장을 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맹형규 청와대 정무특보는 왜 찾아왔을까
창조한국당은 15일 논평을 통해 "비판자에게 재갈을 물리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 수위가 점점 더 졸렬해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의 민간사찰은 박원순 이사의 발언말고도 한반도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 사찰 등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시민사회단체 감시는 물론 정부 지원금 중단 움직임마저 있지 않았냐"며 "국가안보를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시민사회단체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창조한국당은 또 "정부가 막강한 정치권력으로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정부비판자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며 독재정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정원을 동원한 민간사찰과 강압통치를 중단하고 즉각 소송을 취하하라"고 밝혔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정부가 취하하지 않는 한 우리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상대가 유치하게 나온다고 해서 똑같이 대응할 수 없으니 점잖게 꾸짖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부소장은 "지난 7월 5일 맹형규 청와대 정무특보가 직접 찾아와 경위를 묻고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했는데 소장이 날아든 셈"이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찰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이런 식으로 나오니 손가락으로 해를 가리는 식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개탄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은 박 변호사의 뒤를 엄청 캐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업 임원들을 만나서 왜 사외이사 시켰고, 보수는 얼마나 줬냐 등을 묻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제의 정치 지휘하는 사령부는 누구인가"
이에 앞서, 박원순 변호사는 시사주간지 <위클리경향> 6월 23일자(830호) 인터뷰를 통해 "이 정부, 아마도 청와대나 국정원 안에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본다"며 "이렇게 민간사찰이 복원되고 정치와 민간에 개입이 노골화되면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질타했었다.
또한 "시민단체와 관계 맺는 기업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하고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라며 "이것은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희망제작소가 행정안전부와 함께 지역홍보센터를 만드는 사업을 3년에 걸쳐 하기로 계약했지만 1년 만에 해약통보를 받았고, 하나은행과는 소기업 후원 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어느 날 무산됐는데 알고 보니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이후 곳곳에서 "야만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북핵 민간외교' 차원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미국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려진 박원순 이사는 16일 오후 5시경 귀국해 대책회의를 가진 뒤, 이르면 17일께 기자회견을 통해 대응방향을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박 이사는 국정원 등 정부의 소송대응에 맞서 '민간사찰 사례'들을 축적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