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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4대강만 대선공약인가?

[기획- 세종시 해법②] 원안 추진이 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

등록|2009.09.17 13:34 수정|2009.09.17 14:02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의 탈당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세종시 수정' 발언으로 충청이 연일 술렁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세종시 논란과 관련, 관계자들로부터 세종시 해법을 들어보았다. <편집자말>
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도대체 세종시 논란은 왜 생기는가? '세종특별자치시'는 원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행정수도 옮기기 구상에서 출발하여 '관습헌법'에 따른 위헌 판결을 거쳐 행정도시로 결론이 난 구상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11월 28일, 충남 연기군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행정도시 건설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명박 표 세종시', '명품 첨단도시'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나아가 "세종시의 자족능력 강화를 위해 세계적 국제과학기업도시 기능을 더해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해, 충청권 지역 민심을 사로잡기도 했다.

결혼 전과 후가 너무 다른 거 아닌가

▲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2007년) 세종시를 방문해 세종시 원안추진과 함께 자족도시를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능 추가를 약속하고 있다. ⓒ 장재완


그렇게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2년이 가까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9월 9일 신임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자마자 "새만금과 포항을 잇는 동서 고속도로 구상"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한창 논란 중인 세종시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결혼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른 부부관계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한편, 다양한 사회문화적·복지적 예산은 줄이면서 22조 2000억원에 이르는 혈세로 '4대강 사업'은 강행하면서도 대선 공약 사항이기도 한 세종시 구상을 찬밥 신세로 만드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누굴 믿어야 하는가?

이 시점에서 세종시 구상이 원안대로 추진되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를 정리해보자. 첫째, 이것은 국가 차원의 '공적인 약속'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국책 사업이었고 현직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사적 약속도 어기면 법에 따라 판단한다. 공적 약속은 국민 전체와 한 약속이다. 이를 어기면 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만 더 무서운 표심으로 결판이 난다.

둘째,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가 '경제를 살리자!'였다. 도대체 경제란 무엇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다.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들이 잘 먹고살도록 구제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세종시 구상은 백성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금석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굳이 서울로 몰리지 않더라도 주거, 교육, 직장, 문화, 생태를 고루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 지방 분권화를 실질적으로 촉진하는 살림살이 경제, 이것이 지난 대선에서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과업이 아닌가.

▲ 분권균형발전전국회의와 4대강사업저지범대위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행정도시 수정 추진 및 4대강 죽이기 사업 지지 발언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정 내정자의 세종시 관련 주장 철회와 4대강 사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셋째, 세종시의 본래 구상은 '국토균형발전'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도대체 균형 발전이란 무엇인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은 지나치게 비대하고 그 외 지역은 고사 직전이다. 한마디로, 사회경제적 '양극화'다. 양극화 속에서는 경제적 합리성도, 사회적 합리성도 추구하기 어렵다.

국가나 기업이 선호하는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보더라도 양극화 사회는 경쟁력이 없다. 수도권의 과잉 비대, 지역의 아사 상태, 이것은 마치 한 가족 안에서 일부는 너무 많이 먹어 비만으로 죽는 반면, 나머지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굶어 죽는 거나 다름없다.

한 사회가 이렇게 양극화되지 않고 균형 있게 가야 정말 비전과 내실이 있는 나라가 된다. 물론 세종시 하나만으로 나라 전체의 균형이 달성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종시 구상을 온전히 실현하면 굉장한 상징적 효과가 있다.

넷째, 현실적으로 이미 공사는 시작되었고 수많은 원주민들은 눈물과 한숨 속에 삶의 터전을 떠났다. 만약 원안 추진이 안 되면 수백, 수천의 원주민들에게 원래의 땅, 원래의 집, 원래의 농경지를 그대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최근엔 ISO26000이라 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는 기업은 범지구 차원에서 제재를 당한다는 논의가 성숙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적용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부의 사회적 책임(GSR)'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단순한 표심 때문이 아니라 참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성실히 일을 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다섯째, 앞으로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한 '백년대계'의 관점에서도, 우리는 당장 많은 돈이나 권력을 물려주기보다는 살맛 나는 사회를 물려주어야 한다. 살맛 나는 사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서울 중심주의 속에서 무한한 생존 경쟁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지 마을 공동체가 자긍심을 갖고 살아 숨 쉬는 사회다.

인생의 성공을 수도권 진입과 지위 상승으로만 평가하는 사회가 아니라 전국 어디로 가든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아 자아실현과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금처럼 과잉 비대한 서울과 수도권은 마치 공룡의 최후를 보는 듯 불길한 예감을 부른다. 자신이 감당 못할 정도로 몸집이 커진 공룡, 머리에서 수집된 정보가 팔다리 등으로 제때에 전달되지 못해 환경 변화에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공룡, 너무 많이 먹어치워 나중엔 거대한 체구를 지탱할 먹이가 없는 공룡의 최후, 이런 것이 불현듯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런 점에서 도시는 중소규모 위주로 발전하고, 농촌은 문화 교육 혜택을 고루 누리게 만든 독일 사회를 참고해 전국을 살맛 나게 만들어야 한다.

분양률 2% 흉물스런 아파트...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 세종시 내에서 이전 대상 행정기관 중 건축 공사가 진행중인 곳인 국무총리실 (가운데 크레인이 서 있는 곳) 뿐이다. ⓒ 윤형권



다만, 나는 여기서 세종시 구상이 원안대로 되려면, 그 주변 지역이나 외곽 지역에서 난개발이나 투기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본다. 난개발과 투기가 성행하면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전 국토가 마구잡이로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내가 사는 조치원 신안리에도 약 1천 세대 고층아파트를 짓다가 분양률이 2%도 안 되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우리 주민들은 난개발과 투기를 막기 위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끈질기게 싸웠다. 제대로 된 발전을 위해 '고층아파트가 아니라 전원단지 내지 대학문화타운'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오로지 돈만 좇는 건설자본과 행정당국은 우리 주민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도 고집을 부리더니 마침내 아파트 사업도 망하고 우리 마을도 망가졌다.

우리 주민들이 하자는 대로 했더라면 둘 다 '윈-윈'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주민들은 이 흉물덩어리를 매일 보며 살아야 한다. 인허가 내준 당국(연기군과 충남도)은 주민들 앞에 사죄도 않고 대안도 제시 않은 채, 모른 척한다. 제발 책임 있는 당국자가 우리 마을 현장에 와서 주민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기 바란다. 그리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이요, 안타까운 사회적 낭비인가?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오판이 세종시 사업에도 나타나지 말란 보장이 없다. 만약 세종시 구상이 잘못되어 우리 마을처럼 흉물스런 시멘트 덩어리만 몇 개 짓다가 중단한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희망적 국책 사업으로 시작한 세종시, 난개발과 투기를 확실히 막으며 정직하게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온 나라를 역동적으로 살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에 대한 중독적 집착만 버린다면, 그리고 비수도권 풀뿌리 민중이 일사불란하게 단결한다면, 세종시 원안 추진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종시는 비단 충청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종시로 상징되는 지방 분권화의 발전, 온 나라의 고른 발전,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활기찬 지역들, 그러한 지역들의 유기적 네트워크, 바로 이것이야말로 역동적인 나라를 새롭게 창조하는 길이 아닌가?

대통령으로서 정말 진퇴양난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진실로 이런 사명을 실행하려 한다면, 현실적 방법은 딱 하나 있다. 먼저 대통령이 청와대부터 옮기겠다고 나서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이다. 기막힌 해법 아닌가?
덧붙이는 글 필자는 고려대 교수이며 조치원 신안리 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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