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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려난 '노무현 추모석', 끝내 간 곳은...

정처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절로 간 노무현 추모석

등록|2009.09.16 11:19 수정|2009.09.16 17:55
충북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추모의 열기가 뜨거웠다. 시민분향소에서 모금이 있었고, 그 성금으로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조그만 추모석을 만들었다.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조각하고 글씨를 새겼다.

노무현 추모석수동성당에 임시 설치되었다 ⓒ 정용만




추모석의 글씨 내용은 간단명료하다.

"당신의 못 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루어 가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란 시민들은 이 추모석 하나도 제대로 원하는 자리에 세울 힘들이 없었다.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이 민심조차 다양하게 왜곡됐다. 보수단체들이 추모석을 반대하면서 추모석 설치조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그 일을 두고 '분쟁'이 일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상당공원 추모 표지석 설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행동이며, 범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처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 중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알려줄 것이다'고 했는데, 표지석을 설치하려는 것은 유서에 반하는 행동으로서 가신님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표지석분쟁노무현 표지석의 설치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시민들과 싸우는 보수단체 ⓒ 충북민언련 제공




그래서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던 상당공원에 이 추모석을 설치하려던 날에는 해병전우회를 포함한 보수단체들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아예 공원 입구부터 차량 진입을 막아버렸다. 청주시도 허가를 하지 않았다.

추모석이 임시로 간 곳은 공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수동성당이었다. 주임신부님의 재량으로 양해를 받아 성당 한 구석에 쓸쓸히 임시설치를 했지만 참 시민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보는 마음이 황량했다.

하지만 가톨릭신자라서 성당에 안치된 그의 추모석이 성당을 오갈 때마다 절로 발길을 끌고 가슴에 무언의 밝은 다짐과 희망을 한 주먹씩 절로 안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추모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관계자들도 모른다고 했다. 가톨릭교구의 높은 분들에게서 수동성당이 추모석의 안치를 허락한 것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받는 중이기도 했기 때문에 성당측이 치웠는지 누가 치웠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추모석을 직접 만드는 데 관여한 시민단체 중의 한 분이 더 이상 수동성당에 놓을 수도 없고 해서, 상당공원에 설치하려다 격렬한 분쟁으로 흠이 간 부분을 교외의 안가에 잠깐 가져다 약간 보수를 했다고 했다.

이렇게 성당으로 교외로 떠돌던 추모석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향방을 몰랐다. 봉하마을로 보내자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청주 안에서 그 분을 추모하는 마음들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과 후손들이 가까이서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중론이 우세했다.

결국 우암산 기슭에 있는 사찰의 도량으로, 정처없이 떠돌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석이 관음사에 설치되었다. 오가는 불자들과 신자들은 추모석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지만 같이 간 어린 꼬맹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선생님! 이곳은 절인데 왜 이게 있어요?"

하긴 절에 있는 조각상이라고는 전부 탑비나 불상이나 동자승이 대부분이니 무척 어울리지 않기는 한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 무어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

시민들이 진보와 보수로 갈려져서 서로 싸워서  원래 놓으려고 한 장소에 못 놓고, 할 수 없이 이리 떠밀려졌다고 어른들의 치부와 갈등을 말해줄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무심히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반 농담조로 말해버렸다.

"글쎄 내 생각이긴 하지만... 전에 성당에 잠시 있었는데 이번에는 절에 잠시 있는 것 같아... 여기 저기 사람들 많이 보고 추모하라고 여행하는 석상인가봐."

무심히 한 대답이었지만 은연중 마음 안의 바람이 담겨진 것 같다. 한두 번 더 떠돌더라도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머무르는 초록의 공원에 정착하여 종교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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