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자꾸 열이 나고 배가 아파 이게 혹시 신종 플루 비슷한 것인가 싶어 병원을 가 보기로 했다. 전기 스위치 하나도 식별을 못하게 되어버린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게 할 수 없어 같이 갔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기다리시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안면 있는 식당에 들러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주인에게 두 번 세 번 거듭 부탁을 하고 일어서는데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벌떡 일어선다.
"나도 가. 나도 가야 해."
"잠깐이면 돼요. 금방 다녀올게요."
"안 돼. 같이 가. 같이 가."
겁이 잔뜩 들어간 눈으로 아들을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어머니, 난감하다. 같이 가서 안 될 이유야 딱히 없다지만 예상되는 이산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농협에서 잠깐 창구직원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머니가 사라져 버려 지구대 경찰관이 동원되는 등 한참이나 소란을 피우기도 했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집안 마당에서도 방문을 못 찾고 헤매다가 거리로 나서 버리기도 한다.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와의 동거 팔 개월째, 동거 이후로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아니 취미처럼 중얼거리게 된 말이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계산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삼천 번도 더 해온 질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두렵다. 답을 얻지 못해서 두렵다기보다는 이 맹랑한 질문은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하지를 말았어야 옳은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공포와는 전혀 무관하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러한 두려움의 끝자락에서 항상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한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비교적 건강하다는 증거를 나는 어쩌면 이런 식으로 수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나는 아직 내 자신에 대해서조차 무지하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너도 사람이냐?"
오래 전에 집안 어른들께서는 나를 보면 이렇게 호통을 치곤 하셨다.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바라는 일을 하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마 글쎄 나는 무엇이지, 하는 종류의 생각 없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쨌든 같은 시기에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 하고 싶은 일 해야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거의 유일하게 내 편이셨던, 아무도 모르게 내 손을 들어주시곤 했던 어머니,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너무도 많다. 열심히 공부를 하라거나, 출세를 해야 한다거나, 장남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상식적이며 실용적인 내용들이었다.
개구리를 잡되 산 채로 철사에 꿰지 말고 아주 죽여서 꿰라. 참외서리를 하되 밭에서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니지 말고 한두 개만 따서 들고 얼른 나와라. 일일이 들기로 하자면 책을 한 권 따로 써야겠지만 이 두 가지 실례만으로도 나는 지금 충분히 감격스럽고 고개가 숙여진다.
집에서 부업으로 돼지 한두 마리를 치는데 요즘처럼 따로 사료가 있어서 먹이는 것이 아니라 구정물에 보릿겨나 겨우 타주는 시절이었던 까닭에 개구리는 아주 훌륭한 단백질 덩어리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구리 잡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던 아이들은 개구리를 산 채로 철사에 꿰어 들고 다니며 그 버둥거리는 장면에 잔인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이중으로 죄를 짓는 짓이라고, 사람이 죄를 지어도 그런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틈만 나면 어떤 때는 눈물까지 보여가며 타이르곤 하셨다. 참외밭에서 뛰어다니지 말라는 것은 서리 자체를 막을 방법이 당신에게 없고 보면 남의 밭을 망치지나 말게 하자는 당신 나름의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유소년기야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청장년기에 접어들어서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배우고 있었다.
"너 늙고 병 들고, 그리고 죽으면, 그 여자는 어떻게 해?"
무슨 느닷없는 여복이 터졌던 것인지 모르겠다. 마흔도 훨씬 넘은 나이에 이십대 초반의 갓 대학을 졸업한 여인, 이라기보다는 소녀와 연애를 할 뻔했었다. 얼굴과 나이를 감춰주는 인터넷이 내게 준 속없는 선물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쪽지를 주고받다가 메일을 교환하고, 그러다가 우리 만날래? 만날까? 해서 만났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내가 친구를 먹어야 마땅한 그런 나이 차이였다.
처음에는 도무지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한결 같지가 않고 차츰 담을 넘는 구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 팔짱을 끼겠다고 덤비는 그녀를 뿌리치고는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상상의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그 무렵의 어머니는 내 얼굴만 보면 한숨을 내쉬고 있기도 했다. 아들이 자식도 없는 채로 이혼하고 혼자 있으니 당신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이었다.
그래, 하자, 해버리자,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어느 날 마약에 취한 듯이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기어이 어머니에게 사태의 전말을 털어놓고 조언을 청하기로 했다. 만약에 그녀와 내가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뜻조차 모호한 질문을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어머니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각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너 늙고 병 들면, 그 젊은 여자는…."
어머니의 이 한 마디, 빠르지도 않고 목소리가 높지도 않았다. 노기를 띤 음성도 아니고, 너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사내로구나 하는 경멸이 깃든 안색도 아니었다. 살얼음이라도 더듬듯이 조심스럽게 나온 이 한 마디가 나는 어쩐 일인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뒤이어 쐐기를 박듯이 나온 어머니의 한 마디.
"임시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듯 입을 꾹 다무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임시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임시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머니가 다소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어머니가 마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이웃집 여인이라도 되는 듯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다시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의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그렇게도 섬세하게 당신 자신의 입장만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도 같은 무게로 생각하시던 어머니는 그야말로 한 시간을 삼 년처럼 후딱후딱 넘겨 버리는 것인지 다른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고 오직 당신만의 목숨에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다. 방안에 새우처럼 둥글게 허리를 구부리고 누운 채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일어나기가 귀찮아서도 아니다.
치매는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는 들은 풍월이 있어 적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바깥바람을 쐬게 하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도 넘게 실랑이를 벌여야만 한다. 다리가 아파서 싫다느니, 허리가 아프다느니 온갖 구실로 뿌리치는 어머니를 겨우 어떻게 유인해서 차에 태우고 한눈에도 시야가 확 트이는 저수지로 가는데 여기서 또 실랑이가 벌어진다.
"안 해. 안 내려. 멋할라고 내리라고 혀?"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중얼거리기만 하는 어머니. 두 팔로 번쩍 들어 안아서 내려야겠다 생각하고 팔을 내밀면 마치 구렁이라도 본 듯이 진저리를 치며 온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는 운전대를 꽉 틀어잡고 엉덩이에 있는 힘을 다주어 완강하게 버틴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시상에, 그놈이 나를 물에 빠쳐 죽일라고."
딴에는 답답한 집안보다 훤하게 트인 물가에서 산책을 한다면 그 효과도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은 매번 이렇게 좌절되어 버린다. 산에 약초를 캐러 갈 때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다. 들꽃도 좀 꺾어보고, 산딸기 같은 것도 좀 따보고,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만 어머니는 차 안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조차 들지를 않는다. 손을 내밀면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고 말로만 들었던 저 유명한 고려장을 떠올리고 만다.
물가에 가면 물에 빠뜨려 죽일 것 같고, 산에 가면 고려장 같은 것이라도 해버릴 것 같은, 식당에 가면 또 그것대로 살그머니 유기해 버릴 같은, 그래서 아예 방안에만 웅크리고 있기로 작심을 해버린 것 같은 어머니, 이런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들이 그간 얼마나 보이지 않게 당신을 실망시켰으면 저렇게도 남몰래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가. 이것을 다만 치매라는 이름으로 넘겨버리고 말 것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언행은 대개 과거의 어떤 일들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릴 정도의 중증 치매 노인의 행동이라 해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만다면 삶은 너무나 쓸쓸하고 알맹이도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문득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 전율을 하는 요즈음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제 드디어 철이 들어가나 보다. 이 또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어쩌면 마지막 선물일 것이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으로 가득 무겁게 울렁울렁거리며 차오르는 이것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불러본다.
"나도 가. 나도 가야 해."
"잠깐이면 돼요. 금방 다녀올게요."
"안 돼. 같이 가. 같이 가."
겁이 잔뜩 들어간 눈으로 아들을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어머니, 난감하다. 같이 가서 안 될 이유야 딱히 없다지만 예상되는 이산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농협에서 잠깐 창구직원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머니가 사라져 버려 지구대 경찰관이 동원되는 등 한참이나 소란을 피우기도 했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집안 마당에서도 방문을 못 찾고 헤매다가 거리로 나서 버리기도 한다.
▲ 마당에서운동을 하자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여기서도 가끔 길을 잃어버린다. ⓒ 김수복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와의 동거 팔 개월째, 동거 이후로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아니 취미처럼 중얼거리게 된 말이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계산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삼천 번도 더 해온 질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두렵다. 답을 얻지 못해서 두렵다기보다는 이 맹랑한 질문은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하지를 말았어야 옳은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공포와는 전혀 무관하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러한 두려움의 끝자락에서 항상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한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비교적 건강하다는 증거를 나는 어쩌면 이런 식으로 수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나는 아직 내 자신에 대해서조차 무지하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너도 사람이냐?"
오래 전에 집안 어른들께서는 나를 보면 이렇게 호통을 치곤 하셨다.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바라는 일을 하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마 글쎄 나는 무엇이지, 하는 종류의 생각 없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쨌든 같은 시기에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 하고 싶은 일 해야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거의 유일하게 내 편이셨던, 아무도 모르게 내 손을 들어주시곤 했던 어머니,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너무도 많다. 열심히 공부를 하라거나, 출세를 해야 한다거나, 장남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상식적이며 실용적인 내용들이었다.
개구리를 잡되 산 채로 철사에 꿰지 말고 아주 죽여서 꿰라. 참외서리를 하되 밭에서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니지 말고 한두 개만 따서 들고 얼른 나와라. 일일이 들기로 하자면 책을 한 권 따로 써야겠지만 이 두 가지 실례만으로도 나는 지금 충분히 감격스럽고 고개가 숙여진다.
집에서 부업으로 돼지 한두 마리를 치는데 요즘처럼 따로 사료가 있어서 먹이는 것이 아니라 구정물에 보릿겨나 겨우 타주는 시절이었던 까닭에 개구리는 아주 훌륭한 단백질 덩어리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구리 잡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던 아이들은 개구리를 산 채로 철사에 꿰어 들고 다니며 그 버둥거리는 장면에 잔인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이중으로 죄를 짓는 짓이라고, 사람이 죄를 지어도 그런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틈만 나면 어떤 때는 눈물까지 보여가며 타이르곤 하셨다. 참외밭에서 뛰어다니지 말라는 것은 서리 자체를 막을 방법이 당신에게 없고 보면 남의 밭을 망치지나 말게 하자는 당신 나름의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유소년기야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청장년기에 접어들어서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배우고 있었다.
"너 늙고 병 들고, 그리고 죽으면, 그 여자는 어떻게 해?"
무슨 느닷없는 여복이 터졌던 것인지 모르겠다. 마흔도 훨씬 넘은 나이에 이십대 초반의 갓 대학을 졸업한 여인, 이라기보다는 소녀와 연애를 할 뻔했었다. 얼굴과 나이를 감춰주는 인터넷이 내게 준 속없는 선물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쪽지를 주고받다가 메일을 교환하고, 그러다가 우리 만날래? 만날까? 해서 만났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내가 친구를 먹어야 마땅한 그런 나이 차이였다.
처음에는 도무지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한결 같지가 않고 차츰 담을 넘는 구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 팔짱을 끼겠다고 덤비는 그녀를 뿌리치고는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상상의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그 무렵의 어머니는 내 얼굴만 보면 한숨을 내쉬고 있기도 했다. 아들이 자식도 없는 채로 이혼하고 혼자 있으니 당신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이었다.
그래, 하자, 해버리자,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어느 날 마약에 취한 듯이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기어이 어머니에게 사태의 전말을 털어놓고 조언을 청하기로 했다. 만약에 그녀와 내가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뜻조차 모호한 질문을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어머니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각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너 늙고 병 들면, 그 젊은 여자는…."
어머니의 이 한 마디, 빠르지도 않고 목소리가 높지도 않았다. 노기를 띤 음성도 아니고, 너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사내로구나 하는 경멸이 깃든 안색도 아니었다. 살얼음이라도 더듬듯이 조심스럽게 나온 이 한 마디가 나는 어쩐 일인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뒤이어 쐐기를 박듯이 나온 어머니의 한 마디.
"임시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듯 입을 꾹 다무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임시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임시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머니가 다소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어머니가 마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이웃집 여인이라도 되는 듯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다시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 어머니밖으로 나오는 것을 너무 싫어하시는 ⓒ 김수복
그러나 그때의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그렇게도 섬세하게 당신 자신의 입장만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도 같은 무게로 생각하시던 어머니는 그야말로 한 시간을 삼 년처럼 후딱후딱 넘겨 버리는 것인지 다른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고 오직 당신만의 목숨에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다. 방안에 새우처럼 둥글게 허리를 구부리고 누운 채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일어나기가 귀찮아서도 아니다.
치매는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는 들은 풍월이 있어 적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바깥바람을 쐬게 하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도 넘게 실랑이를 벌여야만 한다. 다리가 아파서 싫다느니, 허리가 아프다느니 온갖 구실로 뿌리치는 어머니를 겨우 어떻게 유인해서 차에 태우고 한눈에도 시야가 확 트이는 저수지로 가는데 여기서 또 실랑이가 벌어진다.
"안 해. 안 내려. 멋할라고 내리라고 혀?"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중얼거리기만 하는 어머니. 두 팔로 번쩍 들어 안아서 내려야겠다 생각하고 팔을 내밀면 마치 구렁이라도 본 듯이 진저리를 치며 온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는 운전대를 꽉 틀어잡고 엉덩이에 있는 힘을 다주어 완강하게 버틴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시상에, 그놈이 나를 물에 빠쳐 죽일라고."
딴에는 답답한 집안보다 훤하게 트인 물가에서 산책을 한다면 그 효과도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은 매번 이렇게 좌절되어 버린다. 산에 약초를 캐러 갈 때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다. 들꽃도 좀 꺾어보고, 산딸기 같은 것도 좀 따보고,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만 어머니는 차 안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조차 들지를 않는다. 손을 내밀면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고 말로만 들었던 저 유명한 고려장을 떠올리고 만다.
물가에 가면 물에 빠뜨려 죽일 것 같고, 산에 가면 고려장 같은 것이라도 해버릴 것 같은, 식당에 가면 또 그것대로 살그머니 유기해 버릴 같은, 그래서 아예 방안에만 웅크리고 있기로 작심을 해버린 것 같은 어머니, 이런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들이 그간 얼마나 보이지 않게 당신을 실망시켰으면 저렇게도 남몰래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가. 이것을 다만 치매라는 이름으로 넘겨버리고 말 것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언행은 대개 과거의 어떤 일들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릴 정도의 중증 치매 노인의 행동이라 해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만다면 삶은 너무나 쓸쓸하고 알맹이도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문득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 전율을 하는 요즈음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제 드디어 철이 들어가나 보다. 이 또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어쩌면 마지막 선물일 것이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으로 가득 무겁게 울렁울렁거리며 차오르는 이것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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