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포도쨈 만들기' '솜사탕 나무 찾기'...이런 수업 어때요?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17)

등록|2009.09.17 12:08 수정|2009.09.17 12:08
백로를 포도순절(葡萄殉節)이라 하여 백로 즈음 먹는 포도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지난 주 백로 절기 공부를 하고 함께 포도를 먹으며 그 맛을 즐겼지요. 포도를 먹는 모습도 가지가지입니다. 포도 껍질에 씨까지 씹어 먹는 아이들, 껍질은 먹지만 씨는 뱉어 내는 아이들, 씨는 알맹이와 함께 꿀꺽 삼키지만 껍질은 벗겨 먹는 아이들, 씨도 껍질도 먹지 않는 아이들까지. 모든 과일이 그렇듯이 포도도 껍질에 몸에 좋은 것들이 많다고 하지요.

포도잼 만들기잼을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 한희정


오늘은 그 포도를 이용해서 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포도알을 하나하나 따서 물에 씻고 채에 받쳐서 물기를 뺍니다. 이 단순한 과정에도 아이들 성격이 묻어납니다. 한알 한알 씻어내는 아이부터 그릇에 물 몇 번 부었다 내어버리는 것으로 끝인 아이까지. 언제나 적당히 잘 하는 지점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걸 또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요.

씻은 포도에 설탕을 조금 넣고 버무려 보았습니다. 특별히 이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설탕과 포도가 서걱서걱 섞이는 것을 느껴보면 좋겠다 싶어서 넣었지요. 그 느낌을 표현해 보라니, 다들 징그러웠다고 하네요. 어떤 아이는 황색포도상구균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끓고 있는 포돗물을 저어보는 아이들보랏빛이 곱다. 포도껍질로는 천연염색을 할 수도 있다. ⓒ 한희정


포도 버무린 것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끓입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자연스럽게 포도 껍질과 알맹이 씨가 떨어져 나옵니다. 진한 보랏빛 포도 국물을 따라내서 설탕과 함께 졸이면 포도잼이 됩니다. 건져낸 포도껍질과 씨는 버리기 아까워 어떻게 할까 하다가 우유와 섞어서 아이스바를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놀이 삼아 낙엽을 청소하는 아이들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빗자루와 삽을 이용해 학교 앞길 낙엽을 쓸어 모으고 있다. 이건 아이들에게 일이 아니라 놀이다. ⓒ 한희정


포도가 설탕과 함께 졸여지는 사이, 마을 산책에 나섭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 자줏빛 분꽃, 연보랏빛 구절초를 지나 부추꽃 앞에 섰습니다. 빨간 대야통에 흙을 채워 이런 저런 채소를 기르고 있는 빌라 앞입니다. 아주까리, 상추, 토마토, 가지, 고추, 부추, 쑥갓까지 웬만한 여름 푸성귀는 다 모여 있는 듯합니다.

부추꽃부추꽃대가 올라와 씨를 품고 있다. 이 씨는 그냥 흙으로 떨어져 내년 여름에 다시 잎과 꽃을 피울 것이다. ⓒ 한희정


꽃대가 올라와 하얀 부추꽃이 피었습니다. 그 옆은 이미 꽃이 지고 씨가 영글어가고 있었지요. 부추는 여름살이 친구랍니다. 먹을 만큼 자랐다 싶어 쓱 베다 먹으면 어느새 또 자라 있고, 베어주지 않으면 바로 꽃대가 올라와 못 먹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생명력을 지닌 부추가 우리 몸에 들어가서는 해독 작용까지 해 준다고 하니, 여러 균에 노출되기 쉬운 여름철에는 밥상에 꼭 오르는 푸성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상추꽃과 씨부추 옆의 상추도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가고 있다. ⓒ 한희정


부추꽃 옆에는 상추꽃도 피었습니다. 여름 내 따 먹고 씨를 받기 위해서 부러 남겨둔 상추 한 포기에서 수십 송이 꽃이 피었지요. 상추도 부추처럼 잎을 부지런히 따서 먹으면 속잎이 계속 나와서 여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자칫 따야 할 시기를 놓치면 어느새 꽃대가 올라오게 되고, 먹을 수 없게 되는 작물입니다. 식물의 생태를 미리 알고 그 생태에 맞게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여름내 밥상에 오르던 상추며 부추, 토마토, 호박이 이제 가을걷이를 앞두고 있는 시절입니다. 상추씨, 부추씨, 호박씨, 토마토씨 미리 받아 줄 준비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거지요.

계수나무북쪽에서는 계피나무라 한단다. 노란 잎과 초록 잎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 한희정


놀이터로 내려가 솜사탕 냄새가 나는 나무를 찾아보자 했습니다. 지난 주 나들이 때. 2학년 아이가 '선생님 솜사탕 냄새가 나요. 계수나무 있는 거 아니에요.' 했다기에 다같이 찾아보자고 한 거지요. 아이들은 용케 계수나무 향을 기억하고 있었고 곧 바로 찾아내어 떨어진 잎을 주워 냄새를 맡습니다. 초록 잎과 노란 잎이 어우러져 바람에 춤추는 모습이 곱습니다.

떨어진 계수나무 잎을 찾는 아이들계수나무 잎에서는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난다. ⓒ 한희정


지나는 길 푸릇푸릇 울긋불긋한 대추를 잔뜩 달고 잇는 대추나무를 만납니다. 벌써 이렇게 대추가 익고 밤이 익어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옛말에 풋대추 하나면 오리를 간다고 했답니다. 그만큼 달고 시원해서 갈증을 풀어주는데 딱 좋다는 얘기지요. 아이들에게 '오리' 이야기를 하니, 꽥꽥 오리를 떠올리네요.

호박 암꽃호박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모양을 보면 서로 다르다. 어른들은 수꽃은 따서 갖고 놀아도 된다 했지만 암꽃은 따지 못하게 했다. ⓒ 한희정


완연한 가을, 노란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핍니다. 작은 호박을 달고 있는 꽃과 그렇지 않은 꽃을 보고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라고 했더니 호박을 달고 있지 않은 게 '수컷'인 것 같다고 합니다. 이건 동물이 아니니까 수컷이라고 하지 않고 수꽃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었지요. 어릴 적 호박꽃으로 계란말이 만들어 소꿉장난을 할 때, 어른들이 수꽃은 맘껏 꺾어도 되지만, 암꽃은 꺾으면 안된다고 단단히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니, 갑자기 소꿉놀이가 하고 싶다고 합니다.

늙은 호박지나는 길에 덩그러니 달려 있는 늙은 호박을 봤다. 노랗게 잘 익을 때까지 무탈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 한희정


몇 발짝 못가서 아이들 머리통만한 호박을 찾았습니다. 여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고 따지 않았을까 했는데 늙은 호박으로 쓰려는지 그대로 있었습니다. 애호박과 늙은호박, 단호박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늙은호박은 맛도 좋지만, 호박씨를 구할 수 있다 하니 아이들은 애호박보다는 늙은 호박에 마음을 줍니다.

우리가 만든 포도잼을 바른 빵침이 꿀꺽~! 보랏빛 포도잼은 빛깔도, 향기도, 맛도 곱다. ⓒ 한희정


마을길 산책을 마치고 배움터로 돌아와 포도쨈을 구운 빵에 발라 먹습니다. 우리에게 가을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