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 못 타던 '결격남'이었는데...
[나는야 엄지짱] 자탄풍 선정작 '거미줄에 걸린 자전거'... 그에 담긴 이야기
▲ 자탕풍 공모에는 멋진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테오님의 ‘초대형 다이빙보드’, looking님의 ‘꼬맹이 기예단’, 전득렬님의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 엄지뉴스
거미줄에 걸린 자전거... 운명처럼 만난 풍경
8월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보름간 진행된 '자탄풍' 공모. 예전 어느 엄지 공모 때보다도 한층 뜨거운 참여와 호응 속에 무려 180여 편에 달하는 '자탄풍' 엄지 뉴스가 소개됐습니다.
이번 '자탄풍' 공모에서는 눈에 확 띄는 사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지요? 테오님의 '초대형 다이빙보드'와 같이 우아한 예술작품 느낌의 사진, 전득렬님의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과 같이 애틋한 사연까지 녹아든 독특한 사진, looking님의 '꼬맹이 기예단' 같이 작은 웃음을 던져주는 정겨운 사진 등 수많은 수작들이 넘쳐났습니다.
평소 엄지뉴스를 수시로 기웃기웃하던 저로서도 내심 '자탄풍' 공모에 욕심이 났지요. '어떤 장면을 연출하면 될까, 어떤 모습을 포착하면 될까... 나도 뭔가 하나 올려보자!'. 제 자전거를 멀뚱히 바라보며 고민을 이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수작들 앞에서 전 결국 '출품'을 포기했었답니다. 멋진 사진들이 하도 많았기에 명함도 못 내밀겠다 생각했지요. 감상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미 출품을 포기하고 미련까지 떨쳐버린 그때, 저는 '거미줄에 걸린 자전거'와 마주치게 됩니다! 운명이라고 하면 과장일까요? 제 발걸음이 충분히 다른 골목으로 향할 수도 있었는데 전 그날 딱 그 골목으로 들어선 거지요. 알 수 없는 묘한 운명 혹은 우연이란 것에 가벼운 감사를 띄우며 빙그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공모 마감 하루 전인 14일에 '끝물'로 엄지뉴스 송고를 할 수 있었답니다.
▲ 차탄풍 공모 수상작 '거미줄에 걸린 자전거'. 이삿짐 나르는 차량 뒤에 꽁꽁 묶여있는 자전거가 마치 거미줄에 걸려있는 듯 하다. ⓒ 이대암
멋진 '자탄풍' 사진들이 참 많았음에도 저의 '거미줄에 걸린 자전거'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셔서 참 감사드립니다(☞ 자탄풍 당선작 보기). 많이 추천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 여러분 덕입니다. 아무쪼록 이 사진을 보신 분들께서는 훗날 이사 가실 때 실을 공간이 없다고 자전거와 생이별하는 일은 없게 되시길 바랍니다. :)
자떨풍→ 자탄풍→ 자거풍... 즐거운 자전거 인생
그리고 '자탄풍' 공모 당선도 기쁘지만, 제가 자전거와 좋은 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정말 기분 좋답니다. NY님께서 올리셨던 '자떨풍'(자전거에서 떨어지는 풍경)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20대 건장한 청년남인 저도 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떨풍'이었습니다. 전 어릴 때 자전거를 못 배웠거든요. 솔직히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은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었지요.
여자분들이 "어머, 저 자전거 못 타요"라고 말하면 흉이 안 되고 도리어 매력이 되기도 하지만 청년 남성이 자전거를 못 탄다고 말하면 대개가 아주 한심하단 표정을 짓습니다. 기묘하고도 무서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의무교육'도 아니었는데 자전거를 못 탄다는 걸 그렇게 큰 '결격사유'로 여긴다는 것이, 그리고 그 잣대가 남녀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이요. 물론 그런 편견에는 신체장애 등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분들은 애당초 제외되어 있고요.
어쨌든 악순환이었습니다. 20대 청년남이 자전거를 못 탄다는 건 '쪽 팔리는' 일이었기에 어디 가서 연습하기도 참 어려웠거든요.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저에겐 정말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답니다. 타인의 편견어린 시선과 내 안의 소심함을 이겨내야만 하는 엄청난 과제였습니다. 결국 전 용기를 북돋아주며 코치해준 친구 덕에 몇 달 전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답니다. 자전거 타기가 좀 익숙해지자 서울에서 두물머리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했지요.
'자탄풍' 공모에 함께 즐겁게 참여했던 많은 분들께서 앞서 제가 성토한 '편견'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여기고 지나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짐과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자전거를 못 타는데 배우고 싶은 분들 하지만 주변의 내리까는 시선과 본인의 용기 부족으로 망설이시는 분들, 응원을 보내겠습니다. 한걸음 더 내딛으시길. 막상 부딪히고 보니, 부딪히기 전의 상상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답니다.
'자떨풍'에서 시작해 비틀비틀 제법 '자탄풍' 흉내를 내더니, 이제는 아예 '자거풍'(자전거가 거미줄에 걸린 풍경)으로 큰 기쁨을 선물 받았네요. 요즘 자전거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참 큽니다.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사고 나지 마시고요, 크고 작은 즐거움 얻으시길 바랍니다. 자전거와 함께 같이 즐겁고 건강하고, 초록별 지구도 지켜요!
▲ 소요님의 '자전거로 지키는 초록별 지구' ⓒ 소요
☞ 엄지뉴스 자탄풍 응모작 보기
▲ 소외?(stopwars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 #5505 엄지뉴스
네발 자전거, 아주 가끔 난 니가 창피해.
저 어른들을 봐. 커다란 바퀴에 튼튼한 페달, 띠링띠링 소리 좋은 벨까지 달려 있잖아. 거기에 비하면 넌 애기나 다른없어. 유치한 분홍색에 작은 바퀴...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넌 두발이 아니라 네발이라는 거야. 네발 자전거를 타는 건 "난 아직 애기예요"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거나 다름없다구. 물론 나보다 어린 진짜 애기들 자전거보다는 크고 빠르긴 하지만... 어른들처럼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어. 난 애기가 아니라고!
▲ 언제 두발 자전거 타나('규럽'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 #5505 엄지뉴스
흑흑. 아직도 네발이다. 아빠에게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좀 더 커야 한단다. 이씨, 내가 우리 유치원에서 제일 큰데... 유치한 분홍색 네발 자전거나 끌고 다니는 여동생보다 큰데... 나도 아빠처럼 큰 바퀴가 달린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어. 옆집 지훈이도 두발 탄단 말이야. 걔는 나보다 한뼘이나 작은데...
▲ 꼬맹이 기예단('looking'님이 #5505 엄지뉴스에 올려주신 사진입니다) ⓒ #5505 엄지뉴스
아싸라비야~ 우리는 자전거 기예단 남매라네~ 드디어 두발 자전거를 탔어. 으하하, 네발 자전거는 비키라구. 근데 머리에 쓴 헬멧이 좀 창피해. 그냥 어른들처럼 벗고 싶은데 엄마아빠가 꼭 써야 한다고 하시지 뭐야. 잔소리 듣기 귀찮아서 써줬지. ㅎㅎ 그 대신 무릎 보호대는 던져 버리고 동네 자전거도로를 씽씽 달렸어.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기분 좀 내서 자전거 위에 올라가 한쪽 다리 들고 좀 달려줬지. 지나가는 어른들마다 신기해 죽겠다는 눈빛인걸? 으하하. 자전거를 타려면 이정도는 돼야지. 이러다 TV쇼에서 연락오는 건 아닌가 몰라.
▲ 만세('stopwars'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 #5505 엄지뉴스
얼마 만에 타보는 자전거냐. 꼬맹이 시절 동네 한바퀴 돈 거 말고 거의 십여년 만에 달려보는 것 같군. 요즘 늘어나는 뱃살에 물렁물렁해진 허벅지살로 혼자 보기도 민망한 '저질체력'이 되고 말았지. 이게 다 그 망할 김 부장 때문이라고. 왜 나만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거야, 씨...
그래서 예전엔 둥근 술잔을 동무 삼아 하루를 마감했지. "소주 없이는 못 살아~"가 내 신조였는데, 이제 그런 말은 개나 줘버려. 지금은 둥근 두바퀴가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됐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니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저질체력은 자취를 감췄네. 이번 주말엔 야외로 한번 달려볼까?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크게 외치는 거야. "김 부장, 나쁜 놈~"이라고...
▲ 삼각형 안의 석양(퍼플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 #5505 엄지뉴스
앗, 어느새 해가 져버렸네. 자전거를 동무 삼아 달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해가 진다, 해가 진다. 자전거와 함께 맞는 해넘이. 나만의 고독을 즐기기엔 딱이지.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니까.
지훈이 녀석, 잘 나가는 세단 뽑았다고 자랑하던데... 하나도 안 부럽다, 뭐. 진짜다. 차 뽑아봐야 기름값에 보험비, 수리비 들지 환경오염에 길 막히지... 차에 계속 앉아 있으니 뱃살 느는 건 당연한 거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자전거만한 게 없다니까.
내사랑 자전거야, 오래오래 건강해라. 방방곡곡 달려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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