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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76) 호형호제

[우리 말에 마음쓰기 755] '호형호제'와 '어깨동무-손잡기'

등록|2009.09.18 11:13 수정|2009.09.18 11:13
- 호형호제

.. 코드가 잘 맞지도 않는 랄루 집권당 RJD와는 '공동의 적 암살'이라는 '연대 전선'에서 이따금 호형호제하기도 했다 ..  《이유경-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2007) 129쪽

"코드(code)가 잘 맞지도 않는"은 "생각이 잘 맞지도 않는"이나 "뜻이 잘 맞지도 않는"이나 "길이 잘 맞지도 않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공동(共同)의 적 암살(暗殺)"은 "서로서로 싫은 놈 죽이기"로 손질하면 어떠할까 싶고, "연대전선(連帶戰線)"은 "어깨동무"나 "손잡기"로 손질해 줍니다.

 ┌ 호형호제(呼兄呼弟) : 서로 형이니 아우니 하고 부른다는 뜻으로, 매우 가까운
 │    친구로 지냄을 이르는 말
 │   - 나는 그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다 / 어릴 때부터 호형호제하며 /
 │     우리 호형호제하는 게 어떻겠어요
 │
 ├ 호형호제하기도 했다
 │→ 사이좋게 어울리기도 했다
 │→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 손을 맞잡기도 했다
 │→ 함께 일하기도 했다
 └ …

형이니 아우니 하고 부른다고 하는 말마디라면, 말 그대로 "형이니 아우니 한다"고 할 때가 가장 알맞습니다. 줄여서 "형 아우 한다"고 할 때가 더없이 올바릅니다. 이와 같은 말마디에 구태여 한자라는 옷을 입혀 "호형호제한다"고 적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지식인들은 토박이말이 아닌 한자로 생각을 주고받았으며, 이런 말씀씀이와 글씀씀이는 책이며 편지이며 굵직굵직 자취를 남기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앞사람이 남긴 좋고 싫은 모든 짐을 떠안습니다. 반갑건 달갑잖건 우리 앞사람이 적바림한 글줄이 우리 글이 되어 온 흐름을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이 짐이건 글줄이건 우리 뒷사람한테 물려주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대로 물려주고, 우리가 다스리는 대로 이어줍니다.

우리 앞사람이 우리한테 얄딱구리한 말을 물려주었다고 툴툴거리며 우리 뒷사람한테 똑같이 얄딱구리한 말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앞사람이 우리한테 달갑잖은 글을 이어주었어도 우리들은 구슬땀 흘리며 이 글줄을 갈고닦아 우리 뒷사람은 달갑잖은 글을 이어받지 않게끔 다스릴 수 있습니다.

 ┌ 서로 죽이 맞기도 했다
 ├ 서로 한뜻이 되기도 했다
 ├ 서로 한마음이 되기도 했다
 ├ 서로 하나가 되기도 했다
 └ …

모르는 노릇이지만, 옆지기와 저는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리 아이한테 무엇을 이어주게 되는가를 좀더 깊이 느끼고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더라도 느끼고 생각했을 테지만, 날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더 깊고 너르게 돌아보고야 맙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더없이 많이 배우고 물려받는 모습을 느끼니,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더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어버이 된 이가 맨 처음에 아이한테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이 아이가 앞으로 크게 바뀔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참말로, 아이 앞에서 허튼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 앞에서 허튼 밥을 차려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 앞에서 허튼 놀음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 앞에서 허튼 말을 내뱉거나 허튼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구석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란 시인이 있습니다만, 어버이 된 몸으로서는 아이 앞에서 한 구석 남우세스러움이 없기를 바라면서 삶자락을 추스르거나 여미는 하루하루가 됩니다.

 ┌ 호형호제하는 사이 → 가까운 사이 / 형 동생 하는 사이
 ├ 어릴 때부터 호형호제하며 → 어릴 때부터 형과 동생으로 지내며
 └ 호형호제하는 게 → 형과 아우로 지내면

흔히들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고 집을 물려주고 한다지만, 어버이 된 사람은 돈이나 집을 물려줄 수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돈이나 집이란 아이가 땀흘려 거둔 열매가 아니니까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조금 얻을 수 있거나 한동안 빌릴 수 있어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옆지기와 저는 똑같이 생각하는데, 어버이 된 사람은 아이한테 마음과 생각과 넋, 이렇게 세 가지만 물려줄 수 있다고 봅니다. 마음과 생각과 넋이란, 말과 글로 보여주거나 이야기하기 마련이고, 여느 때에는 몸짓과 매무새로 느끼도록 해 줍니다. '오늘은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가르치겠어!' 해서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시나브로 가르치거나 물려줍니다. 어버이가 주고받는 말마디가 저절로 아이 입과 귀와 눈에 녹아들고, 어버이가 이웃하고 나누는 글줄이 차근차근 아이 손과 몸과 가슴에 스며듭니다.

 ┌ 형이니 아우니 하다
 ├ 언니이니 동생이니 하다
 ├ 오빠이니 동생이니 하다
 ├ 누나이니 동생이니 하다
 └ …

곰곰이 살피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만 물려주지 않습니다. 민주와 평등과 통일과 자유를 물려줍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내는 모양새에 따라 아이는 아이 깜냥껏 민주가 무엇이고 평등이 무엇이며 평화란 어떠하고 통일이든 자유이든 어떤 모습인가를 찬찬히 느끼며 받아들입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올곧게 평등과 평화로 뻗어나갈 수 있으나, 아이는 어릴 적부터 뒤틀린 평등과 잘못된 평화를 뒤죽박죽으로 생각하면서 어지럽게 갈팡질팡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린 날부터 참답고 밝은 민주와 자유를 몸속 깊숙이 차려 놓으며 동무와 사귈 수 있습니다만, 어린 나날부터 어둡고 케케묵어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생각에 젖은 채 시킴과 부림에 얽매인 바보처럼 눌려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나부터 내 말에 사랑을 담도록 애써야 한다고. 아버지 된 나 스스로 내 글에 믿음을 싣도록 힘써야 한다고. 좀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좀더 넉넉한 사람으로 어울려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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