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추억처럼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도심 공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보며 떠올린 추억 한 토막
▲ 도심 공원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 ⓒ 이승철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이육사의 시 '청포도' 앞부분이다. 7월을 대표하는 과일은 육사 시인의 시처럼 포도다. 그럼 요즘 같은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은 무엇일까? 가을과일하면 아무래도 사과가 아닐까 싶다. 아니 사과는 어쩌면 우리나라 과일의 대표선수 쯤 되는 과일이다. 모든 과일 중에서 사과를 제일 좋아하는 내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많은 과일들 중에서 사과처럼 많이 생산되는 과일도 드물 것이다. 사과는 생산량이 많은 만큼 저장도 많이 하여 연중 어느 시기에나 가장 흔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기도 하다.
▲ 가을 빛깔처럼 발그레 익어가는 사과 ⓒ 이승철
▲ 아직 푸른 빛깔의 사과도 ⓒ 이승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사과가 많이 재배되어 생산되는 사과 고장으로 대구와 황해도 황주를 꼽았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사과는 전국 어디에서나 재배되고 그만큼 생산량도 많아졌다. 품종개량도 이루어져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가 바로 우리나라 사과다. 외국여행을 할 때 맛본 어느 나라 사과도 우리 사과만큼 맛있었던 것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맛있는 우리 사과가 서울 도심 공원 한 귀퉁이에서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바로 뚝섬 서울숲 공원 상수도 정수장 부근 길가에 서있는 사과나무 100여 그루가 주인공들이다. '영주사과'라는 팻말이 서있는 곳에 있는 이 사과나무들은 맑고 따가운 햇볕 아래 풋풋하고 싱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모처럼 해맑은 날씨에 공원을 찾았다가 사과나무들을 발견한 시민들 몇이 도심에서 주렁주렁 익어가는 사과들이 신기한지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물론 종로 5가 도심 길가에도 몇 그루 사과나무가 서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곳처럼 100여 그루가 넘어 보이는 사과나무가 집단으로 서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 가을과일의 대표는 아무래도 사과지요 ⓒ 이승철
▲ 가을은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 이승철
싱그럽고 풋풋하게 익어가는 사과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날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군대생활 할 때 이야기다.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병과훈련을 받게 된 곳이 대구 육군병원 영내에 있는 군의학교였다.
그런데 바로 계절이 딱 이맘때인 가을 어느 날 야영훈련을 나가게 된 것이다. 훈련할 장소에 도착해보니 주변이 온통 사과밭 천지인 경산의 어느 개울가 모래밭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훈련병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을 바라보며 군침이 돌았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는 동안 몇 명이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밤에 몰래 사과서리를 하자는 것이었다. 잠깐 동안의 병영이탈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쉽게 마음이 모아졌다.
▲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 ⓒ 이승철
▲ 푸른 하늘과 사과 ⓒ 이승철
그리고 저녁이 오기를 기다려 작전이 벌어졌다. 빈 배낭 한 개씩을 짊어지고 훈련장을 살짝 빠져 나온 우리 일행들 몇은 손쉽게 사과밭 안으로 잠입했다. 그리고 사과를 따 배낭에 잔뜩 짊어지고 병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날 밤 몰래 먹은 사과 맛이라니, 그것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사과를 무려 15개나 먹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가. 그러나 사실 그 때 먹은 사과는 요즘의 사과 맛에 비할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단맛보다는 신맛이 월등히 높은 사과였으니까.
결과는 전날 밤 몰래 사과서리를 해 많이 먹은 일행들은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신맛이 압도적인 사과를 많이 먹은 탓에 이가 시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에 사과밭 주인이 찾아와 항의를 하는 바람에 범인 색출작업이 이루어졌고, 들통난 우리 일행들은 한나절 동안 모진 기합(얼차려)에 시달려야 했다. 사과에 얽힌 추억 한토막이다.
▲ 꽃사과도 빨갛게 익어가고 ⓒ 이승철
▲ 다닥다닥 예쁘고 앙증맞은 꽃사과 ⓒ 이승철
그 시고 떨떠름한 추억이 있는 사과밭 옆에는 몇 그루의 꽃사과 나무들도 서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꽃사과들이 다닥다닥 붙어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도 여간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서울 도심 공원 한 귀퉁이에서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이 깊어가는 가을과 더불어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싱그럽고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가 쓴 오마이뉴스 1천번째 기사로 추억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이야기를 올립니다.
2003년 7월 9일 '이런 시절이 있었지요'란 첫 기사를 올린 이래 6년 2개월 9일 만입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오마이뉴스 독자님들과 수고하신 편집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