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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보행, 교통약자는 어찌해야 합니까?

지팡이에 의존한 장애인과 노약자에게 위험천만인 우측보행

등록|2009.09.21 09:44 수정|2009.09.21 14:20
우측보행하면 보행자 교통사고 20% 감소, 정말?

작년에 불거져 나온 우측보행이 기어이 시행될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88년간 좌측보행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좌측보행이 신체특성이나 교통특성, 교통안전과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좌측보행은 보행자의 심리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공항이나 지하철역, 게이트, 건물 회전문, 횡단보도 보행 시 보행자 간 충돌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관계기관이 우측보행의 타당성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보행자 교통사고 20% 감소, 심리적 부담 13~18% 감소, 보행속도 1.2~1.7배 증가, 충돌횟수 7~24% 감소, 보행밀도 19~58% 감소라는 결과가 보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환경 속에서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곤 한다. 우리 생활 습관이 아직은 좌측보행을 함에도 불구하고, 공항 게이트나 지하철 개찰구 및 회전문은 우측보행으로 설치되어 있다. 우측과 좌측, 상반된 보행이 당연히 엉킬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며 우측보행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측보행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신체특성상 우측보행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는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묻고 싶다. 나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오른손으로 잡은 지팡이에 체중을 의지하고 나머지 왼손으로 안전대를 잡고 오르내린다. 안전대를 잡지 않고 지팡이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이것이 비단 나 같은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우리나라는 지금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럼 그들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 왼손으로 안전대를 잡아야 편리할 것이다.

우측보행이 난간 잡기 편하다고? 양쪽에 난간 설치하면 해결될 일

어느 특정지역에서는 우측보행을 시범적으로 벌이고 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에 의하면 노약자들은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한데 우측보행을 하니 난간을 잡고 내려올 수 있어 안전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안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편함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 건물들의 계단은 난간 쪽으로만 안전대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에 따라 계단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난간의 위치도 좌우가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우측보행만이 난간을 잡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이라고 딱 꼬집을 수 없다. 계단 방향이 어느 쪽이든 반대편 벽에도 안전대를 설치해주면 양방향의 이용이 수월할 텐데, 이런 간단한 문제를 두고 우측보행의 우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이제까지 좌측보행이었기에 지하철이나 기타 공공장소를 큰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측보행으로 바뀐다면 극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람들이 홍수처럼 밀리는 지하철 계단을 이용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까마득한 산꼭대기를 기어올라야 하는 것만큼이나 아득할 것이고, 내려올 때도 떠밀려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곳곳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통행 밀집 지역은 지하철 출입구가 14개인 곳까지도 있는데, 그 계단마다 모두 다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지상까지 이어진 에스컬레이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설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14번 출구로 나가야 할 사람이 다른 출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빙빙 돌아야 하는 불편을 겪는 것이 교통약자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제도에 상관없이 편리에 따라 역행을 해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준다한들, 물밀듯 밀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반대쪽 길을 연다는 것은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어떤 때에는 왜 반대 길로 와서 진로를 방해하느냐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에스컬레이터에서 봉변을 당한 기억도 있다. 내게 좌측보행이 단 하나 불편했던 것은 에스컬레이터였다. 움직이는 계단에서는 왼쪽 안전대를 더욱 꼭 잡아 주어야 하는 나는, 보행통로인 왼쪽 길을 열어주지 못해 보행의 흐름을 끊곤 했다. 뒷사람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은 나의 불편함을 보고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급기야 욕을 먹고 말았다. 그날은 에스컬레이터도 한산하여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두어 계단씩은 비어 있었다. 오십 대 후반쯤 되었을까. 우락부락한 남자가 뒤에서 왜 저쪽으로 비켜서지 못하고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몸이 불편해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로 비켜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두어 계단이 비어 있어 한발자국만 옆으로 떼면 올라갈 공간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종내 욕설까지 퍼붓는 남자에게 당한 모욕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상처였다. 이처럼 보행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상대에게 큰 불편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무조건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염치없는 요구를 어떻게 때마다 할 수 있을지.

언제부터인가. '두줄서기' 라는 노란 발자국이 에스컬레이터 앞에 나란히 찍혀 있어 반가움에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보행법 자체를 우측으로 바꿔버린다니 선물을 받았다가 도로 빼앗기는 기분이다.

사람의 몸은 습관에 길들여지는 것으로 안다. 90년 가까이 이어온 좌측통행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내린 관습이다. 별 무리 없이 이어온 이 제도가 왜 갑자기 바뀌어야 할까. 우측통행도 한동안 혼란을 겪고 나면 서서히 익숙해질 테지만, 노약자 입장을 고려한다면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 아닐까.

건강한 사람이라면 어느 쪽으로 보행하든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나처럼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 좌측보행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단을 이용하지 못하게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대를 잡을 수 있는 우측보행이 노약자에게 더 편리하다는 조사는 우측보행으로 바꾸기 위한 억지 구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노약자에게 진정한 편리와 안전을 보장해 주려면 각 건물의 난간과 벽면, 양쪽에 모두 안전대를 설치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공항 게이트나 지하철 개찰구, 회전문 등 몇 가지 아닌 시설물들은 자체 방향을 바꾸면 된다. 우측보행이 교통사고를 20% 감소한다는 보도는 '보, 차도 비 분리도로'에서의 좌측보행에 대한 조사를 오보한 것이라고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도 시인했다고 한다. 일본과 영국은 국제관례에 맞지 않다고 하는 좌측보행을 효율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좌측보행을 90년 가까이 이어온 데는 그동안 발생한 문제점을 꾸준히 찾아냈을 것이고, 그것을 개선하여 그만큼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관행을 바꾸기 위한 끼워 맞추기 식의 조사보다는 사회적 약자, 교통 약자에 대한 배려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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