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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일, 노년엔 어떤 게 더 큰 축복일까?

[이란 여행기 38] 패스트푸드점 종업원 할아버지를 보면서

등록|2009.09.21 13:56 수정|2009.09.21 15:53

▲ 쉬라즈에 있는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케밥을 굽고 있는 할아버지. 하루 종일 그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 김은주


이란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체로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호텔의 주인 할아버지들은 일하는 사람을 따로 둔 채 감독하는 수준의 일을 했습니다. 집에서 놀자니 심심해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지요.

길에서 만난 노인들은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느린 대화를 나누는 좀 한가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노인들 또한 한가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란에는 경로사상이 있어서 고된 일은 노인 몫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치열한 생활전선은 젊은이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쉬라즈에 있는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끝났습니다. 여전히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노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노인의 모습은 노년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일까, 아니면 열심히 자기 일하는 게 행복일까, 하고요.

쉬라즈 안바리 거리에 있는 안바리 호텔에 묵었는데, 이 숙소 맞은편에는 유명한 햄버거가게가 있습니다. '101햄버거'라고, 패스트푸드점인데, 피자를 시키면 치즈를 정말 아낌없이 덮어주는 가게였습니다. 치즈도 듬뿍 주지만 맛도 좋아서 저녁시간이면 햄버거나 피자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내가 만난 노인은 이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입니다. 우리는 쉬라즈 이틀째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습니다. 아침이라 저녁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음식 주문을 받는 유리 부스 앞에는 몇 사람이 줄을 지어 서있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고 어렵게 버섯 피자를 주문했습니다. 피자가 나오기까지 홀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렸습니다.

▲ 기도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노년의 여유를 느낄 수가 있었다. ⓒ 김은주


그때 나의 레이더에 한 노인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일은 가게 입구에서 쉼 없이 돌아가며 굽혀지고 있는 케밥 통 세 개를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길고 얇은 칼로 익은 고기를 살살 도려내고 있었습니다.

다소 깡마르고 등은 살짝 굽은 노인네가 케밥통을 올려다보면서 쉴 사이 없이 칼질을 하는 모습이 좀 고단해보였습니다. 물론 그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그 노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 일 자체가 그렇게 쉴 틈이 없는 것인지 노인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바쁜 업무였습니다.

우리 애들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케밥 통이 신기해서 주변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우리 애들에게 저리 비키라는 신호를 하고는 또 바삐 칼질을 했습니다. 그의 칼질에서 케밥 기계를 돌리고 있는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케밥 기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비슷한 게 느껴졌습니다. 장인 정신이었지요.

저녁으로 다시 이 집 햄버거 가게에 들렀습니다. 점심때 먹은 버섯 피자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3천토만 정도 했는데 치즈를 어찌나 많이 넣어주는지 치즈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았습니다. 저녁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마친 젊은 남자들이 주류였습니다. 이걸로 저녁을 해결하는 모양입니다. 그들 가운데 서서 기다릴 때 유리 부스 안의 젊은 사람이 손짓을 했습니다. 아침에 안면을 익힌 사람인데 우리에게 외국인이라고 특혜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우릴 긴 줄에서 해방시켜서 먼저 주문하게 해주었습니다.

피자가게 종업업의 배려로 또 긴 줄에서 해방돼서 먼저 피자를 주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문서를 들고 피자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케밥 통을 프로페셔널하게 관리하던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피자 빵 위에 야채와 치즈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 길에 서있는 나무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 노인들. 그들의 모습에서도 노년의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 김은주


할아버지는 젊은 남자애랑 둘이서 조를 이뤄서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 애는 이방인인 우리를 구경하면서 다소 게으른 동작으로 일했습니다. 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낮에 케밥을 칼질할 때 모습처럼 손을 빠르게 움직였고, 그의 몸은 아주 가벼워보였습니다. 마치 생활의 달인 같은 모습으로 손이 안 보이게 토핑을 올렸습니다.

옆에서 일하는 느릿느릿한 젊은 애는 할아버지가 토핑을 끝내면 집게로 팬을 집어서 오븐에 집어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젊은 애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자기 것을 다 하고 집게로 오븐에 팬을 집어넣는 과정을 아주 빠르게 몇 번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습에서도 그는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케밥을 칼질하던 일도 전공이고 지금 피자에 토핑하는 일도 자기가 최고 잘하는 일이라는 모습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침에 할아버지가 하던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데 그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할  때는 일분일초가 다급한 일로 여겨졌는데 지금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한없이 여유 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그는 케밥 통이 슬렁슬렁 돌아가는 옆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그냥 서있다가 아주 가끔씩만 칼질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쓸데없이 손을 많이 놀렸던 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피자에 토핑 올리는 일도 할아버지의 손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이미 준비해놓은 팬도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좀 느긋하게 움직일 수도 있는데 그는 그 틈에도 잠시의 여유도 즐기지 못하고 옆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일까지 간섭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재촉할까를 생각해봤는데 답이 나왔습니다.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햄버거 가게서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보다 유능하다는 걸 입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자기의 유능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칠순 노인네로서는 힘이 부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젊은 내가 그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칼질을 했다면 아마도 뻗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저녁까지 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으로 봐서 젊었을 때도 부지런했을 테고 열심히 일했을 텐데 이제 노년이 돼서 좀 쉬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 때문에 그에게 묘한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까  일하기 싫어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건 나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노인은 어쩌면 열심히 칼질하고 피자 위에 토핑을 가장 잘 뿌리고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서 삶의 만족을 얻고 또 그게 그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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