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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털기 (80) 급急

[우리 말에 마음쓰기 758] '급속도', '급상승', '급선무' 다듬기

등록|2009.09.22 11:26 수정|2009.09.22 11:26

ㄱ. 급속도

.. 결혼을 반대했던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  《황안나-내 나이가 어때서?》(샨티,2005) 36쪽

 "결혼(結婚)을 반대(反對)했던"은 그대로 둘 수 있는 가운데 "혼인을 말리던"이나 "혼인을 가로막았던"이나 "혼인을 못하게 했던"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솔직(率直)하게'는 '꾸밈없이'나 '있는 그대로'로 손질합니다.

 ┌ 급(急)-
 │  (1) '갑작스러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   - 급가속 / 급강하 / 급상승 / 급선회 / 급회전
 │  (2) '매우 급한' 또는 '매우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   - 급경사 / 급행군 / 급환자
 ├ 급속도(急速度) : 매우 빠른 속도
 │   - 급속도로 발전하다 / 급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
 ├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 아주 빨리 가까워졌다
 │→ 금세 가까워졌다
 │→ 불붙듯이 가까워졌다
 │→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졌다
 └ …

 앞이나 뒤에 함부로 붙는 외마디 한자말은 크게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글쓰기나 말하기로 먹고사는 분한테는 조금도 골칫덩어리가 아니구나 싶습니다. 글쓰기나 말하기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분한테는 '쓸 만하면 쓰고 안 쓸 만하면 안 쓰는' 한자말이요 외마디 한자말이지만, 글쓰기와 말하기로 살아가는 분한테는 웬만하면 이런저런 꾸밈말로 넣어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急-'을 붙이는 여러 가지 한자말도 그렇습니다. 빨리 올라가면 "빨리 올라간다"고 하면 되지, '급상승'이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빨리 달리거나 빠르기를 갑자기 높인다면 "빨리 달린다"거나 "갑자기 빠르기를 높인다"고 하면 됩니다. '급가속'을 찾지 않아도 돼요. 빨리 도니까 "빨리 돌기"입니다. 갑자기 돌면 "갑자기 돌기"입니다. '급회전'일 까닭이 없어요.

 ┌ 급강하 → 갑자기 내려감
 ├ 급선회 → 갑자기 빙글 돎
 ├ 급경사 → 가파른 비알
 └ 급행군 → 빨리 걷기 / 서둘러 걷기

 우리는 꾸밈없이 살아가면서 꾸밈없이 생각하고 꾸밈없이 말하면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꾸며야 한다면 왜 꾸며야 할까요. 어느 모습을 꾸며야 하나요. 어떻게 꾸며야 하는가요. 더 나아 보이도록 꾸미는가요? 더 멋져 보이도록 꾸미는가요? 더 있어 보이도록 꾸미는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없는 모습을 굳이 덧달거나 덧발라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있는 모습을 부끄러워 할 까닭이 없으며, 서로서로 오순도순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내 지식을 뽐내는 말이 아니요, 네 지식을 추켜세우는 글이 아니며, 누구나 골고루 받아들이며 기꺼이 껴안는 말과 글이 되면 될 뿐 아닌가 싶습니다.

 ┌ 급속도로 발전하다 → 매우 빨리 발돋움하다 / 부쩍부쩍 발돋움하다
 └ 급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 매우 빨리 이루어졌다 / 재빠르게 흘러갔다

 그러고 보면, "너 왜 이리 급해?" 하는 말버릇이 퍼지는 가운데 "너 왜 이리 서둘러?"나 "너 왜 이리 바빠?"나 "너 왜 이리 헐레벌떡이야?" 하던 말버릇은 차츰 잊힙니다. '急'을 쓰면서 우리 말살림이 늘어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急'을 쓰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들이 스스럼없이 즐겁게 쓰던 토박이말이 잊히거나 밀리거나 밟히는 일만 생깁니다.


ㄴ. 급상승

.. 지난 97년부터 99년까지 우리 어민 가구당 부채는 1100만 원대였으나 2000년에는 1300만 원대로 급상승했고, 올해는 1400만 원대로 늘어났다 ..  《최도영-통계로 본 지구환경》(도요새,2003) 77쪽

 '어민(漁民)'이든 '어부(漁夫)'이든 고기를 잡는 사람, 곧 '고기잡이'를 가리킵니다. 보기글 "어민 가구당(家口當) 부채(負債)는"은 "고기잡이를 하는 집마다 진 빚은"이나 "바닷마을 사람들이 진 빚은"이나 "바닷마을 사람들이 집마다 진 빚은"으로 다듬어 봅니다.

 ┌ 급상승(急上昇)
 │  (1) 기온이나 가격, 비율 따위가 갑자기 올라감
 │   - 체온의 급상승 / 지지율의 급상승 / 요금의 급상승
 │  (2) 비행기 따위가 위를 향하여 갑자기 빠른 속도로 올라감
 │
 ├ 1300만 원대로 급상승했고
 │→ 1300만 원대로 부쩍 올랐고
 │→ 1300만 원대로 갑자기 올랐고
 │→ 1300만 원대로 껑충 뛰었고
 └ …

 이 보기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승'이라는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急-'이 앞가지로 달라붙습니다. 토박이말 '오르다'를 넣었으면 한자말 앞가지 '急-'이 붙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자말 '하강(下降)'을 쓸 때에도 '急-'이 붙습니다. 토박이말 '내려가다'나 '떨어지다'를 쓰면 '急-'은 들러붙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어떤 낱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려 하느냐에 따라 우리 말은 사뭇 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낱말을 익히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나누려는 말은 크게 달라집니다. 어릴 적부터 어떠한 말을 자주 듣고 쓰느냐에 따라 우리 말 문화는 많이 달라집니다.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넉넉한 살림살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서로를 살피지 못하고 내 둘레에서만 맴돕니다. 넓게 보는 눈이나 깊이 감싸는 손길을 기르지 못합니다. 말을 말답게 쓰자면 나뿐 아니라 내 둘레 누구나 말을 말답게 써야 할 테지만, 내 둘레 누구나 말을 말답게 쓰지 못하는 가운데 나한테 옳고 바르게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모두들 똑같이 얄딱구리하게 말할밖에 없습니다.

 ┌ 체온의 급상승 → 몸 온도가 갑자기 오름
 ├ 지지율의 급상승 → 지지율이 껑충 뜀
 └ 요금의 급상승 → 낼 돈이 부쩍 오름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쉽게 생각할 일입니다. 이래저래 덧바를 노릇이 아니라 요조모조 단출하게 다스릴 노릇입니다. 사랑스럽게 다독이는 말이라면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말마디가 뒤따르니까요. 차갑게 내쏘는 말이라면 차가움이 둑둑 묻는 말마디가 뒤따르니까요.


ㄷ. 급선무

.. 그런데 제가 사는 지역에 백선이라는 피부전염병이 퍼져 있어서 이것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 394쪽

 '지역(地域)'은 '곳'으로 다듬고, "치료(治療)하는 것이"는 "고치는 일이"로 다듬어 줍니다.

 ┌ 급선무(急先務) : 무엇보다도 먼저 서둘러 해야 할 일
 │   - 통일은 우리 민족이 당면한 급선무이다
 ├ 선무(先務) : 먼저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
 │
 ├ 이것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 이 병을 고치는 일이 바빴습니다
 │→ 이 병을 먼저 고쳐야 했습니다
 │→ 이 병을 서둘러 고쳐야 했습니다
 └ …

 문득 궁금해서 '선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실려 있습니다. "먼저 할 일"이라고 풀이합니다. 한자를 곰곰이 뜯어 봅니다. '먼저 先'에 '일 務'가 붙어 '선무'입니다. '급선무'란 '선무' 앞에 '急-'을 붙여서, 한자풀이 그대로 "빨리 할 일"이 됩니다.

 국어사전을 덮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놓고 딱히 어떤 한 낱말을 지어 놓고 있지 않습니다. '볼일'이라는 낱말이 있으나 제자리에 알맞게 쓰는 때보다 한자말 '용무(用務)'를 따로 지어서 쓰는 때가 훨씬 잦습니다. 따로 '볼일'이라는 낱말이 있으니 '할일'을 우리 말로 새로 빚어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먼저 해야 할 일을 가리킬 때에도 '먼저할일'처럼 새 낱말을 지을 생각은 못하는 가운데 '선무'와 '급선무' 같은 한자말은 아주 가뿐하게 새로 짓습니다.

 ― 할일 / 먼저할일 / 빨리할일 / …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면, 모든 일매무새를 따로 한 낱말로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둘러할일'이나 '바삐할일'이며 '새로할일'이며 '다시할일'처럼 끝없이 이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또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새 낱말을 어디까지 지으면 좋을까 하고. 우리는 어디까지 새로운 낱말을 빚어내어 쓰고, 어디까지 '상말(관용구)'을 풀어서 쓰면 좋을까 하고.

 '할일'까지만 새 낱말로 빚어서 "먼저 할일"처럼 쓸 수 있는지, 아니면 굳이 '할일'처럼 쓰지 않고 "먼저 할 일"처럼 다 띄어서 쓰면 될는지, "바빠 할 일"이나 "서둘러 할 일"처럼 띄엄띄엄 적어 놓는 말투가 알맞을는지, 차근차근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할일'이라는 낱말 하나를 새로 빚으면 좋을 듯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때와 자리에 따라서는 "새로 할 일"이나 "다시 할 일"처럼 적으면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네 할일이 뭐야?"라든지 "오늘은 할일이 없습니다."라든지 "할일이 없어 놀고 있다"처럼 '할일'을 쓰면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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