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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들은 왜 MB를 배신했을까

여성 일자리 빼앗는 경제위기 직격탄 맞아

등록|2009.09.22 17:19 수정|2009.09.22 17:27
최근 30대 여성들이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히 호전되고 있는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좀처럼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어 화제다. 9월 실시된 일련의 여론조사 결과는 모든 계층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특히 30대 여성들의 지지율이 평균 지지율의 절반에 그치고 있는 것은 물론 같은 연령대의 남성 지지율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 조사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는 한나라당조차 인정할 만큼 실체가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30대 여성들이 MB에 대한 반란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런 결과는 왜 일어난 것이며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 [그림1] 남여 연령별 대통령 지지율 ⓒ 새사연


여성들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상식을 깬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매체들이나 분석기관들마다 원인 진단도 가지각색이며 사회 심리적 현상에서부터 정치적, 정책적, 경제적 이유들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진단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들이 30대 여성들의 저조한 대통령 지지율을 제대로 설명해주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반란'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요인 이외에 '경제적 측면'에서의 요인은 없는 것일까. 경제적 측면에서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최근 여성 일자리의 대폭적인 감소 현상과 연계를 시켜 보기로 하자.

30대 여성, 가정주부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

경제적 측면의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확인해둘 것이 있다. 그것은 30대 여성들의 반란을 '주부들의 반란'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육아나 가사 등에 전념하고 있는 '전업주부'들은 급변하는 사회 정치상황을 접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고, 가정의 안정성 등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다소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같은 주부들의 정치적 경향이 이명박 정부 들어 갑자기 달라질 까닭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최악의 국면에 빠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아도 이는 명백하다. 당시에도 주부들은,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자영업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같은 여론조사에서 남성과 여성을 모두 합친 30대는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고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불만도 가장 높게 나왔다.

▲ [그림2] 직업별 연령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 새사연


따라서 전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주부들 가운데 30대 주부들이 상대적으로 정부에 대해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고 추정할 수는 있어도, '30대 여성들의 정치적 성향 = 한국 주부들의 정치적 성향'이라고 등치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은 꾸준히 늘어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가사나 육아 등에 전념하는 '주부'는 700만 명에 불과하다. 더 이상 주부가 한국 여성의 대표 명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30대 여성들의 반란은 주부들의 반란이라기보다는 직장여성 또는 직장과 가정을 함께 책임져야 할 여성들의 반란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깊어가는 'M자형 고용구조', 힘들어지는 30대 여성

그렇다면 30대 여성들의 활동 무대를 가정에서 직장으로 옮겨가보자.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취업구조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M자형' 구조를 보인다. 초기에는 취업률이 올라갔다가 결혼과 출산 등의 이유로 중간에 취업이 감소한다. 그리고 초기 육아 기간 등이 지나면서 다시 취업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높아지고 고용 평등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사회복지 수준이 개선되면서 M자형 곡선이 완화되는 것이 상례인데,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오히려 M자 곡선이 더 뚜렷해지는 역진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것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그림3] 여성 연령대별 취업자 분포 ⓒ 새사연


여기에는 몇 가지 추세적 원인이 있다. 특히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대학 진학', '최초 취업', '결혼', '출산' 등이 그것이다. 우선 대학진학률을 보자.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은 1996년부터 50퍼센트를 넘기 시작해 2008년 현재 83.5퍼센트를 보였다. 84퍼센트 남성 대학진학률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 것이며, 현재 30대 전반기 직장 여성 이하의 절반 이상은 대학 진학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대학진학으로 20대 전반기 여성 취업률은 계속 낮아진다.

이어 청년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졸업 시기와 최초 취업 시기는 계속 늦어져 남성 기준으로 29세, 여성은 평균적으로 이보다 대략 2년 정도 빠른 27세 전후에 졸업 후 최초 취업을 할 가능성이 높게 되었다. 최초 취업이 20대 후반기에 집중되는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80년대만 해도 여성들의 대학 졸업 후 취업률은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졸업 여학생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게 되었고 2008년 현재는 여성 졸업생 취업률이 65.9퍼센트로서 지난 13년 동안 13퍼센트 이상 뛰어 올랐다. 이는 남성 졸업생의 취업률이 70퍼센트를 전후로 큰 변동 없이 지속되었던 것과 뚜렷이 비교되는 현상이다. 20대 후반의 여성 취업률 상승은 이런 결과다(통계청, <2008 한국의 사회지표>, 2009).

첫 취업 시기 지연과 비례하여 결혼 연령과 최초 출산 연령도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8세(남성은 31세)로 10년 전에 비해 2년 정도 늦어졌다. 첫 아이 출산도 현재 20대 후반 대(對) 30대 전반이 5:4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 10년 전의 9:2 비율과 비교하면 30대 첫 출산 여성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출산이나 보육 복지제도 개선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30대 전반기에 결혼과 출산 등으로 인해 직장을 떠나야 하는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는 뜻이다. 30대 취업자 감소가 확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40대에 접어든 여성들은 외환위기 이후 남성 가장들의 구조적인 고용불안과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다시금 취약한 일자리라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닥뜨렸고 이 때문에 중년 이후 여성 취업자들이 다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고용지형은 구조적으로 여성으로 하여금 후진국형의 'M자형' 고용구조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케 했다고 할 수 있으며, 2009년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런 형태는 더욱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09년 경제위기는 여성의 일자리를 빼앗은 경제위기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번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남성과 비교한 여성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나빠졌는가. 우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09년 들어 나타난 일자리 감소는 거의 대부분 여성 일자리의 감소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9년 접어들면서 남성과 여성의 취업자 감소자 수를 비교해 보아도 뚜렷할 뿐만 아니라 통학, 가사, 육아, 취업준비, 쉬었음 등을 의미하는 비경제활동 인구 증가수를 비교해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2009년 6월 이후에는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희망근로' 효과 때문에 민간 부문의 일자리 추이가 상당히 왜곡되고 있으므로 2009년 5월까지로 한정해서 분석했다). 일자리 감소가 최악이었던 2009년 5월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일자리 감소 수자 21만 9000개 가운데 21만 1000개가 여성 일자리였다. 줄어든 일자리 10개 가운데 9.5개는 여성일자리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충격적인 결과가 왜 발생한 것일까.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남성에 비해 훨씬 취약한 여성의 취업구조가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번 경제위기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대기업 정규직'쪽 보다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자영업 등 취약계층에게 고용충격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새사연, "한국노동시장 2차 구조변동의 4대 징후 " 2009.9.16).

여성의 취업 구성은 안정된 상용직이 낮은 반면 임시직은 남성의 두 배가 훨씬 넘는 3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매우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갖고 있다. 같은 자영업에 종사하더라도 고용인을 둔 상대적으로 안정된 자영업보다는 고용인 없는 영세한 자영자가 여성 쪽에 훨씬 더 많은 취약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 [그림4] 남여 상용/임시근로자 추세 ⓒ 새사연


이런 여성 취업구조는 경제위기에 집중적인 피해를 받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일자리 증가세를 유지했던 상용직의 경우, 남성 일자리는 25만개 전후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성은 증가세가 급격히 꺾이면서 2009년에는 5만 명 이하로 증가세가 줄어든다. 반대로 일자리가 불안한 임시직의 경우에는 여성 일자리가 정체상태에 있던 대신에 남성의 임시직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경제위기로 인해 안정된 상용직에서는 여성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불안정한 일자리인 임시직은 남성이 더 줄어들었으며, 감소폭이 가장 컸던 자영업은 영세한 자영자가 많은 여성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여성에게 일자리 피해가 집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08년 여고생의 반란 그리고 2009년 30대 여성의 반란?

이상에서 본 것처럼 최근 30대 여성들에게 나타난 이명박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의 배경에는 고용충격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30대 여성들의 경제적 상황이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들도 우리사회의 다른 수많은 사회현상의 역동적 변화와 함께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여성 변화의 중심에 30대 여성이 있었다. 그들의 교육수준은 갈수록 높아졌다. 취업성향이 높아지면서 졸업 후 사회생활 경험 없이 바로 전업주부가 되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최소한의 직장경험과 사회생활 경험을 한 여성들이 늘어났다.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남성 가장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는 여성으로 하여금 직장생활 지속에 대한 압박을 더욱 크게 만들어왔다. 실생활에서 사회적 경험과 안목을 체험한 여성들 가운데 일부가 비록 전업주부로 전환하더라도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 수단을 통해 현실 사회와의 단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었다.

똑똑하고 경험 많은 젊은 여성들은 육아나 교육환경 변화에 훨씬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거처럼 가계부 열심히 쓰고 저축을 착실하게 하던 패턴도 바뀌면서 주식이나 펀드 등 다양한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 동향에도 민감해졌다. 더 이상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불평등한 고용 관행으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더 불안정하고 더 낮은 연봉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사와 육아부담을 맡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보육시설 여건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아 일부는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성장하는 여성의 사회성과 답보를 면치 못하는 사회제도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어왔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고용이나 출산 육아, 보육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여성들이 앞으로도 힘들어지는 생활에 순응한 채 침묵으로 일관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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