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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258) 동화적

― '그림 속의 이런 집은 동화적이다' 다듬기

등록|2009.09.22 17:30 수정|2009.09.22 17:30

- 이런 집은 동화적

.. 그림 속의 이런 집은 동화적이다. 좁아도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따뜻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58쪽

 "그림 속의"는 "그림에 나오는"이나 "그림으로 그려진"이나 "그림 속"으로 다듬습니다. '가족(家族)'은 '식구'로 손보고, '상상(想像)할'은 '생각할'이나 '꿈꿀'로 손봅니다.

 ┌ 동화적 : x
 ├ 동화(童話) : [문학]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
 │   - 그림 동화 / 엄마가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 주었다
 │
 ├ 이런 집은 동화적이다
 │→ 이런 집은 동화와 같다
 │→ 이런 집은 동화에 나올 법하다
 │→ 이런 집은 동화라 할 만하다
 │→ 이런 집은 동화 같은 집이다
 └ …

  동화와 같다고 해서 '동화적'이라 하고, 소설과 같다고 해서 '소설적'이라 하며, 시와 같다고 해서 '시적'이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동화와 같으니 "동화 같다"고 하고, 소설과 같으니 "소설 같다"고 하며, 시와 같으니 "시 같다"고 해야 알맞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화가 떠오르게 한다"라든지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라든지 "시 느낌이 난다"라든지 말해야 올바른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알맞게 써야 할 말투를 알맞게 생각하지 못하고, 올바로 써야 할 글투를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제대로 써야 할 말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알뜰히 써야 할 글투를 알뜰히 가누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 이런 집은 꿈나라 같다
 ├ 이런 집은 꿈나라 얘기 같다
 ├ 이런 집은 꿈속에나 있는 듯하다
 ├ 이런 집은 꿈에서나 볼 듯하다
 └ …

 좀더 살펴보면, '동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동화적'을 이야기하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라 나오는데, '동심'이란 "어린이 마음"을 한자로 옮겨적은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어린이 마음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를 두고 동화라 가리킨다 할 텐데,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쓴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린이만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이한테 읽히는 작품이라고 해서 '꿈나라 같은 이야기'이지만은 않습니다.

 소설이라고, 또 시라고, 또 만화라고, 또 영화라고, 또 춤이라고, 또 노래라고,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적'을 붙이는 말투가 되면서 꼭 어느 한 가지 모습만 가리키는 듯 여기고, 쓰고, 다루고 맙니다. 부드러운 시가 있고 거친 시가 있으며, 단출한 시가 있는 가운데 길디긴 시가 있습니다. 달콤한 동화가 있고 슬픈 동화가 있으며, 꿈같은 동화와 함께 팍팍한 삶을 보여주는 동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섣불리 "동화 같다"라든지 "동화답다"라는 말도 쓸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습니다. "동화 같다"나 "동화답다"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눈높이와 눈길을 잘 가다듬었다'는 대목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동화적인 노래라고 → 동화 같은 노래라고 / 앙증맞은 노래라고
 ├ 동화적인 상상력 → 동화 같은 생각날개 / 넓고 깊은 생각날개
 ├ 동화적인 감성 표현하기 → 동화다운 느낌 나타내기 / 싱그러운 느낌 보여주기
 └ 동화적 이미지 표현 → 동화 느낌 나타내기 / 귀여운 느낌 보여주기

 한 마디를 말하든 두 마디를 말하든, 제대로 알면서 말해야 합니다. 내 깜냥껏 내 말투를 살리려 하든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투에 내 느낌을 담든,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생각마디를 어설피 꺼내지 않아야 합니다.

 "동화적 상상력"뿐 아니라 "음악적 상상력"이나 "영화적 상상력"은 너무 두루뭉술할 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나타내려고 하는가를 알맞게 드러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동화적 감성"이든 "소설적 감성"이든 무슨 느낌과 마음을 이야기하려는 뜻이었을까요. 이런 말투로 어떤 느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자꾸자꾸 "동화적 이미지"를 찾으면서 자꾸자꾸 "시적 이미지"이든 "문학적 이미지"이든, 뜬구름 같은 느낌만 붙잡으려 발버둥이 됩니다. 말다운 말에서 멀어지고 글다운 글에서 동떨어집니다. 말마디가 씌운 굴레에 갇혀 어지러이 떠돌고 맙니다.

 그래도,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이와 같은 두루뭉술한 말마디로 두루뭉술한 생각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설픈 글줄로 어설픈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습니다. 살찌우는 말이 아니요 살찌우는 생각이 아니요 살찌우는 삶이 아니라 하여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 동화적 작품들이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
 │→ 동화 같은 작품들이 시 같은 팽팽함을 북돋운다
 │→ 달콤한 작품들이 깊은 생각을 북돋운다
 │→ 올망졸망한 작품들이 온갖 생각을 이끌어낸다
 └ …

 옳은 말은 그리 마음쓸 대목이 아니라고 느끼는 요즈음 흐름이라고 봅니다. 바른 글은 그다지 눈여겨볼 대목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오늘날 물결이라고 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더 여러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도, 더 너른 이웃하고 더 깊고 살가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생각을 얻지 못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고 더 많은 정보를 날마다 더 넘치도록 보고 듣고 있으면서도 더 넓은 테두리에서 더 넓은 마을하고 사귀지 못합니다.

 스스로 굴레를 쓰는 삶이 됩니다.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생각에 머뭅니다. 스스로 지식에 갇히는 말로 맴돕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고 알차고 아름답고 훌륭한 동화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섣부르고 어리숙하게 '동화적'을 되뇌지 않느냐 싶습니다. 동화 작품을 올바르게 즐기는 사람이라면 '동화적' 같은 말투는 함부로 꺼내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동화를 쓰고 읽고 나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마디가 아이들 마음과 말을, 또 어른들 마음밭과 말밭을 얼마나 어지럽히는가를 깨달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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