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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집도 없는데, 내년엔 대학생 두 명"

[대한민국 진짜 서민①] 우리 동네 문구점 사장님의 고민

등록|2009.09.29 11:43 수정|2009.09.29 11:43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5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중도실용 정책과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의 급등과는 대조적으로 서민생활은 여전히 팍팍하고,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집값을 올라가는데,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진짜 서민들이 과연 어떤 얼굴로,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양호야 양호야 어서 빨리 나와라~"

요즘 이 노래가 자꾸 입에서 중얼거려진다. 가수 한대수가 부른 노래이다. 어떤 의미로 이 노래가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양호(良好)'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느낌이 가슴에 팍팍 꽂힌다.

우리 동네는 다가구 주택가... 월세살이에 새벽일 대부분

▲ 낡은 연립주택 밖으로 빨래가 널려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밝고 깨끗한 아파트의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꿈을 꿀 것이다. ⓒ 한미숙


내가 사는 동네는 집집마다 옥탑방과 반지하방이 있는 다가구 주택단지이다. 월세로 사는 세입자들이 상당수다. 이들 대부분이 새벽일을 나간다. 거기에다 다문화 세대도 간혹 섞여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아낙쯤으로 짐작되는 이들이 서너 명 보이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있고, 저소득층 다가구가 다닥다닥 몰려있는 이곳은 어쩌면 더 이상은 내려갈 곳이 없는 무풍지대로 보인다.

동네에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이 폐휴지나 빈 병, 캔 등을 유모차에 싣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한 분도 리어카를 끌며 재활용품을 모은다. 우리가 이사오면서 할아버지는 여기저기서 나오는 책이나 박스 등을 가져가기도 했다. 세탁소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아이 유모차를 끌고 밤새도록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들도 있단다.

▲ 동네 골목에는 건조대를 밖으로 내어 빨래를 말리는 곳이 많다. 한 집에 여러가구가 모여살다보니 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은 빨래를 내놓고 말려야 한다. ⓒ 한미숙


올해로 7년째 문구점을 하는 이아무개(49,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씨는 다른 무엇보다도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씨의 체감으로 집값은 2002년에 비해 3배가 올랐단다. 게다가 전세가격이 만만치 않은 상태로 집값을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어서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단다.

그는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셔터를 내린다. 6평 남짓한 공간에 각종 문구와 장난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에서 그는 종일 반경 10미터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200원짜리 지우개를 찾는 손님이 와도 달려와야 해요. 가끔씩 한꺼번에 아이들이 몰려올 때는... 손버릇 안 좋은 아이들이 있기도 해요."

문구점은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가 가까워 목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의 휴일은 언제일까?

"한 달에 한 번도 쉴까 말까 해요. 거의 쉬지 않는 거죠. 요즘엔 좀 쉬었어요. 벌초를 하거나 제사가 있을 땐 잠깐씩 문을 닫았다가 돌아와서 다시 열어요. 추석명절이요? 그때는 대목이에요. 아이들이 용돈을 받고 장난감 같은 걸 사러오니까요. 그래서 설 명절이나 성탄절 때는 제일 바쁘죠."

49세 문구점 사장님, 16시간 일해도 내 집 마련은 요원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간 큰애와 올해 수능을 보는 고3짜리 작은아이, 이렇게 두 남매를 둔 문구점 아저씨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교육비다.

"등록금이 제일 부담이죠. 작은애는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하긴 해도, 영어나 수학은 따로 사교육을 시켰어요. 올해 시험 보고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면 우리 집은 대학생이 둘인데,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 공약할 때는 기대가 컸어요. 근데 지금 그 얘기는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그저 4대강 살린다고 밀어붙이고 있는데, 그걸 어떡해요? 지금 그게 그렇게 급한 건지 먹고 살기 바빠서 잘 모르지만, 나중 생각하면 갑갑해요."

우리 집에도 대학을 다니는 딸 아이가 있다. 얼마 전 정부는 대학생 '등록금후불제'라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를 마련해 발표했다. 당장 등록금이 급한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반갑기는 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이게 약인지 독인지 헷갈린다.

등록금을 대출받아 공부하고 졸업했는데, 취업이 늦어지면 대출금의 이자는 그만큼 늘어나는 것 아닌가. 지금처럼 직장 잡기가 어려우면 취업은 늦어질 테고, 원금과 이자가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로 다가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문구점 주변으로는 분식집과 떡집,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다. 요즘엔 간판이 자주 바뀐다. 얼마 전엔 미용실 했던 자리에 과일 가게가 들어서기도 했다. 개업하던 날엔 가서 시루떡을 얻어먹었다. 개업기념으로 과일을 싸게 팔아서인지 그날은 손님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자꾸 손님 없는 과일가게를 보는 게 불편하다.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할인마트가 코앞인데 굳이 과일만 사러 그곳에 가는 손님이 있을까 싶은 것이다.

"내년엔 대학생이 둘, 반값 등록금 기대 컸는데"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 4일 경기도 구리 수택동 구리시장을 방문, 생선가게에서 게를 구입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지난 9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구리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면서 상인들의 얘기를 듣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몰려든 구리시민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지역언론 온라인 뉴스의 댓글에서는 "역대 대통령 중에 구리시 재래시장을 방문한 첫 대통령"이라면서 "서민행보 더 열심히 해달라"는 글이 있는가 하면 "구리시가 MB정부 출범 이후 제대로 되는 것이 뭐가 있나"라는 글도 있었다. 사람들은 "행정구역개편을 위한 사전행보"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서민들은 4대강에 퍼붓는 돈의 단 10분의 1이라도 서민을 위한 곳에 쓰이길 바란다. 40대가 가장인 가정들은 무엇보다 교육비가 가장 큰 고민이다. 4대강보다 더 시급한 문제를 먼저 푸는 방식으로 서민경제를 풀어나가지 않는다면, 재래시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의 모습은 화려한 이벤트나 친서민쇼에 불과할 것이다.

문구점 주변으로 고만고만한 분식점이나 세탁소, 미용실, 치킨가게 등 이웃들이 모이면 드러내진 않지만 가게세를 올릴까봐 걱정하는 분위기란다. 불황에는 간판가게가 더 바빠진다고 한다. 새로운 간판이 걸릴 때마다 '혹시 우리랑 같은 업종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다.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나이인 40대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잘 안되어도 참고 견딘다. 그만두면 당장에 놀아야 하니 겨우 임대료만 나올 정도여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집 옥탑방의 새댁부부가 열심히 맞벌이를 해서 건강하게 아기를 낳고 또 잘 키우는 데 필요한 쾌적한 내 집을 마련할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 문구점 아저씨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맘 놓고 푹 쉴 수 있게 하는 것, 이 소박한 소망이 '4대강 살리기'보다 먼저 아닐까?

서민경제를 얘기하는 대통령이 우리 동네 옥탑방이나 지하방을 와서 본다면 정말 어떤 게 서민경제를 살리는 일인지, 무엇을 서둘러서 먼저 해야 될 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양호야 양호야 어서 빨리 나와라~' 서민경제야 어서 양호하게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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