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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노니 죽을 것 같았다는 아이들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18)

등록|2009.09.24 17:19 수정|2009.09.24 22:19

호박고지볕 잘드는 곳에 호박고지를 말리는 손길도 보입니다. ⓒ 한희정


추분과 관련된 속담을 찾아보다

어제가 추분이었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날이지만, 실제로는 낮이 더 길게 느껴진다고 하네요. 가을볕은 뜨겁고 따가운 여름볕과 다르게 맑고 따사롭고, 한가하게 느껴집니다. 까맣게 익은 까마중, 주홍빛 감, 윤이 나는 알밤, 내다 넌 빨간 고추, 부지런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호박고지…. 추분 즈음 우리 마을 풍경입니다.

추분과 관련된 속담을 찾아 보았습니다. 추분과 직접 관련된 속담은 찾기 어려웠고, 가을 농사일과 관련된 속담이 많이 있었습니다. 추분이 일상 생활에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은 모양입니다.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다.
마파람이 불면 호박꽃이 떨어진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
가을비는 오래 오지 않는다.
가을 안개에는 곡식이 늘고, 봄 안개에는 곡식이 준다.
가을 부채는 시세가 없다.
가을비는 떡비.

더위가 물러갔음을, 기상과 생태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활의 변화를, 가을 농사일의 끝없음을 알려주는 속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요즘 생활에 맞는 속담을 지어보았습니다.

추분 되니 잎 떨어진다
추분 되니 낮밤 길이가 같아진다.
추분에 신종 플루 유행한다.
추부 바람에 씨앗 날린다.
추분 바람에 밤 떨어진다
추분 볕에 대추 감 익어간다
추분 볕에 호박 고추 말린다
추분 볕에 마스크 소독한다.
추분에 프로야구 절정이다.
추분에 부산 갈매기 때문에 속탄다.

창 앞에 매달린 고추가을볕에 고추 말리는 부지런한 손길을 지닌 어머니가 사는 집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있습니다. ⓒ 한희정


도토리 말리기지난 주에는 껍질째 말리고 있엇는데 어느새 껍질을 벗겨낸 도토리 알들이 가을 볕에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 한희정


산책길에 만나 고염나무봄부터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열매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고염나무지요. 감나무를 접붙일 때 쓰기도 하지만, 겨울밤 항아리에서 고염을 퍼먹던 기억을 되살려준 나무입니다. 고염나무 잎으로 만든 차는 감잎차보다 훨씬 구수한 맛이 깊습니다. ⓒ 한희정


탈출놀이...그 짜릿한 긴장감

프로야구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4강 전에 진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것에 마음을 쏟는 아이들 관심이 묻어납니다. 지은 속담을 한 번 쓱 읽어 보고 마을 산책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놀이터까지 가서 추분, 가을볕을 실컷 쬐며 한바탕 노는 것이라 했더니 환호성을 칩니다.

탈출 놀이라고 혹시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로 미끄럼틀에서 하던 놀이인데 술래가 눈을 감고 친구들을 찾아가는 놀이지요. 술래의 손길을 피해 진을 찍게 되면 탈출에 성공하는 거지요. 제법 그럴싸한 미끄럼틀이 놀이터에 있어서 아이들이 여럿인데도 재미있는 탈출놀이가 이어집니다.

술래가 내가 숨어 있는 곳으로 손을 뻗을 때 그 아슬아슬한 마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힘껏 매달려 있다가 팔에 힘이 빠져서 땅으로 툭 떨어져 술래가 되었던 기억도 있구요. 아이들도 이렇게 온힘을 다해서 놉니다.

탈출놀이이렇게 매달려 있는데 술래가 빨리 오지 않고 시간을 끌면 그만 팔에 힘이 빠져서 떨어져 버리지요. ⓒ 한희정


탈출놀이술래가 손을 더듬으며 다가오자 아이들 긴장하며 어디로 탈출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옆에 있는 아이들, 훈수 두기도 잊지 않지요. ⓒ 한희정


탈출놀이제법 길고 큰 놀이 기구가 있어서 탈출 놀이 하기에는 안성마춤입니다. ⓒ 한희정


한바탕 탈출 놀이를 하고, 얼음땡 놀이를 했습니다. 한참을 뛰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온몸에 땀이 가득, 아이들 날적이를 보니 이렇게 표현을 했네요.

이 더운 날에 신나게 노니 죽을 것 같았다? 이 표현이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입시 지옥에 덧붙여진 일제고사에 죽을 것 같을 정도로 놀아본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실컷 뛰놀며 자랐던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바로 절기공부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날적이절기 시간에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다같이 탈출과 얼음땡을 했다. 탈출은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힘들다. 얼음땡을 할 때 그네를 타고 있으면 아무도 안잡는다. 그래서 예진이는 그네만 15분 동안 타고 있었다. 철봉 실력이 탈출할 때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데 올라갈 때(그림) ⓒ 한희정


날적이절기, 오늘 절기 시간에 놀이터에 가서 탈출이랑 얼음땡을 했다. 근데 나는 철봉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다. 이 더운 날에 신나게 노니 죽을 것 같았다. ⓒ 한희정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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