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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후보자님, 과거의 가난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주장]청문회를 보면서 느꼈던 분노

등록|2009.09.27 10:57 수정|2009.09.27 10:57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관계자로부터 쪽지를 전달받고 있다. ⓒ 김창규





청문회를 보면서 느꼈던 분노 중의 하나는 '가난'을 이용하는 행위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정권 들어서 가장 치졸한 행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다 안다, 내가 가난했으니까 서민들 마음 다안다는 식의 논리 말이다.

나는 가난을 절실하게 느끼고 자라지 않았다. 아니, 평생 가난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했을 때, 가난했던 과거를 모든 것의 면죄부라도 되는 양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가난이 위장전입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과거의 가난이 세금탈루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과거의 가난이 병역비리의혹과 재산축소신고를 덮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행위야 말로 동정심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마음은 이해간다. 자기들이 선택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청문회까지 나와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었다느니,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했다느니 하는 말은 본질을 흐리는 행위다.

▲ KBS 청문회 동영상 캡쳐분.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청문회 초기에서 부터 과거의 가난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의원 또한 그런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 KBS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장운찬 총리 후보자가 어렵고 고된 환경에서 성장하여 자기 대에서 가난을 끊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득권층에 편입되는 과정과 기득권층에 편입되고 난 후의 행동이다.

노무현과 비교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의 생전에 한 말을 조금 인용해보자. 언론이 어려운 환경에서 고졸 학력으로 사시에까지 합격한 그의 과거에 집중하자 초점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 자체로 존경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가난을 극복하고 기득권에 들어간 사람 중에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많고 훌륭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이유에서다.  더 중요한 건 그 이후에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나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가난을 극복하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했을 개인적인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 노력은 겪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함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위대함을 증명하거나 존경받아야 할 이유는 아니며 더더욱 면죄부는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신이 일찌감치 모든 걸 경험했기에 모든 걸 이해하고 안다는 투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개인적으로도 경험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며, 똑같이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을 겪고도 어떤 이는 평화주의자가 되고 어떤 이는 극우가 되지 않는가.

경험보다 중요한 건 경험을 받아내는 그 사람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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