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보이는 우측보행 안내 표지판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라는 행정정책
최근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우측보행 안내 표지판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봤다. 그런데 광고판이 늘어서니 '왜 우측보행을 자꾸 요구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안내판을 자세히 봤다. 옛 문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이 우측보행을 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차는 우측으로, 사람은 좌측으로'라는 정책으로 우측보행의 관행이 생겼다고 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우측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간의 길거리 충돌을 피하고, 횡단보도에서의 안전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에 우측보행을 시행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안내 설명을 보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논리적 오류가 너무 많다. 게다가 우리 국민들이 이 정책을 모두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시끄러운 잡음이 들릴까 생각해보니 염려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거의 대다수 국민들이 오랫동안 '좌측보행'에 대한 관행이 이미 우리 몸에 익숙한 탓이다.
탁상공론에서 나온 잘못된 행정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라, 왼손잡이에게 오른손을 써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어느 정도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일부분의 유용성을 위해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펼쳐야 될 불필요한 예산과 행정적 노력을 너무 쉽게 간과한 행정정책이 아닐까.
일단 국토해양부와 관련 공공기관에서 내세우고 있는 논리에 내 나름대로 반박을 해본다.
첫째, 우리나라 종묘제래나 행렬도에서 우측보행을 했다는 것이다. 옛 문서를 뒤적거려 우측보행이 나왔으니 몇 백 년이 흐른 지금에 옛 조상의 관행을 따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옛 문서에서 찾은 것이라면 모두 이 시대에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비약될 수 있다. 이것은 행정 편의적 끼워맞추기 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둘째, '우측 보행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논리다. 물론 치욕스러운 일제 강점기의 문화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사실 시간이 흘러도 처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은 대가를 치르고라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청산되어야할 일제의 잘못된 잔재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이런 문제를 굳이 일제 운운하면서 애국심에 호소해야 하는 논리는 옳지 못하다고 본다.
셋째, 일부 선진국이 우측보행하고 있으므로 세계적 관습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졸렬한 논지다. '도대체 선진국이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선진국이 하면 우리가 모두 따라가야만 하는가? 정부가 주장하는 일부 선진국으로는 미국, 일본, 프랑스를 언급하고 있다. 우측보행을 시행하도록 만든 일제 강점기의 일본이 선진국의 사례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 국가가 좌측보행으로 바꾸면 좌측보행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자동차도 선진국처럼 오른쪽 좌석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것을 선진국의 관습과 정책에 따라 우리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의 정책을 모두 따라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주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넷째,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에 우측으로 보행하는 것이 보행자 시야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가장 공감이 간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인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만일 그 연구결과가 옳다면 연구결과에 대해서 적극 홍보하고 안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우측보행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 건널 시에는 우측통행'이라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안내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행정 시행상에서 발생한 문제의 허점을 제외하고라도 관련기관들은 더 중대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일단 무엇보다 국민들 간의 정서 충돌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모든 국민들에게 우측보행의 정보가 전달되고 국민들이 모두 다 수긍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완전하게 정착되기 전까지 누군가는 우측보행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좌측보행을 그대로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 간의 문화적, 정서적 충돌이 가장 우려된다.
현재 우측보행은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서울 지역에서 홍보가 집중되고 있다. 민족 명절이 시작되는 10월 1일부터 시범운영 될 계획이라고 한다. 결과를 보고 지방까지 확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칫 잘못되면 수도권에만 시행되고 지방에는 시행되지 못하는 반쪽짜리 행정정책으로 끝날 수 있다.
즉, 수도권 사람과 비수도권 사람들 간의 사이에 불필요한 문화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정책시행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좌측통행이 익숙한 세대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우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좌측보행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우측보행을 안내하고 있으나, 에스컬레이터를 탄 시민들은 거의 모두 우측에 서 있다. 즉, 좌측보행자를 위해 자리를 배려한 것이다. 결국 이들 시민을 강제로 왼쪽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정부와 시민이 따로 가는 정책이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을 조장할 수 있는 심각한 행정정책이다.)
앞으로 여러 홍보매체를 통해 우측보행을 새롭게 교육받고 그것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이 좌측보행 하는 사람들을 몰상식하게 바라보거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세대 간의 갈등', '교육격차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더불어 국민 모두에게 홍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굳이 보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강제적으로 바꿔야할만한 경제적, 시간적, 사회적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사전 설문조사와 홍보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진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행정정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과 교감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우측 보행 시행에 대해서 보다 진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바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봤다. 그런데 광고판이 늘어서니 '왜 우측보행을 자꾸 요구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안내판을 자세히 봤다. 옛 문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이 우측보행을 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차는 우측으로, 사람은 좌측으로'라는 정책으로 우측보행의 관행이 생겼다고 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우측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간의 길거리 충돌을 피하고, 횡단보도에서의 안전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에 우측보행을 시행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탁상공론에서 나온 잘못된 행정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라, 왼손잡이에게 오른손을 써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어느 정도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일부분의 유용성을 위해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펼쳐야 될 불필요한 예산과 행정적 노력을 너무 쉽게 간과한 행정정책이 아닐까.
일단 국토해양부와 관련 공공기관에서 내세우고 있는 논리에 내 나름대로 반박을 해본다.
첫째, 우리나라 종묘제래나 행렬도에서 우측보행을 했다는 것이다. 옛 문서를 뒤적거려 우측보행이 나왔으니 몇 백 년이 흐른 지금에 옛 조상의 관행을 따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옛 문서에서 찾은 것이라면 모두 이 시대에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비약될 수 있다. 이것은 행정 편의적 끼워맞추기 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둘째, '우측 보행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논리다. 물론 치욕스러운 일제 강점기의 문화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사실 시간이 흘러도 처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은 대가를 치르고라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청산되어야할 일제의 잘못된 잔재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이런 문제를 굳이 일제 운운하면서 애국심에 호소해야 하는 논리는 옳지 못하다고 본다.
셋째, 일부 선진국이 우측보행하고 있으므로 세계적 관습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졸렬한 논지다. '도대체 선진국이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선진국이 하면 우리가 모두 따라가야만 하는가? 정부가 주장하는 일부 선진국으로는 미국, 일본, 프랑스를 언급하고 있다. 우측보행을 시행하도록 만든 일제 강점기의 일본이 선진국의 사례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 국가가 좌측보행으로 바꾸면 좌측보행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자동차도 선진국처럼 오른쪽 좌석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것을 선진국의 관습과 정책에 따라 우리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의 정책을 모두 따라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주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넷째,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에 우측으로 보행하는 것이 보행자 시야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가장 공감이 간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인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만일 그 연구결과가 옳다면 연구결과에 대해서 적극 홍보하고 안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우측보행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 건널 시에는 우측통행'이라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안내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행정 시행상에서 발생한 문제의 허점을 제외하고라도 관련기관들은 더 중대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일단 무엇보다 국민들 간의 정서 충돌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모든 국민들에게 우측보행의 정보가 전달되고 국민들이 모두 다 수긍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완전하게 정착되기 전까지 누군가는 우측보행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좌측보행을 그대로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 간의 문화적, 정서적 충돌이 가장 우려된다.
현재 우측보행은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서울 지역에서 홍보가 집중되고 있다. 민족 명절이 시작되는 10월 1일부터 시범운영 될 계획이라고 한다. 결과를 보고 지방까지 확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칫 잘못되면 수도권에만 시행되고 지방에는 시행되지 못하는 반쪽짜리 행정정책으로 끝날 수 있다.
즉, 수도권 사람과 비수도권 사람들 간의 사이에 불필요한 문화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정책시행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좌측통행이 익숙한 세대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우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좌측보행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에스컬레이트의 우측에 서 있는 시민들 ⓒ 정철상
(서울 지하철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우측보행을 안내하고 있으나, 에스컬레이터를 탄 시민들은 거의 모두 우측에 서 있다. 즉, 좌측보행자를 위해 자리를 배려한 것이다. 결국 이들 시민을 강제로 왼쪽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정부와 시민이 따로 가는 정책이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을 조장할 수 있는 심각한 행정정책이다.)
앞으로 여러 홍보매체를 통해 우측보행을 새롭게 교육받고 그것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이 좌측보행 하는 사람들을 몰상식하게 바라보거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세대 간의 갈등', '교육격차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더불어 국민 모두에게 홍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굳이 보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강제적으로 바꿔야할만한 경제적, 시간적, 사회적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사전 설문조사와 홍보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진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행정정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과 교감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우측 보행 시행에 대해서 보다 진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블로그 정철상의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과 다음뷰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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