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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서 '때' 미는 아이 보니, 엄마 생각이…

"깜빡 잊었어요. 때 벗긴지 한 달 됐어요"

등록|2009.09.30 11:20 수정|2009.09.30 11:20
목욕탕에 가려는데 딸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빠, 아들 기다렸다 오면 같이 가세요."
"어디서 노는지 집에 없잖아. 왜 그래?"

"일요일 밤에 목을 훑었는데 마른 때가 가락국수처럼 나오데요."
"헉! 정말이야? 주말에 늦게라도 목욕탕 갈걸 그랬나?"

월요일 초저녁, 아들은 어디서 노는지 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동네 목욕탕에 갔습니다. 아들에게 미안하더군요. 아비로서 어릴 때 목욕탕 추억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어찌됐건, 개운하게 밀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보이더군요.

"너 오늘 혼자 목욕 좀 해라. 누나가 가락국수처럼 때가 밀린다고 하더라."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내일 할게요."

어머니와 부엌에서 때 밀던 때가 그립다!

여차저차, 아들 목욕은 하루가 더 미뤄져 드디어 어제 밤 하게 되었습니다. "몸 다 불렸어?" 욕실 문을 열었더니, 갓난아기 때 쓰던 욕조에 벌거벗고 앉아 놀고 있더군요.

그걸 보니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바람 솔솔 불어오는 부엌, 고무 대야에 앉아 어머니와 때 밀던 시절이 그립더군요. 우리네 대명절 추석이 가까워지면 때를 미시던 어머니와 실랑이가 많았었죠.

"아야! 엄마, 아파요. 좀 살살 밀어요."
"다 큰 놈이 뭐가 아프다고 그래."

어머니는 때를 밀다 말고 등짝을 찰싹찰싹 치셨죠. 어째 그때가 그리운지…. 아내는 출장 중이라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아들에게 "때 불렸으면 등짝 내밀어라" 했더니, "아직 멀었다"며 "혼자 하겠다"더군요. 시간이 지나자 목욕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 아들, 혼자 때를 불리고 있습니다. ⓒ 임현철


"깜빡 잊었어요. 때 벗긴지 한 달 됐어요."

"때 많았어?"
"엄청 많았어요."

"때 벗긴 소감은?"
"엄청 시원해요."

"목욕탕에 가서 또 벗겨야겠어?"
"안 가도 되는데, 아빠랑 가서 하면 더 좋죠."

"얼마 만에 때 벗긴 거야?"
"샤워만 하고 때는 안 벗겼으니, 목욕한 지 두 달 쯤 됐을 거예요."

그대로 옮겼더니, 녀석 '씨~익' 웃으며 하는 소리가 걸작입니다. "아빠, 깜빡 잊었어요. 때 벗긴지 한 달 됐어요."라고 정정합니다. 쪽팔리나 봅니다. 아빠인 저도 아들 혼자 때를 밀게 한 게 걸립니다.

아무래도 금요일 쯤 부자지간 손잡고 목욕탕에 가야겠습니다. 목욕 마치고 오던 길에 자장면도 먹으면 더욱 좋겠죠?
덧붙이는 글 제블로그와 U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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