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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랜만에 포식했다. 오늘이 제일 맛있었어요"

나누리교사봉사단 자원봉사 체험기

등록|2009.09.30 16:59 수정|2009.09.30 16:59
내일(30일)부터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녀석들 어머니는 여전히 아침 9시경 음식점에 출근해 밤 11시가 다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출근길에 만나는 동생은 머리가 길고 얼굴에 윤기가 없어 꺼칠한 모습이다.

지난주부터 녀석들과 만날 날을 잡으려 시간을 맞췄으나 잘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 '오늘 만나자'라는 말에 '엄마가 쉬는 날이에요'라는 대답을 한다. 어머니가 모처럼 쉬는 날이어서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미뤘다. 어렵게 잡은 날이 오늘(29일)이다.

종례 후, 복도에서 서로 눈을 깜빡이며 따로 만났다. 녀석과 시간을 흥정했다. 오늘은 7교시까지 하는 날이어서 5시가 다 되어 종례가 끝났다.

"5시 5분에 교문에서 보자. 동생이랑."
"에이 선생님 옷은 갈아입어야죠. 5시 20분에 봐요."
"야, 나는 그동안 뭐하고? 5시 10분. 더 이상 안돼."
"알았어요."

녀석들은 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왔다. 금방 추석이니 추석맞이 옷을 장만할 예정이다. 두 녀석 옷을 한 벌씩 준비하려면 예산이 빠듯하다. 방법은 하나, 저렴한 옷을 파는 가게로 가는 것이다.

시내 대형마트로 향했다. 두 녀석은 차 안에서 줄곧 소란을 떤다. 꼭 내 아이들 녀석을 데리고 나들이하는 풍경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매장 직원들만 꽃각시 흉내를 냈을 뿐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옷 가게에서 바지와 모자가 달린 티를 골랐다. 녀석 옷은 쉽게 골랐는데, 동생 옷 고르기가 만만찮다. 이 가게엔 초등6학년인 동생에게 맞는 적당한 바지가 없다. 다시 아동복 가게에 들러서야 바지를 골랐다. 기성복 바지는 다양한 손님을 겨냥해 길이가 길다. 수선 집에 맡기고 녀석들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수선비가 2천원이다.

돌아오는 길, 녀석들의 장난은 여전하다. 준수 녀석은 오늘 학교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담임선생님께 기합을 받은 모양이다. 녀석의 말로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500번을 넘게 했단다. 아직도 근육통이 있는지 형이 허벅지를 만지면 질색을 한다. 그래도 녀석은 '우리 선생님은 절대 때리지 않아요'하면서 선생님을 두둔한다. 두 녀석은 서로 간지럼을 피우기도 하고, 툭툭 건드리기도 하면서 돌아오는 내내 즐겁다. 언듯 보기엔 동생인 준수가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 전에는 냉면을 먹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쉽게 식당을 정했는데 이번에는 사전 약속이 없었다. 차창으로 지나는 간판들이 모두 메뉴에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연향동을 지났다. 금당지구를 지나도 선뜻 메뉴가 정해지지 않는다. 냉면, 횟집, 백반집, 중국집을 거쳐 결국 돼지갈비로 정했다. 돼지갈비집은 연향동에 있다. 차를 돌렸다.

"돼지갈비 3인분 주세요."

불판이 깔리고 먹음직한 돼지갈비가 나왔다. 뒤집고 자르다 보니 다 익었다.

"어서 먹어라."

녀석들이 상추에 고기를 올리고 된장과 마늘까지 넣어 쌈을 싼다.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열심히 고기를 뒤집고 있는데 동생 녀석이 쌈을 내민다.

"선생님 드세요."

녀석은 아직 고기 한 점 먹지 않았다. 눈물겹다. 그렇잖아도 요즘 혼자서 자취생활하는 처지인데 녀석이 제 입에 먼저 넣지 않고 나를 준다. 입안 가득 알 수 없는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한발 늦었네?'하며 중얼거리던 형이 쌈을 냉큼 제 입에 넣는다. 나도 배가 고픈 시간인데 녀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2인분을 추가하여 셋이 5인분을 먹었다. 후식으로 냉면까지 먹었다.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녀석들을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니 마실 수가 없다. 아쉽다. 돼지갈비 안주에는 소주가 제격인데….

"야, 오랜만에 포식했다. 선생님 오늘이 제일 맛있었어요."

동생녀석은 초등학생 답지않게 어른스럽다. 식당에서 나서며 환하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어린 녀석이 이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기 그지없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의 수다는 여전하다. 주로 형이 건드리고 동생은 방어하는 입장이다. 비명과 웃음이 교차한다. 집까지 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녀석들은 옷 보퉁이를 들고 환한 얼굴로 돌아섰다. 차 안에서 아웅다웅하던 두 녀석이 손을 잡고 텅빈 집을 향해 뛴다.

고단한 자취생의 한마디.

"나도 오늘 포식했다."
덧붙이는 글 전남 순천 중등학교에 재직하는 교사들이 후원하여 만든 나누리교사봉사단은 2004년 4월 창립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순수 봉사모임입니다. 나누리교사봉사단은 현재 100여명의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월 5만원 기준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독거노인 장애우 등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하여 명절과 연말에 지원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500여명의 순천지역 중등교사들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70여명의 교사가 자원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지원대상 학생에게 5만원 기준으로 추석선물을 마련하였고, 독거노인 10세대에 10여만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지원하였습니다. 기사에서 지출된 비용은 나누리교사봉사단에서 지원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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