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음식으로 토란국은 제격이다. 만들어 먹기가 좀 번거롭지만 맛은 참 좋다. ⓒ 전갑남
완연한 가을이다. 어느새 아침나절에는 따사한 햇살이 좋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간사한 것 같다. 따가운 햇살이 싫어 나무그늘을 찾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싸한 기운에는 따스한 햇볕이 좋으니 말이다.
며칠 전, 이발을 시킨 마당 잔디밭이 정갈하다. 잔디가 이슬을 흥건히 먹었다. 풀숲에서는 청아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가을 소식을 알려준 녀석들의 노랫소리를 언제까지 들을 수 있으려나?
눈을 들어 들판을 바라본다. 들판에는 고개 숙인 벼이삭으로 온통 누런빛이다. 황금물결이 충렁이는 들판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농부들은 이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다. 그런데 올핸 쌀값 때문에 시름이 깊다고 한다.
아내는 넉넉해 보이는 들판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다.
"여보, 금세예요! 모내기철이 엊그제 같은데 추수를 앞두고 있으니. 마니산에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을 날이 머지않았네!"
가을이 우리 곁에 깊숙이 찾아온 게 분명하다. 하늘빛이 높고, 피부에 닿는 공기가 다르다.
우리 집 마당가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대추나무 대추 열리듯이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 다닥다닥 달렸다. 열매는 벌써 빨간 색깔 옷을 갈아입고 있다.
내가 잘 익고, 통통한 열매를 따서 아내에게 건넸다. 맛을 보는 아내 입가에 미소가 넘친다.
"여보, 이렇게 맛있을 수가! 풋대추 맛에서도 가을이 느껴지네! 대추 나무심고 첫 수확이지!"
대추를 한 움큼 따고 있는데, 옆집아저씨가 놀러왔다.
"이 집은 가을걷이를 안 하나?"
"아직은 좀 이른 같은데요."
"해짧은 데 빨리 서둘러야지! 토란부터 거두라고?"
"토란이요? 밑이 들었을까요?"
"들고말고! 좀 놔두려면 추석 때 먹을 양이라도 캐면 될 것 아냐?"
그러고 보니 추석이 코앞이다. 예전 추석 때 토란을 캐 탕국을 끓여 차례상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토란을 캘 때가 된 듯싶다. 아저씨가 우리 텃밭의 첫 가을걷이 감으로 지목한 토란을 캐기로 했다.
토란꽃이 피다
토란이 가슴까지 키가 자랐다. 밑동도 통통하다. 잎 또한 우산으로 받쳐 쓰면 비 가림이 될 정도로 널찍하다.
아저씨와 함께 토란밭을 둘러보는 아내가 호들갑을 떤다.
"아저씨, 토란줄기에서 누런 꽃대가 보여요! 혹시 토란꽃이 핀 게 아닐까요?"
"그래, 토란꽃 맞네요!"
"여러 그루에서 꽃대가 보여요? 벌써 꽃잎이 벌어진 것도 있고!"
"토란꽃은 백년 만에 핀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참 보기 좋네요!"
"백년 만에 꽃을 피워요?"
"말인즉슨 그렇지요!"
▲ 토란꽃이다. 토란꽃은 꽃말이 '행운'이라고 한다. ⓒ 전갑남
토란꽃은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나도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토란꽃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우리 토란밭에도 노란 꽃대가 여러 군데서 보인다. 널찍한 잎 사이로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었다.
토란꽃은 드물게 핀다하여 '행운'이라는 꽃말이 붙여졌다. 아내는 토란꽃을 보고는 "올 가을 우리 집에 행운이 찾아드는 것은 아닌가!"하고 연신 싱글벙글 이다.
노란 꽃대를 꼿꼿이 세워 고개를 쳐든 게 요염하다. 어떤 놈은 꽃잎이 벌어져 노란 속살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꽃잎이 시들어 고개를 숙인 것도 눈에 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씨 같은 것이 맺혔다. 한 줄기에서도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같은 날 땅속에 알뿌리를 넣었는데도 형님 동생하며 자란 모양이다.
천남성과에 해당하는 토란은 열대아시아가 원산지이다. 물이 잘 빠지고 비옥한 땅에서 키 자랑을 하며 자란다.
▲ 우리 집 토란 밭이다. ⓒ 전갑남
우리는 5월초 토란을 한 판지 심었다. 토란은 싹 트는 게 아주 더뎠다. 씨를 넣고 한 달 가까이 기다렸다. 이제나저제나 싹이 틀까 기다리다 싹이 고개를 쳐든 것을 보고선 너무 반가웠다. 작은 싹이 자라서 팔뚝만한 통통한 줄기에다 키도 엄청나게 자랐다.
토란국... 부드러운 맛이 그만이다
토란(土卵)은 흙 속에 알같이 둥근 뿌리를 만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잎이 연잎과 비슷하여 토련(土蓮)이라고도 부른다.
토란을 캐기 시작한다. 낫으로 밑동이 통통한 줄기를 벤다. 그리고 삽으로 밑동을 판다. 생각보다 실하게 든 토란이 들어난다.
▲ 우리가 거둔 씨알이 꽤 굵은 토란.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 나눠 먹을 요량이다. ⓒ 전갑남
아내도 일을 거든다. 흙을 털어내며 알갱이를 하나하나 떼어낸다.
"여보, 이런 게 알토란이지?"
막 캐낸 토란은 흙이 묻어 있고, 잔뿌리가 많다. 흙을 털어 내고 잔뿌리를 깨끗하게 다듬으면 토실토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알토란이다.
토란줄기도 소중하다. 껍질을 벗겨 삶아 말리면 나중 소중한 나물이 되고, 특히 육개장 끓일 때 좋은 재료가 된다.
이제부터 토란국을 끓이려고 아내가 팔을 걷어붙인다. 토란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려면 일이 좀 번거롭다.
▲ 토란은 독성이 있어 삶은 것으로 국이나 탕을 끓여먹는다. 껍질을 벗길 때도 비닐장갑을 끼고 벗거야 가렵지가 않다. ⓒ 전갑남
우선 토란 껍질을 벗기는 일이 쉽지 않다. 맨손으로 까면 독성 때문에 손이 가렵다. 비닐장갑을 끼고 일을 하자니 더디다. 토란은 얼얼한 옥살산칼슘을 함유하고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독성이 있다. 그래 반드시 끓여서 독성을 제거한 뒤 먹어야한다.
아내 손놀림이 민첩하다. 토란국을 끓일 모양이다. 쌀뜨물을 넣어 끓이면 토란껍질의 미끄덩거림을 방지한다고 한다. 쇠고기를 넣은 물이 끓어오를 즈음 삶은 토란을 쏟고, 여기다 들깨를 갈아 넣는다. 마지막으로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한소끔 푹 끓이면 토란국 요리는 끝이 난다.
토란은 장과 위의 활동을 원만하게 하고 불면증과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졌다. 명절 때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나 배탈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토란국은 추석에 먹으면 딱 좋은 음식이다.
아내가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발휘하여 푹 끓인 토란국을 한 숟갈을 떠준다.
"여보, 맛이 어때? 예전에 먹었던 맛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 들깨를 갈아 넣어 맛은 더 구수하고!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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