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55) 완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767] '완화시키다'와 '누그러뜨리다-잠재우다-다독이다'
- 완화시키다
.. 따라서 극소수라도 휴가 제도를 도입하여 불만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83쪽
┌ 완화(緩和) : 긴장된 상태나 급박한 것을 느슨하게 함
│ - 긴장 완화 / 출국 제한 완화 / 긴장 상태가 완화되다 /
│ 환자의 증세가 완화되다 / 규제를 완화하다 /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다
│
├ 불만을 완화시키려 하고
│→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 불만을 풀어 주려고
│→ 불만을 다독이려고
│→ 불만을 잠재우려고
└ …
제법 널리 쓰는 한자말 '완화'도 '-화'붙이 낱말이 아닌가 하고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는데, '緩化'가 아닌 '緩和'라고 나옵니다. 뜻밖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퍽 많은 이들은 '완화'를 '-化'붙이 낱말로 여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化'를 말끝에 붙이는 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말투가 아니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더욱이, '-化'를 붙이는 말투가 일제강점기 뒤부터 일본말과 일본책과 일본 문화와 함께 들어오며 널리 쓰이게 된 오늘날, 이 말투를 우리 말투로 녹여낸다고 할지라도, 이 낱말 뒤에 '-되다'나 '-시키다'를 붙이는 일은 알맞지 않다고들 덧붙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투를 털어내거나 씻어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입으로는 "이런 말투를 쓰면 안 되는데, 저도 이런 말투가 자꾸 튀어나와요. 안 쓰기가 어려워요." 하고 말하기 일쑤입니다. 국어학자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국문학과 교수라 해서 남다르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나 지성인이라는 분들이라고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한테 한국삶을 이야기하면서 옳고 바른 한국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 아주 조금이나마 쉬도록 해 주며 성난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했다
├ 드물게나마 말미를 주어 시끄러운 소리를 막으려고 했던 셈이다
├ 아주 잠깐이라도 쉴 틈을 마련해 들끓는 짜증을 삭여 낸다고 했다
└ …
배웠다는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니 안 배웠다는 사람들은 보나 마나로 여겨야 할까 궁금합니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엉터리로 쓰고 있으니, 못났다는 사람이나 안 잘난 사람들은 이래저래 뒤죽박죽으로 써도 괜찮다고 보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化'붙이 말투라서 털고 '-的'붙이 말씨라서 떼며 '-의'붙이 말결이라 씻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싱그럽게 가다듬는 일을 가로막는 가운데,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알차게 일구는 흐름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 같은 말투와 말씨와 말결을 걸러내고자 합니다. 우리 넋을 아름답지 못한 쪽으로 자꾸 홀리고 있으며, 우리 얼을 거룩하지 못한 곳으로 그예 잡아끌고 있기에 말삶과 글삶을 좀더 다부지게 붙잡자고 합니다.
┌ 긴장 완화 → 긴장 풀기 / 조여진 마음 풀기
├ 출국 제한 완화 → 출국 제한 풀림
└ 환자의 증세가 완화되다 → 환자 몸이 나아지다 / 아픈 곳이 누그러지다
팽팽하게 당겨 있던 무엇을 느슨하게 해 준다는 자리에 쓰는 한자말 '완화'입니다. 그러나 느슨하게 해 줄 때에는 말 그대로 '느슨하게 한다'고 하면 넉넉합니다. 자리에 따라서는 '누그러뜨리다'를 넣을 수 있고, '풀어 주다'라든지 '다독이다'라든지 '잠재우다'라든지 '줄이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 누군가는 '왜 한자말 완화를 쓰지 말라고 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이런 토박이말이 있고 저런 토박이말을 예부터 썼다 할지라도 눈길 한 번 두지 않고 '난 완화라는 말만 쓸래'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쓰고 싶으면 써야겠지요.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도 쓰고 싶으면 써야겠지요. 짜장면을 먹을 때에는 나무젓가락을 톡 하고 끊어서 먹고 나무젓가락은 빈 접시에 쑤셔박고 버려야 제맛이라고 하는 분들은 이렇게 살아야 할 테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짜장면을 나무젓가락을 끊어서 썼을까요? 예전에도 나무젓가락을 한 번만 쓰고 버렸을까요? 다 쓴 나무젓가락도 깨끗이 씻고 말려서 다시 쓰거나 다른 자리에서 쓰거나 '나무젓가락 만들기 놀이'를 하거나 새총을 만들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자가용을 타고 싶다면 자가용을 탈 노릇이지만, 자가용을 타는 만큼 석유를 더 많이 써야 하며 훨씬 많은 자원을 써야 할 뿐더러 우리 삶터 공기와 물은 나날이 더 나빠집니다. 이를 아울러 생각하는 가운데 자가용을 몰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엉터리 말을 쓴다고 할 때에도 이 엉터리 말 때문에 둘레 사람들이나 아이들한테 나쁘게 스며들거나 파고들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 규제를 완화하다 → 규제를 풀다 / 규제를 느슨하게 하다
└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다 → 남북 사이에 팽팽함을 누그러뜨리다
팽팽함을 풀고 우리 삶을 좀더 살며시 들여다보고 따숩게 껴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 사이에 팽팽함이 아닌 따스함이 감돌 수 있도록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남북이 서로 따숩게 손을 잡았다"나 "남북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로 했다"와 같이 흐를 수 있도록, 우리 말과 글을 함께 나누는 나와 네가 따숩게 손을 잡고 즐거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곱고 싱그럽고 맑은 말마디와 글줄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고 글 한 줄에 웃음을 담을 수 있는 우리들로 거듭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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