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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 과학자를 둘러싼 음모, 그 진실은?

[리뷰] 마이클 코넬리 <실종>

등록|2009.10.06 11:50 수정|2009.10.06 11:50

<실종>겉표지 ⓒ 랜덤하우스



'나노기술'이라는 것은 10억 분의 1미터 미만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첨단기술이다. 이 기술을 전자공학에 적용하면 '분자 컴퓨터'라는, 회로 전체를 유기적인 분자로 구성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크기는 아주 작지만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된 컴퓨터다.

또 이 기술을 의학과 생물학에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혈관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는 극소형 진단용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그 컴퓨터는 사람의 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병원균을 찾아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술이 구현되고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구해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난관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진단용 컴퓨터가 인체내에서 어떻게 동력을 얻어서 움직일까 하는 점이다. 기름이 없으면 차가 굴러가지 못하듯이, 체내에서 인체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동력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노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과학자

마이클 코넬리의 2002년 작품 <실종>의 주인공인 30대 중반의 과학자 헨리 피어스도 나노기술을 연구한다. 단지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회사를 설립하고 실력있는 연구원을 고용해서 시장을 선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피어스에게 추진력과 천재적인 연구능력이 있지만, 나노기술이라는 것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학문이다. 그래서 피어스는 열심히 투자자를 찾아다닌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그 기술이 구현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열정적으로 설득한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잘 유지해왔다. 관련 특허도 여러 개 받았고 연구성과로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기도 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커다란 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학과 생물학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실적을.

피어스는 이렇게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지만 인간관계는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사생활보다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피어스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한다.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주변에서 벌어진다. 새로 신청한 집 전화번호로 '릴리'라는 여성을 찾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는 것이다. 그런 전화를 하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다 모두 남성들이다. 피어스가 새로 받은 전화번호는 예전에 릴리가 사용했던 번호인 모양이다. 뭔가 호기심을 느낀 피어스는 자신이 직접 릴리라는 인물을 조사해보고 그녀가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등록된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피어스의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서 직접 그녀를 찾아나선다. 투자자들에게 프로젝트 설명을 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피어스는 엉뚱한 일에 한눈을 팔고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피어스는 조사를 해나갈수록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실종된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실종>의 원제목은 <10센트 뒤쫓기 Chasing The Dime>이다. 나노기술이 극도로 발달할 경우, 크기는 10센트 동전만 하지만 성능은 무한대인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어스 연구소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10센트 뒤쫓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실종>에서 피어스의 입을 빌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나노기술의 개념을 여러차례 설명한다. 메모리의 원리부터 시작해서 나노기술이 PDA나 노트북컴퓨터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인체 안에 들어가는 진단용 컴퓨터는 어떻게 동력을 얻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의료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등.

성인사이트에 등록된 젊은 여성이 사라진 것과 이런 기술이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전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까. 이런 궁금증은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풀린다. 나노기술은 분명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만, 그 기술의 구현이 현재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피어스에게 쓴 소리를 던진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발견해서 기존의 체계를 바꾸어 놓으면 사람들이 행복해할 거라고. 하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세상에는 질서가 있다고 다그친다.

이런 말에도 피어스는 흔들리지 않는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과학자의 일이다. 피어스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노기술로 구현되는 작은 세상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실종> 마이클 코넬리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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