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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권 침해는 국가배상 사유

남북한 정상들께 드리는 충언

등록|2009.10.07 10:24 수정|2009.10.07 10:28

▲ 추석계기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9월 29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최고령자인 남측 어머니 김유중(100)씨에게 북측 딸 리혜경씨가 어머니께 58년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먹여드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측의 이명박 대통령님과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민족의 명절인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 직전에 이뤄진 이산가족들 간의 상봉은 가슴 저린 뒷 소식을 남겨 한가위의 기쁨에 앞서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십대 꽃다운 나이에 헤어진 딸이 어언 75살. 이 딸을 만나지 않고는 결코 숨을 거들 수 없다는 일념으로 나그네 길 100년을 견딘 노모. 60년 만에 해후를 한 모녀는 피눈물을 가슴에 적시며 노모는 남으로, 딸은 북으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하여야 합니다.

노모가 100세이시니 머지않아 맞을 소천의 순간, 북에 있는 딸을 애타게 찾을 노모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60년 만에 만나 2박 3일을 함께 했다고는 하나 한 이불 속에서 단 1분의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부부로, 모녀 또는 부자간에 반세기가 넘어서 꿈같이 맞은 만남이건만… 소태보다 쓴 생이별을 앞둔 이들에게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1천만 이산가족 중 상봉 신청을 한 12만여 명 중 4만여 명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남은 8만6천여 명의 대부분은 70대 이상의 고령입니다. 전화는커녕 편지 한 통도 주고받을 수 없으니, 생사를 알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유일한 길이 남북당국에 의한 상봉 행사인데, 1차례에 100명씩 만나는 지금의 방식대로면 5백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십 수 년째 상봉 탈락의 쓴 맛을 보아온 이모 노인이 수원역으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져 쓰라린 최후를 맞았습니다. 온갖 언론들이 혈육을 향한 사무치는 비통을 안고 몸을 던진 한 노인에 관한 뉴스를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반세기를 넘도록 기다린 혈육과의 만남의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함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하나 뿐인 생명을 던질 수밖에 없게 한  법적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남북한의 두 정상께 직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법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남북당국의 승인 하에 10여 차례 남북한을 왕래한 제가 외람되게도 그 십자가를 지고자 합니다.

상봉권(만남의 자유) 침해는 국가배상청구권 사유

남북한의 두 분 정상께서는 '신체(만남)의 자유'라는 말을 들어 보셨겠지요. "바람처럼 훨훨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오 갈 수 있는 자유"로 모든 기본권의 대전제가 되는 천부적 자유 이지요. 한마디로 신체의 자유 없는 모든 기본권 보장은 사실상 유명무실함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할 것입니다.

세계 인권사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대헌장(Magna Carta,1215),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 시민대혁명(1789)은 물론 세기를 넘어선 지구촌 각 곳의 인권 현장을 밝힌 두 기둥은 평등권과 함께 바로 이 신체의 자유였습니다.

덕분에 평상적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곳을 큰 어려움 없이 오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유일한 특별구역인 한반도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두 분 남북정상께 이 특별구역의 철폐를 청원 드립니다.

이 청원은 초실정법적 권리인 신체의 자유를 적어도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는 우선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국가(체제)의 존재 이유가 구성원의 자유 보장에 있음은 국민(인민)주권적 법치주의의 기본적 전제라 할 때 이 청원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여 선진법치국가에서는 공권력의 '불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로 인한 국민의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북이산가족들의 상봉권(만남의 자유) 침해는 향후 충분히 국가배상청구권 사유가 될 것입니다.

우선 수원역에서 생명을 던진 고인과 그 유족 앞에 남북한 당국은 전적으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최고규범인 헌법은 국민이 누릴 최고의 권리로 인간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 보호 의무를 중첩적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측은 이모 노인의 헌법상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산가족상봉권)을 보장해 주지 못한 '부작위적 책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상속권자인 고인의 유족에게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북측 또한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쟁점과 결합하는 등의 만 가지 이유를 철폐하고 이모 노인과 같이 망향의 한을 안고 쓰러져 간 분들이 유골만이라도 고향 땅에 묻힐 수 있는 '이산가족남골당' 만이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동포 간의 하나됨보다 우선할 수 없다"

또한 남북한 당국 책임자들은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북 이산가족 간의 편지와 이메일 상의 자유로운 교류는 물론 화상통화 시설을 최소한 도 단위로 상설 운영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이제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이산가족들의 기쁨어린 흐느낌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적셔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혈육상봉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 조국을 원망하며 세상을 떠나는 원혼의 숫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남북 두 정상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그 한 방안으로 미활용중인 광활한 개성공단 부지 일부를 '이산가족만남의광장'으로 활용하고, 인천-개성 간 해로(海路)를 개설하여 경제와 관광을 겸하게 한다면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기대 이상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 분단과 분재의 해역은 '남북평화수역'으로 전환되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습니다. 수해를 막기 위해서는 물길을 잘 열어 두어야 하는 것처럼 피붙이 간의 만남을 보장하는 것은 거창한 통일 이란 구호에 앞선 민족대통합의 왕도가 아니겠습니까?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동포 간의 하나됨 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일제에 의한 남북 분단 이전, 일제 치하 하나의 조국 주석 이셨던 백범 선생님의 유언입니다. 남북 두 정상과 함께 해내외 동포 모두가 가슴에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덧붙이는 글 홍원식 기자는 북한법을 전공했으며 민족통합헌법연구소장입니다.

이 기사는 "남북한 당국에 드리는 충언"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 10월 7일자 <세계일보> 상에 내용이 압축되어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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