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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배우가 쓴 자전적 성장소설

다니엘 오퇴유 <바보 같은 짓을 했어>

등록|2009.10.21 16:34 수정|2009.10.21 16:34

▲ ⓒ 이레

다니엘 오퇴유의 <바보 같은 짓을 했어>는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재기 넘치는 문체로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꼬마 니콜라> <좀머 씨 이야기> 등의 익살스럽고 정감 넘치는 그림으로 유명한 장 자크 상페의 손을 거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성장소설이 탄생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 보면 <꼬마 니콜라> <좀머 씨 이야기> <바보 같은 짓을 했어>의 이미지가 하나로 겹쳐 보이는 착각에 빠져든다.

이 책을 쓴 다니엘 오퇴유는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인물이다. 영화 <제8요일>에서 다운증후군 환자 조지(죠르주)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던 해리(아리),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1950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랑 극단 배우이자 가수였던 부모를 따라 집시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던 다니엘 오퇴유는 영화 <마농의 샘> <여왕 마고> <제8요일>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프랑스의 국민배우이자 세계적인 명배우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그에게 작가란 수식어가 얼마나 잘 어울릴지 반신반의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책장을 넘기다 문득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쓰기 솜씨가 웬만한 전업 작가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인자함을 가득 담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동정심 또한 듬뿍 담겨 있었다. 그 눈길에 나는 바보 같은 미소로 답했는데, 선생님에게 동정심을 좀 더 유발하기 위해 그 미소에 슬픔을 한 움큼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부님이 나가고 나자 아이들은 마른 빵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탐욕스런 서른 쌍의 작은 눈이 입맛을 다시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수많은 별처럼 반짝이는 케이크의 설탕은 얼굴 전체를 핥고 싶게 만들었다" 등의 감각적 표현에서 그의 녹록지 않은 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7개의 에피소드는 공교롭게도 '첫경험'이란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든 우연의 일치였든 작가는 어린 시절 경험한 이주(移住), 극장 구경, 학교, 할아버지의 죽음, 첫사랑 등의 '첫경험'을 징검다리를 놓듯 책 속에 아로새겼다.

치기와 호기심 가득한 어린 시절의 과도한 장난과 일탈 - 성당에서 기도하는 신부님을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희화(戱化)한 일, 얼떨결에 폭죽 테러(?)에 가담한 일, 다소 조숙한 첫키스 등 - 사이로 더욱 투명하고 맑게 빛나는 동심의 세계. 그러나 그 밑바닥엔 소시민적 삶의 고단함도 배어 있다. 상류층 가정의 초대로 부잣집을 방문한 작가의 가족이 음치에 가까운 두 딸의 노래를 들으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에선 상류층의 허영심을 조롱하는 예술가로서의 긍지, 소시민적 자존심이 엿보인다.
 
평소 영화배우로서의 다니엘 오퇴유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작가로서의 다니엘 오퇴유가 다소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영화를 통해 확인된 그의 예술가적 기질과 인간적 면모는 책이란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감동을 안겨줄 거라 확신한다.

대체로 일반인 혹은 연예인들이 쓴 책에선 문학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반드시 특별한 재능을 요하는 일은 아니다. 밥을 먹고 공기를 마시듯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거창하고 대단한 일인 것처럼 왜곡되어 포장되고 있을 뿐.

그렇다고 아무런 울림이나 떨림 없이 내뱉는 말이 모두 문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끊임없이 차별화해야만 제 목소리와 색깔을 지닐 수 있는 것이 문학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 오퇴유는 작가라는 꼬리표가 무색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다니엘 오퇴유,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이레, 2004, 백선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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