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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굳어진 몸을 펴주고 손발이 되어준다

뇌병변 중증장애 전담 '두발로 어린이집'

등록|2009.10.08 18:07 수정|2009.10.09 10:30
"까르르륵, 아하하하"

수정(가명 8)이의 웃음소리가 작업치료실의 햇살을 밀어낸다. 정수리 위로 바짝 올려 묶은 머리가 아이의 웃음과 함께 앞뒤로 흔들린다. 이명선(28) 교사와 함께 큰 공 위에 올라타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거울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즐겁게 놀이에 빠진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이주원(27) 교사가 정아(가명 10)의 굳어진 몸을 조심조심 펴 주고 있다.

"정아야, 오른쪽 다리를 옆으로 뉘어서 허리와 상체를 반대로 돌리고 있는 거야. 자 조금 더 넘어간다. 이렇게 해야 바른 자세가 되는 거야."

이것은 뇌병변 중증 장애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치료교육활동중의 하나다. 아동이 직접 참여를 해서 자신들의 기능과 수행능력을 발달시키도록 도와주는 작업치료교육이다.

두발로 어린이집'은 도봉구 창동에 위치해 있다. 만2세부터 만 12세까지의 뇌병변 중증장애 아동을 전담해서 '주간 보육 및 치료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어린이집이다. 이곳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장애아동, 모부자 가정의 장애아동, 장애 부모가정, 맞벌이 및 결손가정의 장애아동, 기타 일반 주민의 장애아동 순으로 입소 순위가 정해진다.

두발로 어린이집도봉구 창동에 위치해 있는 두발로 어린이집 입구 ⓒ 박금옥


등원시간은 아침 9시부터다. 그러나 아이들의 외부치료나 건강상태에 따라서 등원시간은 들쑥날쑥이다.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안겨 조용히 들어왔다.

어린이집의 27명 아이들은 제각각의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실내자유 선택놀이, 씹기 훈련, 섭식관련 근육마사지, 신변처리훈련(용변),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음악치료, 그 외 수업 등이 한두 명씩 혹은 작은 그룹 내지 대그룹으로 진행된다. 외부치료나 재택순환수업, 학교 등을 오가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오가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이 모든 프로그램들을 한 아이가 날마다 감당하기에는 무리이기에 아이들마다 각각의 상태에 따라 요일별로 정해져 있었다.

한 명의 교사가 세 명의 아동을 담당하는 담임이 된다.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세 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요즘은 환절기 감기 때문에 아이들이 두세 명씩 빠져서 그나마 숨을 돌리는 것이지 모두 등원을 하게 되면 손이 많이 부족하다.

제 시간에 온 아이들은 실내자유 선택놀이를 했다. '블럭쌓기'를 하는데 쌓아 둔 블럭을 현식(가명 12)이가 몸으로 자꾸 흩트린다. "안되겠다. 현식이 배 위에다 쌓아야지." 한 교사가 누워 있는 현식이 몸에다 블럭을 올려놓자, 현식이는 몸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와, 현식이가 부활했어요 짝짝짝." 교사들의 말과 박수소리에 함께 있던 아이들도 좋아한다. 그런 중에도 놀이에 참석하지 않은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들어가 담임들의 보살핌에 들어갔다.

실내자유선택놀이불록쌓기 놀이를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 박금옥


점심시간은 11시 30분부터 2시까지다. 식사 시작 30분 전부터 교사들은 아이들의 잇몸마사지를 해준다. 씹기에 도움이 되게끔 잇몸과 입술 주변을 잘근잘근 문지르며 마사지를 한 다음에 섭식을 시작했다. 점심은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밥이거나, 죽, 미음 등이다. 아이들이 음식을 꿀떡꿀떡 삼킬 수 없는 상태이기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하고, 먹다가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가래가 끓어올라서 숨이 찰 경우도 있어서 '천천히 잘' 먹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점심시간은 꽤 길었다.

교사들은 말과 행동을 함께 했다. 아이들에게 자기 몸에 대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항상 알려 주었다. 아이들하고 시선을 맞추며 이야기 하고, 안아주고 만져주었다.

한 아이의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를 해주던 이윤정(28) 교사는 "아이들이 늘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스트레칭도 해줘야 해요"했고, 아이는 '선생님이 날 사랑하고 있는 거 다 알아요'하는 듯, 말은 못하지만 벙싯벙싯한 웃음과 소리로 교사에게 반응을 보냈다. 건강한 아이들보다 몸집이 다소 작은 편이라도, 안으면 축 늘어지는 아이들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그런 아이들을 늘 안아서 움직여야 하는 교사들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였다.

등원시간어린이집에 일찍 온 아이를 품에 안고 수업준비를 위해 의견을 나누는 교사들 ⓒ 박금옥


두발로 어린이집은 십여 년 전에, 뇌병변 중증 장애를 갖고 있던 5명의 아이들 부모들이 장애 아이를 보살피는 어려움을 나누어 보고자 한 아파트 거실에서부터 보육을 시작했다. 그 뒤 여러 곳을 거치며 지금의 장소에 있던 주택을 마련하여 늘어난 아이들의 보육을 전담하는 어린이집으로 인가 받았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국가에서 건물신축지원금을 일부 보조받아 3층 건물을 새로 짓게 되었고, 작년 말에 새 건물로 입주했다. 이제 아이들은 좁은 공간과 비가 새서 천장이 얼룩져 있던 주택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시설과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가에서 인건비로 80%를 지원받고, 보육료는 국가에서 각 가정에 지원해준다. 그 외 어린이집의 모든 운영, 즉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기구나 차량 운행, 시설 등등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온전히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신미섭(45) 원장은 후원자들의 지속적인 도움을 바라는 한편으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호소한다.

"뇌병변 중증 장애 아이들을 낮 동안 전담으로 맡아서 교육하고 보호해줄 기관이 많지 않아서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대기자들이 많아요. 국가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좀 더 세심한 정책을 세워줘야 해요. 그래서 가정에서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에게 전문치료교육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되어야겠죠. 그렇게 되면 장애아를 갖게 된 가정의 해체위기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있겠고,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조기치료, 교육으로 인한 자립의 기반도 기대할 수 있을 거예요."

신호등 건너기 수업수업시간에 '건너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신호등에 관련된 수업을 하고 있다. ⓒ 박금옥


하원시간은 오후 4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어린이집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차를 두고 한두 명씩 집으로 가는 차에 태워지거나 부모가 데리러 왔다.

"우리 재희(가명 7)잘 놀았어?"

엄마의 목소리에 재희는 누워서 팔다리를 뻗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엄마는 재희의 배를 문지르며 자신의 볼을 아이의 볼에 대고 부볐다.

교사와 부모들은 그렇게 불편한 아이들의 손발이 되어 주고, 서로 조력자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두발로 어린이집' 10월호 소식지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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