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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계산하고 경우는 바른 사람이야!"

이웃집 벼룩 간도 훔쳐 먹을 양반들

등록|2009.10.09 10:58 수정|2009.10.09 10:58
얼마 전 헛웃음이 나오고 입맛이 씁쓸해지는 뉴스를 보았다. 다세대주택 지하 1층에 세 들어 살면서 세 식구가 노점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세입자용 도시가스를 집주인이 훔쳐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한두 달도 아니고 7년씩이나.

집주인은 지하 1층 도시가스 배관에 구멍을 뚫어 자신이 사는 1층까지 연결해 사용하면서 세입자가 가스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의심하면 방이 넓어서 그런 같다고 변명하면서 속여 왔다니, 이웃집 벼룩 간도 훔쳐 먹을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참외 서리도 아니고,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의 가스를 7년 동안이나 훔쳐 사용하면서, 또 거짓변명을 하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했을까? 남의 일이라서 그런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어렵게 살아가는 세입자의 가스를 훔쳐 사용한 집주인은 남의 호박에 말뚝 박기를 즐기는 놀부보다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한편 측은하기도 했는데, 진짜 가난뱅이는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집주인이 훔쳐 사용한 도시가스 요금을 7년씩이나 내준 것을 알고 속상해했을 세입자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까, 32년 전 군산에서 가장 번화가인 영동에 세를 얻어 운영하던 가게 건물 주인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번화가였던 '영동'으로 이사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보석상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해도, 하고 싶은 만큼 해먹으라며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하고는 막상 영업이 잘되니까 2년도 채 안 되어 아무래도 다시 해야겠으니 돌려달라는 집주인과 입씨름을 벌이다 아쉬운 정만 남기고, 가게를 얻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필자 가게가 있던 군산 영동. 오른쪽 옷가게가 필자가 살던 건물. 그래도 깍쟁이 쥔아주머니 집에서 결혼도 하고 5년 넘게 살았다. ⓒ 조종안


큰 방 하나에 부엌과 욕실, 공장으로 사용할 창고가 딸린 가게는 위치가 좋은데다 대지 60평이 넘는 2층 건물이어서 집세도 만만치 않았다. 77년으로 기억하는데 처음 계약할 때는 1백만 원 보증금에 월세 10만 원이었다. 그런데 1년 하고 몇 달 지나면 10만 원씩 올려줘야 했다. 

당시 총각이었던 나는 1층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쥔 아주머니는 2층에서 살았는데, 3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 건물에서 양품점을 경영하면서 삼 남매를 키워낸 억척 살림꾼이었다.

어머니는 비록 아들이 세를 얻어 살지만, 젊어서 홀몸이 되어 늙은 친정어머니와 혼자된 올케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가 불쌍하다며 가깝게 지냈다. 내 마음도 어머니와 다를 게 없었는데, 딸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아들 둘은 중학생이었던 아주머니 역시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식구처럼 지냈다.

아주머니는 항상 깔끔하고 멋쟁이였고 미인이었는데, 신경이 무척 예민하고 동네에서도 소문난 깍쟁이로 통했다. 서울 물을 먹어서 그런지 여간 깍쟁이가 아니었는데 그래도 어머니와 나는 일찍이 혼자되어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하다 보니까 억척이 몸에 익었을 것이라며 이해했다.
 
처음 이사했을 때 아주머니는 가게에 내려와 큰 누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도 나누고 놀면서, 거래처나 주문한 공장에서 물건을 가져오면 구경도 하곤 했다. 여성이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던 고급시계, 반지, 목걸이, 팔찌 등이어서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다

남들은 깍쟁이라고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돈 계산하고 경우는 바른 사람이야!"라는 말을 입술이 닳도록 하기에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할 만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건물 2층에 사는 아주머니 식구들은 가게 옆에 있는 골목 문을 이용했는데, 가게 셔터를 내리면 어머니와 나는 물론 종업원들도 이용했다. 그런데 하루는 2-3일에 한 번씩 다니던 은수저 공장 아저씨가 가게는 들르지 않고 골목 문으로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은수저 공장 아저씨 행동이 수상했다. 죄지은 사람처럼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볼일만 보고는 곧장 가버려 예전과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낌새가 이상해서 가게를 봐주던 큰 누님과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두 분은 진즉에 알고 있으면서도 시끄러워질 게 두려워 숨겨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조건 참으라고 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종업원을 불러 캐물으니까, 몸을 비틀며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하나씩 고백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놀러 오는 친구들을 모아 은수저 계를 한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심부름도 다녔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까 수상쩍었던 일들이 떠올라 18K 제품 공장에도 알아봤더니, 죄송해서 어떻게 하느냐며 반지, 목걸이 부탁이 들어왔는데 몇 차례 해주다 그만뒀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도심지 상가 2층 이상 건물 주인은 세무서,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공서 직원을 상대해야 했는데, 주민등록 초본 하나를 떼려고 해도 가게 종업원을 시키거나, 내가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또 친구에게 부탁해서 은행 대출도 소개해주었는데, 실망을 넘어 배신감이 들면서 믿기만 했던 내가 바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능력이 없다고 해도 가게를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하고는 영업이 잘되니까 2년도 안 되어 다시 해야겠다고 달려드는 집주인, 식구가 갑절이나 많으면서도 재래식 화장실 똥 퍼내는 요금을 똑같이 나눠 내자는 집주인도 있었지만 이처럼 배신감은 들지 않았었다.  

물가가 올라 살기가 어렵다며 집세 타령을 하면 대꾸 한마디 안 하고 올려줬는데··. 집세는 집세대로 올려 받고 생활면에서도 도움을 받으면서 손님을 소개해주기는커녕 숨어서 이익을 챙기다니, 염장 칠 일이었다.

20년이나 어린 세입자가 운영하는 가게 진열장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공장에 부탁해서 이익을 챙겨온 아주머니. 그의 행적을 알고 나니까 그동안 쌓였던 정이 천 리 밖으로 달아났었는데, 이웃집 벼룩 간도 훔쳐 먹을 집주인을 보니까, 달아났던 정이 돌아오면서 깍쟁이 아주머니 얼굴도 떠올랐던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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