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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민들레를 먹어보자

밟을수록 강하게 번성하는 민들레와 친해지기

등록|2009.10.11 17:30 수정|2009.10.11 17:30
 나물은 역시 봄나물이 최고라고 하지만, 민들레는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민들레는 앞다퉈 새순을 밀어 올린다. 머잖아 닥쳐올 엄동설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하루가 다르게 싱싱해져 가는 민들레를 보고 있노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얘는 왜 이렇게도 대책이 없는 거야?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짧은 생각일 뿐이다. 겨울이라 해서 노상 얼음이나 얼고 눈보라나 몰아치라는 법은 없다. 십이월에도 이따금 훈풍은 불고 일, 이월에도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팔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강약반작용이라는 말로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우주의 이러한 운행원리를 민들레만큼 잘 알고 있는 식물도 그리 많지 않다.

▲ 해가 뜨면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닫는 민들레꽃. 지금은 해가 뜬 직후로, 서서히 만개하고 있는 중인데, 역시 가을이라서인지 봄꽃에 비해 풍성함은 적다. ⓒ 김수복





 대개의 초본식물이 일 년에 한 번 제철을 만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 안식에 들어간다. 설령 꽃을 두 번 피운다 하더라도 건실한 씨앗을 맺지는 못한다. 그런데 민들레는 특이하게도 한 뿌리에서 계속 꽃대를 밀어올리고 피는 꽃마다 결실을 맺어 천지사방으로 후손을 퍼뜨린다. 봄에도 꽃이 피고 여름에도 피며 가을에도 씨앗을 날리고 겨울에도 몹시 추운 날은 웅크리고 있다가 바람이 따스해지면 얼른 또 꽃을 피워낸다.

 우리의 옛말에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민들레에 적용시켜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민들레는 초본식물로는 아주 드물게 뿌리가 최장 일 미터까지 내려간다. 그것도 옆으로 뻗어가는 게 아니라 직선으로 마치 자기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핵심에까지 내려가서 그 속성을 낱낱이 알아보겠다는 듯 거침없이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의 그 도저한 생명력과 탐구정신(?)은 경이롭다 못해 장엄하기조차 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변하는 우리네 인간이 보고 배울 만한 점이 참 많다.

 게다가 민들레는 환경을 탓하지도 않는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그는 주어진 조건을 발 빠르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 습지에 떨어졌다 해서 못 살겠다고, 왜 이렇게 나만 불행해야 하느냐고 투덜거리지 않고 뿌리를 살짝만 내려 자기 몸이 상하지 않게 한다. 물기 하나 없는 바위틈이나 산비탈에 떨어졌다 해서 목이 말라 못 살겠다고 뻗어버리지도 않는다. 뿌리를 길게 내려 저 아래 깊은 곳 마그마에서 분출시키는 물기를 끌어올린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길 한복판에 떨어졌을 경우에는 또 어떤가. '저놈의 인간들 등쌀에 못 살겠다'고 전쟁을 선포하거나 이민을 준비하는 따위 소모적인 적개심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발에 밟히면 밟힐수록 왕성하게 새 잎을 밀어 올린다. 밟히면 밟히는 대로, 짓이겨지면 짓이겨지는 대로, 새로운 잎을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다가 어느 한때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얼른 꽃대를 내밀고 꽃을 피운다.

▲ 몸을 털어 씨앗을 보내는 중 ⓒ 김수복



 이백 개 이상의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송이를 구성하는 민들레꽃의 형성과 소멸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게 또 보통 재미스럽지 않다. 이 친구는 아무렇게나 꽃을 피워놓고 나는 더 이상 모른다, 자연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늘어지게 놀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관리를 하는데 이 과정이 천체의 운항원리에 닿아 있다. 태양이 민들레의 지시를 따르는 것인지, 민들레가 태양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민들레꽃과 태양은 다소 과장을 하자면 운명공동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사랑의 메신저도 저녁에는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민들레꽃은 해가 지면 문을 닫고 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해가 떠오르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벌을 초대해서 사랑을 하고 결실이 맺어지면 목을 길게 빼고 꼿꼿이 서서 때를 기다리다가 공기 중의 수분이 최저치로 내려가는 한낮에 몸을 후르르 털어 후손을 멀리로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는데 꽃은 키가 작지만 수정이 완료된 뒤에는 키가 훌쩍 커져서 씨앗을 보다 멀리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 꽃은 키가 작지만 수정이 완료되고 씨방이 형성되면 급속도로 키가 커진다. ⓒ 김수복





 그 지혜롭고 강인한 생명력,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이 광대한 우주를 향해 자신의 향기를 뿌리고자 애쓰는 민들레의 일편단심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방에서 민들레를 거의 만병통치 약재로 인정하는 까닭도 아마 민들레 특유의 생육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들레의 약리작용은 꽃이 피기 전과 후로 그 효능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여성의 유방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몇몇 질환에서부터 각종 소화기질환과 호흡기질환, 연주창 등의 외과적 처방, 심지어는 자양 강장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그 종류를 헤아려본다는 것이 부질없을 정도다. 이런 사후약방문이야 어차피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건강식품으로 식탁에 올려볼 만은 하다. 특히 심장과 위장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민들레는 그 다양한 효능만큼이나 먹는 방법 또한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 이렇게 뜯어낸 잎을 생으로 먹기도 하고 데쳐서 무치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김수복



 뿌리를 잘게 썰어서 말린 뒤에 뻥튀기 기계 같은 것으로 튀겨낸 다음 끓는 물에 우려내면 커피 맛이 난다 해서 민들레커피라는 말도 있거니와, 뿌리를 된장에 박았다가 먹는 장아찌도 있고 소주 같은 독한 술에 우려내는 방법도 있다. 잎은 생으로 쌈을 해도 되고 녹즙을 낼 수도 있으며, 김치를 담글 수도 있고 간장에 절여 장아찌를 만들어도 좋고 살짝 데쳐서 된장과 다진 마늘 등으로 조물조물 무쳐도 좋고 취나물을 볶듯이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도 좋다. 관건은 데칠 때나 볶을 때나 강한 불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요리에서 야채를 볶을 때 기름으로 재빨리 코팅하는 방식을 응용하면 된다. 야채의 주성분은 수분이기 때문에 약한 불로 오래 끌면 수분이 빠지면서 가죽처럼 질겨지고 맛도 없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민들레가 일순위로 꼽힐 것이다. 민들레를 구한다고 굳이 시장으로 갈 필요조차도 없다. 오늘이라도 당장 관리되지 않는 풀밭에 나가보라. 거기 어디에 민들레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귀찮다면 씨앗을 받아다가 마당에 던져두면 된다. 마당이 없다면 아파트 베란다에 즐비한 화분 위에 뿌려도 된다. 특별한 관리도 요구하지 않는다. 흙과 물기만 있으면 민들레가 스스로 알아서 싹을 내고 잎을 키운다.

 아, 여기서 잠깐, 민들레는 특유의 쓴 맛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원성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상치 같은 쌈을 할 때 민들레잎 한두 개씩을 섞어서 먹게 한다거나 된장국을 끓일 때나 샐러드를 만들 때 역시 몇 잎씩 순차적으로 늘려가는 것이다. 그래도 쓴 맛에 길이 들여지지 않는다면 씨앗을 받아다가 어두운 곳에서 기르는 방법도 있다. 스티로폼 상자 같은 데 흙을 담아 씨앗을 뿌린 다음 햇볕이 없는 곳에 두고 물을 주면 발아되어 부쩍부쩍 자라나는데 이렇게 기르면 쓴맛이 없다.

▲ 노란 민들레 새순. 흰민들레와는 약간 다르다. ⓒ 김수복


▲ 흰민들레 새순. 노란 민들레보다는 폭이 넓고 대체적으로 풍만하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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