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폐지하는 일본 일제고사 때문에 '또' 전쟁 치르는 한국
13~14일 또 일제고사 실시... 교육 시민사회단체 "체험학습 실시"
▲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로 시험지 배포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다. ⓒ 권우성
다시 일제고사가 실시된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13, 14일 국영수 중심의 시험을 봐야 한다. 국가는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일제고사를 둘러싼 한 판 전쟁이 '예외 없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외 없는 일제고사, 다시 벌어질 교육현장의 '충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현장 및 체험학습 강행을 선포하고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장 학습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의견을 존중받지 못하고 무단결석 처리될 것이다.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해직교사들은 이달 초부터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거리 순회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응은 한층 더 강화됐다. "시험 거부 및 방해자 엄중 처벌"은 기본이다. 여기에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일제고사 세부 시행 계획'을 모든 관내 중학교에 내려 보냈다. 이 계획에는 체험 학습 불허와 부정행위 기준 등이 담겨 있다. 체험 학습을 알려주는 교사들에 대한 중징계 방침도 변함없다.
일제고사가 불러온 문제는 이렇게 되풀이 되는 대결 정국만이 아니다. 교육 전문가들의 예견대로, 학교 현장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졌다.
올해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여름방학 보충학습이 진행됐다. 중고교에 머물러 있던 문제 풀이 중심의 반복학습이 초등학교까지 내려온 셈이다. 또 0교시와 보충학습 부활, '불법' 모의고사 강행, 그리고 상품권 등을 선물로 내건 점수 향상 독려까지. 한 마디로, 일제고사 실시 이후 일선 학교는 점수 올리기와 줄 세우기에 '올인'했다.
지역별 성적 공개가 이 정도 파장을 불러왔으니, 학교별 점수가 공개되는 2011년이면 교육현장의 파행은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육당국은 앵무새처럼 "국가 교육과정대로 학교교육이 잘 이뤄졌는지, 학생들이 잘 이해하는지 파악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기준미달 학생과 학교에 지원을 하게 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2008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배포된 문제지를 보고 있다. ⓒ 권우성
일본 "성적 경쟁 의미 없다"며 일제고사 폐지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일제고사를 실시했고, 이명박 정부가 '벤치마킹'까지 했던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는 내년부터 일제고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일제고사가 부른 폐해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가와바타 다쓰오(川端達夫)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은 지난 9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4월 실시하는 전국 일제고사(학력ㆍ학습상황조사)와 관련 "개별 학교가 성적 경쟁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지역의 교육수준을 균등화하고 향상한다는 일제고사의 목적 달성은 물론이고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더라도 추출시험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제고사가 학력 향상에 기여하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수만 올리는 것은 교육 목적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일제고사 폐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1961년 일제고사를 도입했었고, 과도한 경쟁 교육의 폐해 때문에 4년만에 표본 조사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폐지된 일제고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몇 년 더 '전쟁' 치러야 일제고사는 사라지나
일본은 일제고사 실시 이후 학교간·지역간 서열화가 생겨났고, 보충수업 강화 등 점수 올리기 교육이 심화됐다. 한 마디로,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을 이미 과거에 겪은 것이다.
물론 일본이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건 '반교육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당 정부는 지난 총선에서 고교 무상교육과 육아지원 등 많은 재원이 필요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이런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을 일제고사에 배정된 예산 등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일본과 한국 사회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예가 꼭 우리 사회의 모범 사례는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이 일제고사를 도입한 이후 겪은 교육 현장의 파행과 학교 서열화 현상 등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일본은 도입 3~4년만에 일제고사를 폐지했다. 우리나라의 일제고사 도입 실시는 이제 1년이 지났다. 몇 명의 교사가 더 교단에서 쫓겨나고, 몇 명의 학생이 무단결석을 각오한 채 체험학습을 떠나야 일제고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