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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76) 아이덴티티와 정체성과 나

[우리 말에 마음쓰기 774] 한문과 영어한테 짓눌리는 토박이말

등록|2009.10.13 10:48 수정|2009.10.13 10:48

 - 아이덴티티와 정체성과 나

.. 그리고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가를 매일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  《다케나카 치하루/노재명 옮김-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갈라파고스,2009) 75쪽

 "자신(自身)은 과연(果然) 누구인가"는 "나는 참말로 누구인가"나 "나는 참으로 누구인가"로 다듬고, "집단(集團)에 소속(所屬)되어"는 "모임에 들어"나 "무리에 딸려"로 다듬습니다. "매일(每日) 자신(自身)에게"는 "늘 나한테"나 "날마다 나한테"로 손보고, '즉(卽)'은 '곧'으로 손보며, "정체성의 문제"는 "정체성 문제"로 손봅니다.

 ┌ 아이덴티티(identity) = 정체성. '정체성', '일체감'으로 순화
 ├ 정체성(正體性) :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   -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 / 한민족의 참된 정체성
 │
 ├ 이것이 바로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 이는 바로 나란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 이는 바로 내 참모습을 찾는 문제입니다
 │→ 이는 바로 참된 나를 찾는 문제입니다
 │→ 이는 바로 참된 내 모습을 찾는 문제입니다
 └ …

 일본사람이 쓴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자리에서 보이는 '아이덴티티'입니다만, 한국사람이 쓴 책을 살펴보아도 '아이덴티티' 같은 영어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 아닌 신문과 방송에서도 손쉽게 보거나 들으며, 인터넷에서 또한 숱하게 떠돕니다.

 이제는 한자말 '정체성'을 쓰는 분이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 말로 '나'라 하면 넉넉할 수 있으나 이처럼 쓰지 않던 흐름이 바야흐로 한풀 꺾이면서, '나'를 되찾는가 싶었지만, 되찾기는커녕 한결 더 얄궂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그렇고 다른 곳에서 쓰는 말도 매한가지입니다. 토박이말은 언제나 한문한테 짓눌리며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이제는 영어라는 새로운 깡패가 나타나 더 억눌려 있습니다.

 '부엌'을 버리고 '주방'을 찾다가 '키친'으로 바뀌듯, '돈'을 버리고 '자본'을 찾다가 '캐피털'로 달라지듯, '나'가 사라진 자리에 '정체성'이 끼어들다가 '아이덴티티'가 스며듭니다.

 ┌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 (△)
 ├ 나란 참말로 누구인가 (o)
 │
 ├ 나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x)
 └ 나의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 (x)

 보기글을 보면, 첫머리에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 하고 한 줄이 나옵니다.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이 대목을 얼마나 제대로 읽어냈을까 궁금한데, 글쓴이인 일본사람이 한자말 '정체성'과 영어 '아이덴티티'를 썼기 때문에 이러한 낱말을 고스란히 살리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기느라 못 느꼈을 테지만,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에서 '자신'이 바로 '정체성'이요 '아이덴티티'입니다. 그리고 이 '自身'이란 다름아닌 '나'입니다.

 ― 나/스스로 → 자기/자신 → 정체성 → 아이덴티티

 우리는 우리한테 힘이 없어서 일본한테 잡아먹혔다고 합니다만, 우리한테 힘이 있었어도 이를 슬기롭게 펼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힘있다는 제법 많은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이 땅에서 더 큰 힘을 휘두르려고 나라 팔아먹기를 했거든요. 가난한 이나 돈있는 이나, 힘여린 이나 힘센 이나, 한마음 한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나라가 잡아먹혔다 하여도 우리 몸과 마음을 고이 지켜 나가면 될 노릇이나, 우리 스스로 우리 몸과 마음을 고이 지키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자면 일본말을 배우고 일본 문화를 익히고 일본 사회에 녹아들어야 한다면서, 먹고살자면 미국말을 배우고 미국 문화를 익히며 미국 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면서, 우리 넋을 버리고 우리 얼을 내동댕이치며 우리 마음을 내주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이기에, 일본 제국주의에서 풀려난 다음에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이나 얼을 되찾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이나 마음을 도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 말이나 글을 제자리에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시달리던 때나 일본 제국주의에서 벗어난 다음에도, 힘있는 사람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제 밥그릇 하나 붙잡기에 얽매여 버렸습니다.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나아질 듯하지 않습니다. 따로 깨우치는 사람이 드물고, 우리 스스로 찾아나설 마음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삶터는 삶터 아니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 아니게 됩니다. 일은 일이 아니게 되고, 놀이는 놀이 아니게 됩니다. 집은 집이 아니게 된 지 오래입니다. 풀과 나무는 풀과 나무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지 또한 오래입니다. 철이 사라지고 날씨가 뒤틀리며 흙기운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절로, 말은 말이 아니고 맙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과 뜻이 생각다움과 마음다움과 뜻다움을 잃고 있으니까요. 우리 넋과 얼과 슬기가 넋다움과 얼다움과 슬기다움이 사라져 가고 있으니까요. 사람이 사람되게 살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굴레이고, 사람이 사람다이 손잡도록 이끌지 못하는 사슬이며, 사람이 사람처럼 사랑하도록 어깨동무하라며 모두어지지 못하는 고리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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